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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3월
  • 2019.02.27
  • 230

특집2_시민의 눈으로 본 3·1운동

유관순의 친구, 
유관순의 동지

글. 장영은 성균관대 한국학연계전공 초빙교수

 

 

100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백 바퀴 도는 동안, 우리 여성들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가슴 벅차고 감격스러운 마음 대신 불경스럽게도 ‘어찌하여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여성은 한 사람도 없었을까’ 그 질문을 가장 먼저 던지게 된다. 또한 무슨 연유로 3·1운동을 대표하는 여성은 유관순 한 사람뿐이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유관순은 10대의 소녀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문을 당하면서도 독립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결국 서대문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유관순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우리가 오랫동안 외면해왔을 뿐, 3·1운동에 자신을 온전히 내던지며 독립을 외쳤던 여성들은 너무도 많았다. 3·1운동 이후에도 살아남아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여성들에게 이제 관심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100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역사에 가리어진 여성들의 삶을 복원할 때가 온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유관순의 친구, 유관순의 동지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역사에 가리어진 여성 독립운동가들 

권애라. 1897년 개성에서 태어나 1918년 이화학당 보육과를 졸업했다. 개성에서 유치원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던 권애라는 3·1운동이 일어나자 개성 지역의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었다. 1902년생 유관순은 권애라와 선후배 사이였다. 그러나 권애라와 유관순 두 사람이 만나 의기투합한 곳은 학교가 아니라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 감방이었다. 8호 감방에는 유관순, 권애라 이외에도 어윤희, 김향화 등 나이와 출신 지역 및 직업을 달리하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함께 있었다. 8호 감방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돌보며 다음 행보를 논의했다. 

 

1년 후인 1920년 3월 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권애라는 수감자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도모했다. 이때 후배이자 동료인 유관순과의 일화가 최근 개봉한 영화 『항거』에 나온다. 그 장면을 보면서 참으로 가슴 뭉클하고 반가웠다. 수감 상태에서도 만세 운동을 이어나가는 여성들의 기개에 가슴 뭉클했고, 유관순 혼자 외롭고 쓸쓸하게 3·1운동을 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영화 『항거』가 알려줘서 반가웠다. 유관순은 1920년 9월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고, 권애라는 다행히 살아남아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권애라는 출옥 후 강연회의 스타로 활약하다 해외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권애라는 쑤저우에서 유학 후, 모스크바, 펑텐, 지린, 헤이룽장 등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가를 넘어 아시아의 차세대 지도자로 훈련받으며 성장했지만, 권애라의 삶에 역사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어쩌면 역사는 살아남은 여성에게 그리고 무엇인가를 새롭게 도모한 여성에게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역사는 조국을 위해 장렬하게 일찍 죽은 여성들 앞에서만 고개를 숙이며 기억하지 않았던가? 여성에게 조국이란 무엇인가?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으로서 나는 조국을 원하지 않고, 여성인 나에게 조국은 없다고 절규했다. 그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권애라는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조국을 외면하지 않았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3월호 (통권 263호)

 

3.1여성 동지회와 눈부셨던 권애라의 삶   

권애라는 의열단의 핵심 인물이었던 김시현과 결혼했다. 김시현은 약 28년 가까이 수감 생활을 한 독립운동가였다. 김시현과 권애라는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서로를 동지라고 부르며 독립운동을 함께 이끌어갔지만, 세상은 권애라를 김시현의 아내로만 호명했다. 권애라도 1942년 중국 지린에서 12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해방 후 통일과 반독재투쟁을 위해 다시 운동가로 복귀했다. 이후 권애라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정치권력을 획득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1967년 권애라는 경북 안동에서 한국독립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권애라는 “독립통일 앞장섰던 한독당 몰아주자”라고 선거 구호를 외치며 한독당의 정통성을 주장했지만, 국회의 문턱은 높았다. 

 

현실 정치의 장벽을 절실히 느낀 권애라는 3.1여성 동지회 결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3·1운동이 여성에게 사회 참여의 기회를 조금이라도 부여할 수 있다면 또한 자신을 비롯한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운동가들이 역사에 기록되고 기억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실행해야 한다는 신념을 권애라는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권애라는 생애 말기 영광과 명예 대신 가난을 마주해야 했다. 가혹하게도 가난과 병마를 함께 견뎌내야 했다. 1973년 세상을 떠난 권애라는 1919년 3·1운동과 자신의 독립운동을 어떻게 기억하고 평가할까? 1990년 뒤늦게나마 권애라에게 애국장이 추서되었지만, 그것으로 그녀의 삶이 역사에서 온전히 제자리를 찾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유결혼과 남녀평등, 조국의 독립을 외치며 대륙을 넘나들었던 권애라의 삶이 만약 같은 시기 같은 곳에서 나에게 주어졌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쉽게 가늠할 수 없다. 숱한 좌절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끝까지 세상을 향해 도전했던 용기 그 하나만으로도 권애라의 삶은 눈부시다. 

 

권애라뿐만이 아닐 것이다. 역사가 주목하지 않았던 수많은 여성들에게 이제 고개를 돌려보자. 3·1운동을 떠올리며 100년 전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유관순의 친구, 유관순의 동지, 유관순의 지지자들이 자신들의 이름으로 역사에서 저마다의 합당한 몫을 찾을 때가 왔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 여성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기 위해서라도 100년 전 그녀들을 기억해야 한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서대문형무소 안에만 가두어서는 안 된다. 그녀들의 보폭은 넓고 당당했다. 그녀들의 세상이 시작될 때가 왔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3월호 (통권 263호)

 

 

 

특집. 시민의 눈으로 본 3·1운동 2019년 3월호 월간참여사회 

1. 보통사람들의 3·1운동 조한성

2. 유관순의 친구, 유관순의 동지 장영은

3. 법 앞에 불평등한 조선인 도면회

4. 같은 경험, 다른 기록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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