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10월 2019-10-01   2148

[특집] 미·중 무역마찰의 독해법

특집_지금 아시아는?

미·중 무역마찰의 독해법

글. 이희옥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특집4-삽화

 

세계질서는 미·중 관계의 불확실성 속에서 대전환을 맞고 있다. 과거 패권경쟁은 지배국가가 기존 질서를 지키기 위해 부상하는 국가의 도전을 물리치고자 했지만, 현재 미국패권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규칙과 규범을 스스로 깨고 있다. 그 결과 다자간 무역체제도 붕괴 위기를 겪고 있고, 그 자리에 힘에 기초한 승자독식, 정치적 분노에 편승한 대중영합주의가 결합한 미국 우선주의가 똬리를 틀었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가치사슬 체계가 무너졌고 개별 국가들은 위험을 최소화하는 가치사슬 체계를 찾아 각자도생의 길을 찾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저변에는 중국의 폭발적인 부상과 이에 대한 미국의 초조감이 깔려있다. 실제로 미국의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공화당과 민주당을 막론하고 대외정책에서 ‘중국위협’은 공동의 소재가 되었다. 심지어 트럼프 정부는 우방 국가들도 대중국 봉쇄에 동참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중국 역할론을 높일 수 있는 북·중 관계와 한·중 관계의 발전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 그 자체가 미·중 간 세력전이power transition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중국의 부상은 질적 발전quality development이 아니라 양적 성장fast growth에 가깝고 실제로도 성장의 그늘이 중국 사회 전반에 넓게 드리워져 있다.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5에 달했고, 중앙과 지방, 도시와 농촌, 소득 간 격차는 더욱 확대되었다. 급기야 중국공산당도 현재의 주요모순을 “갈수록 늘어나는 인민의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수요와 불균형하고 불충분한 발전간의 모순”이라고 선언했다.

 

실제로 복지, 의료, 교육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순지표net indicator로 측정한 중국의 종합국력은 미국에 비해 현격한 차이가 있다. 중국도 이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왔기 때문에 스스로 기존 국제질서의 판을 변경하기보다는 미국의 공세에 대해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데 그쳤다. 이른바 몸을 낮추고 앞을 도모한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이 그것이다. 다만 중국은 자국의 ‘주변’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다자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대항담론으로서 ‘중국방안’을 전파하면서 동아시아에서 국제관계 민주화의 교두보를 만들고자 했다.

 

미·중 무역마찰의 본질

2018년 3월 22일 미국은 340억 달러 규모의 818개 중국산 품목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한 이후 올해 9월 말까지 그 규모가 3천 6백억 달러에 이르렀다. 중국도 여기에 응수했다. 국제통화기금은 이러한 보복관세의 악순환이 2020년까지 세계 경제 성장률을 0.5% 떨어뜨릴 것이라고 보았다. 미·중 무역마찰은 몇 번의 협상이나 정상회담을 통해 깨끗하게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관세전쟁’은 중국 자본시장 개방을 겨냥한 ‘환율전쟁’으로 옮겨 붙었고 ‘기술패권전쟁’이라는 장기경쟁의 길에 진입하는 등 중국체제의 존재방식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러한 무역마찰을 사건, 구조, 국면의 차원으로 구분하면서 맞춤형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우선 무역 불균형에 대해서는 대미 쇼핑리스트를 만들어 미국에 성의를 보였고, 더 많은 개방과 국제규범을 준수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적응하고자 했다. 그러나 중국의 미래전략과 직결된 ‘발전권’은 핵심이익으로 간주하고 강력하게 수호하고자 할 것이다. “대화를 원하면 문을 열어 놓겠지만 싸우고자 하면 끝까지 상대해 줄 것”이라는 결기는 이러한 인식의 일단을 보여주었다. 특히 기술적 우위를 가진 5G 산업, 상용화에 성공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미국에서 독립한 중국형 위성항법장치, 우주산업의 핵심인 양자과학과 양자통신 등을 효과적으로 결합해 본격적인 게임체인저game changer를 시도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미·중 무역마찰은 ’예고된 전쟁Destined for war’이었다. 2001년 미국은 중국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시켜 사회주의 체제를 연성화하고자 했으나, 9.11 사건이라는 돌발변수로 인해 모든 역량을 중동의 전선에 집중하면서 중국견제의 기회를 잃었다. 2008년 무렵 미국은 외교정책을 수정하면서 다시 중국견제를 도모했으나 2008년 전후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중국견제의 여력을 소진했다. 이 틈을 타 중국은 소극적 개방과 경기부양을 통해 연간 10%에 달하는 고도성장을 구가하면서 미국과의 격차를 줄였다.

 

이렇게 보면 이번 미·중 무역마찰은 미국이 중국의 국제 영향력을 줄이고 미국패권의 하강 속도를 줄이기 위해 예고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향후 미·중 관계는 통화, 에너지, 자원, 체제, 제도 등 모든 영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동맹국들에 중국의 안보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이미 미래 산업의 중추이자, 5G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화웨이’를 정조준하고 동맹국들의 참여를 요청한 바 있다. 왜냐하면, 미국은 화웨이의 독자적 가치사슬 체계를 끊지 못하면 6G 시대도 중국에 내줄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5G 상용화 시대를 열었고 더 나아가 무인자동차와 사물인터넷에 두루 적용되는 슈퍼 운영체계인 홍멍鴻蒙을 개발하는 등 6G 시대의 기술적 교두보를 먼저 확보하면서 미국의 초조감을 증폭시켰다.

 

미·중 무역마찰과 미·중 관계의 재편

미·중 양국은 핵에 의한 공포의 균형에 이어 경제적 영역에서도 최소한 상호확증파괴MAD, Mutual Assured Destruction의 기반을 마련했다. 즉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는 결정적 ‘한 방’이 없다는 점에서 휴전을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국면은 휴전을 앞두고 경제영토를 확대하기 위한 마지막 전투이자 지구전의 전초라고 볼 수도 있다. 향후 미국은 국내 반중여론을 최대한 동원해 중국견제의 고삐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중국도 무역마찰 과정을 복기하면서 기술 자주화를 고도화하고 가치사슬 체계의 국내화를 모색하는 한편 희토류와 같은 공급위험지수가 높은 자원을 대미전략에 활용하는 방안을 찾고자 할 것이다.

 

요컨대 미·중 관계는 단기적으로 갈등을 봉합할 수 있지만, 좀 더 먼 시야에서 보면 비협력적 균형Nash equilibrium이 일상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것은 미국이 중국의 개혁개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중국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수용하면서 형성된 이른바 ‘키신저 질서’가 해체되고 있다는 신호이다. 즉 미국은 단극체제가 무너지자 첨단과학기술의 상용화에 성공한 중국의 부상을 더 용인하기 어려웠고 중국도 아·태 지역에서 미국의 존재감을 지우는 한편 일대일로一帶一路❶ 구상과 같은 ‘중국식 세계화’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미국과 중국은 안보와 산업영역에서 상호의존을 줄이면서 기술패권경쟁이라는 장기전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물론 과거 이데올로기의 분화, 글로벌 가치사슬 체계의 진영화, 군비경쟁, 대리전 등을 특징으로 하는 과거의 냉전이 재현되지는 않겠지만, 현재의 미·중 패권경쟁에는 다른 문명과 제도, 그리고 다른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충돌이 내재해 있다. 무엇보다 디지털 플랫폼의 블록화 추세가 확대되면서 새로운 유형의 냉전이 출현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더욱이 시민사회의 글로벌 네트워크, 중간 국가들이 국제적 공공재를 창출하려는 동력도 현저히 떨어졌다.

 

한국 외교에 대한 도전

미·중 무역마찰은 상호불신을 내면화하면서 국제적 협력을 어렵게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양국의 경제위기를 촉발할 가능성도 커졌다. 실제로 미국은 트럼프 변수가 기업투자의 불확실성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공급부문의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또한, 중국경제도 하락추세로 전환하면서 잠복해 있던 지방채무, 그림자금융, 부동산 거품 등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는 등 정부통제의 위기가 나타날 개연성이 커졌다. 이처럼 미·중 양국에서 나타나는 위기의 징후는 대외의존이 높은 한국에게는 치명적이다. 여기에 미·중 양국 패권경쟁은 한국에게 전략적 선택을 강제할 것이다. 미국은 한반도 문제해결 과정에서 한·중간 전략적 협력을 비판적으로 볼 것이고, 중국도 한국의 대미우호외교에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이처럼 이중적 딜레마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반도 문제가 미·중 관계의 종속변수가 되기 전에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대담한 돌파를 통한 남북관계 중심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또한, 미·중 무역마찰은 글로벌 가치사슬 체계에 대해 맹목적으로 의존해 온 한국의 산업정책이 끝나고, 기술적 시장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방향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한계산업이 도태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하게 엮고 포용적 성장을 강화하지 않으면, 정치적 분노를 쉽게 수용하는 보호주의와 인기영합주의의 덫에 걸릴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❶ ‘동중국 주도의 ‘신 실크로드 전략 구상’으로, 내륙과 해상의 실크로드경제벨트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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