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09월 2020-08-28   1127

[특집] 이제는 대책이 아니라 체제를 구상할 때

이제는 대책이 아니라 체제를 구상할 때

글. 최경호 사단법인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정책위원장,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주거분과 실행위원 

 

 

‘종합계획’ 성격의 발표를 제외하면, 이번 정부 들어서 총 21번의 부동산 대책이 나왔다. 간간이 공급 대책과 수요지원 정책이 있었지만 주로 규제 대책이었다. 이전 정부들처럼 시장이 과열되면 억제책을 구사하다가 경기활성화를 해야 하면 규제완화로 냉온탕을 오가던 모습까지는 아니었지만, 숫자가 많았다는 것은 그리 성공적이진 못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8.4 공급대책에 이르러는 용적률을 파격적으로 올려주고 수도권의 가용지는 다 택지로 전환할 태세다. 그런데 수요억제책으로 대출은 여전히 틀어막은 상황이다. 가계부채 규모가 심각하니 함부로 대출한도를 올려줄 수도 없다. 서울시는 집값을 차츰 치를 수 있는 ‘지분적립형 주택’도 도입한다고는 했지만 충분한 물량은 아니다. 그러니 (약간만 대출을 받으면 집을 살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저축과 신용을 제공해줄 안정된 직장을 가진 일부를 제외한) 우리는, 조금 싸게 매물로 나온다 한들 그 집을 살 수가 없다. 게다가 노동유연화 시대에 대출을 통한 자가 마련이 가능한 계층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러다가 또 어디선가 미분양이 문제가 되면, 다시금 규제완화를 대안으로 들고나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든다. 이런 쳇바퀴를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월간참여사회 2020년 9월호 (통권 278호)

 

투기를 잡으면 오히려 임대료는 비싸진다?

목돈이 없는 우리는, 그 집에 살지 않는 사람, 즉 다주택자가 미리 마련해준 집에 세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한편 다주택자는 전세보증금 덕분에 집을 늘려갔다. 월세로 전환하는 것이 이자율을 생각하면 더 이익이지만, 이후 집값이 오르면 얻는 시세차익이 훨씬 큰 상황에서 임대인은 전세보증금을 받아 ‘레버리지’ 투자를 하는 게 유리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집값이 오르지 않거나 목돈을 굴릴 투자처가 마땅치 않으면, 임대인 입장에서는 월세를 선호하게 된다. 그동안 월세보다 불리한 전세를 택한 이유는 세입자의 주거사다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투자 자금이 필요해서였는데, 이제 투자를 못 하게 되면 임대 그 자체로 수익을 내야 한다. 지난 몇 년 사이 전세의 월세화가 꾸준히 진행되고 ‘수익형 부동산’이 뜨게 된 배경이다. 그러니 직시해야 할 것은 주택임대차보호법 때문이 아니더라도, 투기가 근절되고 집값이 잡힌다면 차츰 소멸할 전세와, 그렇게 되면 오히려 지금보다 주거비 부담이 더 커질 수도 있는 우리의 운명이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인상 규제의 도입이 반가운 이유다.

 

주거체제의 유형 : 자유주의, 조합주의, 사민주의 복지모델들

‘주거체제론’ 또는 ‘주택레짐론’은 아직까지 한국에서 낯선 개념이다. 체제론적인 접근보다는 주로 ‘보유세’나 ‘대출규제’, ‘재개발’ 또는 ‘공급’ 같은 용어들이 익숙한 키워드다. ‘비전’이나 ‘정책’이 아니라 ‘대책’으로 점철된 ‘부동산’ 정책사였기 때문일까. 어떤 세금이 외국보다 몇 퍼센트 비싼지 여부, 이번에 조정 대상지역이 추가된 지역이 어디인지가 관심사였지, ‘한국형 복지국가를 만들어 갈 때 주거를 어떤 위상에 놓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찾기 힘들다. 어떤 상이 있었다면, 투기를 잡거나 대출을 받게 해주면 모두가 집 한 채씩 가질 수 있겠거니, 하는 막연한 환상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를 가로막는 원흉을 규탄하는 습관에만 젖어있던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투기를 잡아도 내 집은 없다. 

 

문제는 체제다. 한국의 주거복지는 공공임대주택과 같은 현물보조 정책이든, 주거바우처와 같은 현금보조 정책이든, 그동안 주로 ‘잔여 복지’의 관점에서 접근해 왔다. 여기에 정치인들마다 자신의 브랜드를 추가하다 보니, 십 수 가지의 복잡한 유형에 각각의 입주자격과 지원절차도 알기 어렵거니와, 같은 소득수준에 비슷한 조건의 집에 살아도 운에 따라 임대료는 천차만별이 된 상황이다. 하여 ‘공공임대주택 유형통합’이 국정과제로 추진 중이다. 통합된 유형이 차차 물량을 늘려나간다면, ‘경기도형 기본주택’이 지향하는 ‘주거에서의 보편복지’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해외는 어떤 상황일까? 훅스트라Hoekstra는 복지국가에 대한 에스핑 앤더슨Esping-Anderson의 유형론을 주택 분야에 적용하여 주거체제 역시 자유주의, 조합주의, 사민주의로 구분하였다. 이에 따르면 주택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품이 아니라, 탈상품화의 정도나 시장과 정부의 역할, 배분 방식이나 보조금의 범위와 투입대상에 따라, 국가의 성격을 규정짓는, 복지체제의 주요 구성요소다.

 

월간참여사회 2020년 9월호 (통권 278호)

 

임대 부문의 성격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하면, 사회주택시스템 vs 포괄적 주택시스템 (Donnison), 잔여모델 vs 대중모델 (Harloe), 이원모델 vs 단일모델 (Kemeny), 표적모델 vs 일반모델 (Andrews et al.) 등으로 주거체제의 성격을 구분할 수 있다. 각각 앞의 모델들과 뒤의 모델들은 서로 유사성을 가지는데, 대체로 공공 혹은 비영리임대 부문이 잔여화 되는 경향이 전자, 그렇지 않은 것이 후자의 모델이라 볼 수 있다. 

 

특기할 점은, 임대 부문에서 보편복지의 경향이 강할수록 자가소유의 압력이 덜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위 복지국가들의 자가소유율은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 즉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세입자도 마음 편히 살아서 복지국가라는 것이다.       

 

주거중립성과 주거선택권

한국형 복지국가와 주거체제의 발전 경로가 굳이 위 세 가지 유형 중 어느 하나를 그대로 베끼는 방식일 필요는 없다. 어떤 유형이 되든 주거복지 차원의 목표는, 점유형태에 따른 불이익이나 차별이 최소화되고, 각자가 생애주기와 형편에 따라 적절한 주택을 쉽게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버스, 짐이 많으면 택시를 타고, 장거리는 기차를 타도 이상할 것이 없고 영영 자가용 마련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니듯, 오래 머무르지 않을 것 같으면 임대에서 살고, 자리를 잡을 것 같으면 저축과 대출을 합쳐 구매해서 살거나, 이웃과 좀 더 어울리고 싶으면 협동조합이 만드는 공동체주택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중립성이 구현되고 선택권이 보장된 주거체제이다.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서구의 경우 대개 진보는 토지의 공개념과 주택의 ‘탈상품화’를 추구했다면 보수는 ‘자가소유’를 통한 책임성과 자산축적의 효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국의 경우 해법은 소멸해가는 전세를 대체할 수 있는 ‘환매조건부’ 주택이 될 수도 있고, 다주택자의 역사적 공로를 대신하여 공적 유동화 중개기관과 사회주택사업자들이 나서서, 예측가능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원하는 기간만큼 임대하거나, 대출이자에 허덕이지 않고 장기간 지분적립으로 자가를 마련하는 것을 지원할 수도 있겠다. 

 

하이브리드 방식도 있다. 협동조합 공동소유 주택으로 가격하락의 리스크와 가격상승을 노리는 투기의 여지를 줄이고, 자가소유의 안정을 누리다가 필요하면 분담금 적립을 통해 완전 소유도 가능한 방식이다. 단지 안에는 소유 의사나 여력이 없는 1인 가구도 조합원으로서가 아니라 임차인으로서 공존하게 할 수도 있다. 

 

규제와 경기부양의 냉온탕을 오가며 가격에 목을 매는 사후 대책이 아니라 이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체제에 대한 비전이다. 

 

❶  Hoekstra(2003). “Housing and the Welfare State in the Netherlands: an Application of Esping-Andersen’s Typology”, 

Housing, Theory and Society, 20(2)

❷  남원석(2014). “한국 공공임대주택의 미래 : 새로운 제도화의 경로와 과제”, 공간과 사회 24:2, 136-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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