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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3월
  • 2019.03.01
  • 549

광주의 오월,
두 여고생 이야기

 

여고생 이금희의 증언, 연극 <금희의 오월>

1980년 5월 광주, 여고생 이금희에게는 갓 스무 살이 된 오빠가 있었다. 유과를 만들어 팔던 집에서 반쯤 감긴 눈으로 졸음을 이겨가며 어머니를 도왔던 오빠. 공부를 잘해서 상고를 나와 전남대 사범대에 들어갔던 오빠. 그렇게 집안의 든든한 맏아들이었던 이정연은 5월 18일 오전 전남대 정문 앞에서 계엄군에 체포되었다가 풀려났었음에도, 다시 시민군이 지키던 도청으로 들어가 학살자들에게 맞섰다. 공수부대가 들이쳤던 27일, 그는 도청 앞 정문에서 이마에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되었고 나흘이 지나서야 가족들이 그의 시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족들이 오빠의 방에서 숨죽여 울던 그 시간들이 일곱 해로 쌓이자, 이금희는 오빠의 이야기를 책(『5.18 광주 민중 항쟁 증언록 1-무등산 깃발』,1987)으로 남겼다. 

 

그녀의 증언이 책으로 나오자마자 그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든 사람이 있었다. ‘영원한 오월 광대’로 불리던 광주의 연극쟁이 박효선이었다. 그는 70년대 중반부터 지역 극단을 만들어 광주의 노동자들과 연극 작업을 해왔었다. 당시 그의 또 다른 직함은 들불야학의 교사였는데, 역시 들불 야학의 교사이자 교장이었던 저항군의 지도자 윤상원과 함께 항쟁의 처음부터 도청 사수위원회의 홍보부장으로 광주 도청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그는 도청과 함께 시민군들이 지키고 있던 YWCA회관을 빠져나왔다. 그날의 선택으로 그는 도청 사수위원회의 지도부 4명 중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박효선은 수배를 피해 이곳, 저곳을 옮겨 살면서 80년대 초반을 보냈다. 8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극단 ‘토박이’를 만들었고, 그 오랜 시간동안 품고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다. 1988년 <금희의 오월>을 시작으로, 1993년 <모란꽃>, 1995년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 1997년 <청실홍실>그리고 1998년 비디오 영화 <레드 브릭>까지 그의 화두는 오로지 1980년 오월의 광주였다. 생존자이자 ‘광주 민주화운동의 홍보부장’으로 불리던 그는 1998년 9월 간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무제

<5.18광주민중항쟁증언록>, 연극 <금희의 5월> 팸플릿, 소설 <누나의 5월>

 

1985년 광주항쟁을 다룬 최초의 단편소설 <밤길>을 펴낸 작가 윤정모는 그로부터 20년이 흘러 장편소설 <누나의 오월>로 다시 한 번 광주의 이야기를 끌어냈다. 책의 서문에는 박효선의 극작 <금희의 오월>에서 제목을 빌려왔다고 적혀있다. 윤정모 작가는 박효선의 수배도피생활 당시 위험을 무릅쓰고 그에게 몇 해 동안 숙식을 제공한 집 주인이기도 했다. 

계엄군에 맞섰던 스무 살 청년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은 그 자체로 많은 이들이 수 십 년에 걸쳐 자신의 전생을 걸어 싸워왔던 또 다른 싸움이었다. 그렇게 광주의 시민군 이정연은 과거에 소멸된 삶이 아니라 현재의 기억이자 미래의 지평이 된다.

 

윤정모의 소설에는 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가난한 누이가 등장한다.  계엄군들이 광주에서 학살을 벌이던 그 때, 누이는 부상자들을 헌신적으로 돕다가 차가 다니지 않아 고향으로 걸어가던 도중 과도한 헌혈로 쓰러지고 만다. 실제로 당시 부상 당한 시민과 시민군을 헌신적으로 치료하고 돌봤던 병원에서 피가 부족하다는 것이 알려지자, 인근 유흥업소의 여종업원들을 비롯해 여고생까지 헌혈을 하기 위해 줄을 섰었다. 윤정모 작가의 소설 속 헌혈 줄에 서 있는 누이의 모습 속에는 이정연의 동생 이금희가 아닌 또 다른 여고생 금희의 이야기가 겹쳐있다. 

 

기타 치는 선도부장 박금희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정각. 전남도청 스피커를 통해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모두 멈춰 서서 국기를 향해 가슴에 손을 얹어야 하는 그 노래는 보통 해질녘쯤에 들렸다. 예상치 못한 시간에 들려온 애국가, 그에 맞춰 이윽고 요란한 총성이 일었다. 엎드려쏴 자세를 취한 공수부대원들의 10분 동안 이어진 사격이 시위대 선두의 광주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쓰러뜨렸다.    

 

춘태여상 3학년 금희가 집을 나선 것은 바로 그날, 오후 5시쯤이었다. 양림 다리 앞에서 피를 구한다는 가두방송을 들었던 금희는 차마 그 목소리를 외면하지 못했다. 그녀의 발걸음은 광주기독병원으로 향했다. 요란한 총소리에 다들 숨었을 법도 한데, 병원의 헌혈 대기 줄은 제법 길었다. 

 

금희가 한 시간 정도 기다린 끝에 겨우 헌혈을 마치고 병원을 나서 수미다실 앞을 지날 때였다. 어디선가 날아온 두 발의 총알이 금희의 배와 허리를 명중했다. 금희는 자신이 헌혈한 바로 그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으나, 방금 뽑고 나온 피조차 채 식지도 않았을 그 시간에 결국 숨을 거뒀다. 만 열일곱의 생일을 두 달 남짓 앞두고 있었다.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금희는 영특했다. 음악을 좋아해 기타를 연주하는 소녀로 자랐고, 형편이 어려워 교통비 없이 학교를 1시간 넘게 걸어다녀도, 도시락을 가져가지 못하는 날이 있어도 늘 밝은 성격에 성적도 좋아서 학내 임원을 맡기도 했던 그녀였다.  

 

독일 뮌헨의 일간지 <쉬드도이체자이퉁>의 기자 힐셔는 광주 소식을 듣고 도쿄에서 광주로 왔다. 그는 당시 시민군들이 북한 사주를 받은 폭도로 보도되고 있는 와중에 도청과 상무관을 찾아 태극기나 흰색 천에 둘러싸인 73개의 관을 봤다. 그중 하나의 관 앞에서 “박금희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다”고 절규하며 애국가를 부르던 같은 반 친구 여고생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아 그 모습을 사진으로 기사에 싣기도 했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3월호 (통권 263호)

만 열일곱 광주 소녀, 박금희의 영정

 

이렇게 많은 사람을 통해 기록된 광주의 한 소녀의 이야기가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김대령이라는 이름을 쓰는 한 목사는 자신이 펴낸 광주항쟁에 대한 책을 통해, 춘태여상에 다니던 박금희는 시민군 군용트럭을 타고 가다 캘빈소총 오발 사고로 숨졌으며 헌혈 후 귀가하다 사망했다는 것은 유명한 거짓말이라고 했다. 

 

말뿐인 그의 주장을 반박하는 자료는 신군부가 85년에 작성한 안기부와 검찰 보고서이다. 그의 주장이 무색하게 문서에는 박금희의 사인(死因)이 ‘엠-16 총상’이라고 쓰여 있다. 오히려 진짜로 밝혀져야 할 것은 많은 이들이 증언했듯, 헬기 사격으로 금희가 희생됐는지 여부와 5월 21일, 그날의 발포명령자가 누구였느냐는 것이다.  

 

금희가 죽던 그해 말, 그녀가 다니던 춘태여상은 전남여상으로 명칭을 바꾸었는데 금희는 영원히 그 사실을 알 수 없게 됐다. 박금희의 어머니 문귀덕 님은 금희의 친구들이 그날 이후 87년까지 매해 5월 21일마다 그녀가 다른 이들과 한꺼번에 매장되었던 묘를 남몰래 찾았다고 증언했다.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자신의 몰염치를 타인에 대한 혐오로 증폭시키는 사람들로 인해 역사의 기억들이 끝을 모르고 절룩거린다 해도, 연극 <금희의 오월>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오빠의 이야기를 증언하던 이금희의 목소리는 극의 마지막 대사를 읊는다.

 

금희 : 오빠, 우리는 꼭 이길 거예요!

 

월간 참여사회 2019년 3월호 (통권 263호)

매장하기 직전 박금희의 영정과 목관

 


글. 권경원 다큐멘터리 <1991, 봄> 감독 

<1991, 봄>은 국가의 불의에 저항한 11명의 청춘들과 유서대필, 자살방조라는 사법사상 유일무이의 죄명으로 낙인찍힌 스물일곱 청년 강기훈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 알립니다

상기 글은 월간 참여사회 2019년 3월호 (통권 263호) 32쪽 <역사>의 내용 중 연극 <금희의 오월>의 주인공이 '박금희 열사'로 잘못 기술되었음을 확인하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전체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게재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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