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10월 2019-10-01   3383

[듣자] 상류사회 풍자한 〈거지 오페라〉

상류사회 풍자한 〈거지 오페라〉

 

 

헨델, 영국 오페라계의 슈퍼스타 되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18세기 유럽인들은 런던을 주저 없이 ‘세계의 수도’라고 불렀다. 청교도혁명의 영향으로 음악의 불모지였던 이곳에도 오페라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705년 문을 연 퀸스 시어터를 필두로, 링컨스 인 필즈, 드루리 레인, 코벤트 가든 등 오페라 극장이 생겨났다. 국왕과 귀족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돈만 있으면 오페라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이 시대, 음악으로 이익을 얻기 원하는 사람은 영국으로 가야 한다!” 1710년, 25세가 되는 해에 런던 행을 택한 헨델은 단숨에 성공을 거머쥔다. 그의 런던 데뷔작인 오페라 《리날도Rinaldo》(1711) 중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는 영화 <파리넬리>에도 나온다. 

 

“울게 하소서, 잔인한 내 운명! 내가 오직 자유만을 갈망한다는 것, 내 마음속 아픔을 잊게 하소서, 고통의 굴레를 벗게 하소서!”  

 

제1차 십자군전쟁1096~1099을 배경으로 하는 이 요술 같은 오페라는 천둥, 번개, 불꽃놀이를 재현했을 뿐 아니라 진짜 새 떼가 등장하는 등 대단한 장관이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파리넬리가 부르는 이 노래 <울게 하소서>는 마녀에게 잡힌 십자군 대장의 딸 알미레나가 자유를 갈구하며 부르는 아리아다. 하지만 실제로 파리넬리는 헨델의 오페라에 출연한 적이 없다. 파리넬리는 1734년부터 1737년까지 3년 동안 런던에서 활약했지만 공교롭게도 헨델이 속해있던 ‘제2아카데미’와 경쟁관계에 있는 ‘귀족오페라’의 멤버였기 때문이다. 1730년 헨델은 파리넬리를 캐스팅하려고 베네치아를 방문했지만, 만나지도 못한 채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리날도》의 성공으로 밑천을 만든 헨델은 대서양에서 노예무역을 하는 ‘남해회사’의 주식에 투자하여 10배의 차익을 남겼다. 과학자 아이작 뉴턴도 이 회사에 7천 파운드를 투자했다가 모조리 날렸다고 하니, 헨델의 음악적 직관이 뉴턴의 치밀한 추리력보다 더 쓸모 있었던 셈이다. 

 

그러던 1726년, 독일 출신의 헨델은 아예 영국으로 귀화했고 이름마저 영어인 ‘조지 프레더릭 헨델George Frederick Handel’로 바꿨다. 그가 1727년 조지 2세의 대관식을 위해 작곡한 《사제 자독Zadok the Priest》 중 <대관식 찬가Coronation Anthem>는 영국 왕실의 주요 행사에서 빠지지 않고 연주되는 명곡으로 모든 영국인의 사랑을 받게 된다. 그는 모두 46편의 오페라를 선보이며 영국 음악계의 슈퍼스타로 활약했다. 


영화 <파리넬리> 중 ‘울게 하소서’ 장면
이 장면을 보고 싶다면? 

유튜브에서 Farinelli Handel을 검색하세요. 

 

정치 풍자로 새롭게 떠오른 라이징 스타 

이런 헨델에게 굴욕을 안겨준 작품이 바로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The Beggar’s Opera》(1728)였다. 잉글랜드의 극작가 존 게이1685~1732는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나단 스위프트의 친구로, 당시 영국 지배층과 판사들의 부정·비리를 고발하는 게 일이었다. 그는 “상류층의 도덕성은 형무소에 있는 죄수들과 다를 바 없으며, 죄수들 이야기만으로도 좋은 연극이나 오페라가 가능하다”는 스위프트의 말에 솔깃하여 《거지 오페라》를 쓴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10월호 (통권 269 호)

윌리엄 호가스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 5막>(1728) ⒸZenodot Verlagsgesellschaft mbH

 

18세기 런던의 거지와 창녀들의 삶을 익살스레 묘사한 이 작품은 대사가 영어로 돼 있고 잉글랜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프랑스의 전통 선율을 가져다 썼으며 정부, 귀족 사회, 결혼 제도를 풍자하는 내용이라 관객들을 아주 유쾌하게 해주었다. 1728년 1월 초연된 후 62회나 공연되며 선풍적 인기를 끈 이 작품은 정치 풍자가 어찌나 신랄했던지, 속편인 《폴리Polly》공연이 당국 명령으로 금지될 정도였다. 새로운 시민 계층의 요구에 부응한 《거지 오페라》는 18세기 영국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두면서 근엄한 헨델의 오페라에 굴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다. 

 

한편 이 작품은 헨델을 비꼬는 내용도 담고 있었다. 헨델의 오페라 《아드메토Admeto》공연을 앞두고 주역을 맡으려는 두 소프라노 사이의 경쟁이 가열됐다. 헨델은 아주 ‘공정하게’, 연주 시간이 똑같은 아리아를 한 곡씩 써 주고 두 사람을 달랬는데 두 여자는 결국 무대 위에서 머리를 잡아 뜯으며 몸싸움을 벌였고, 청중들의 야유와 고함 속에 막이 내렸다. 존 게이는 《거지 오페라》에 맥히스라는 남자를 두고 폴리와 루시라는 두 여자가 뒹굴면서 싸우는 장면을 넣어서 헨델 오페라의 불미스런 해프닝을 풍자했다. 《거지 오페라》를 만든 사람은 존 게이였고, 공연을 이끈 극장 감독은 존 리치였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게이는 리치해졌고, 리치는 게이해졌다”는 말까지 유행했다.

 

헨델은 오페라에서 더 큰 흥행을 기대하기 어려워지자 비용이 덜 드는 오라토리오Oratorio❶로 눈길을 돌린다. 이후 그는 최고 걸작 《메시아Messiah》를 성공시켜 영국 음악의 위대한 상징으로 남게 된다. 하지만 《거지 오페라》도 반짝 화제가 됐다가 사라지는 값싼 유행이 아니었다. 헨델의 이탈리아 오페라는 글루크, 모차르트, 로시니, 베르디로 이어지는 오페라 역사에서 빛나는 자리를 차지했다. 

 

반면,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등 18세기 독일 징슈필은 물론 19세기 파리와 빈의 오페레타Operetta❷에 영향을 주었고, 초연한 지 200년 만에 1928년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쿠르트 바일의 《서푼짜리 오페라》로 다시 태어났다. 결국 20세기 런던 웨스트엔드와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효시가 됐다. 

 

오페라 《거지 오페라》 1막 (1963년 영국 BBC 방송 버전) 

작곡      존 게이

편곡      벤자민 브리튼  

이 영상을 감상하려면? 

유튜브에서 Hay Beggar BBC를를 검색하세요. 

 

 

성경이나 기타 종교의 경전, 도덕적 내용의 가사를 바탕으로 만든 서사적인 악곡. 오케스트라나 오르간을 반주로 하는 합창, 중창, 독창 등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에서는 오페라와 비슷하지만 연기를 하는 장면이나 무대의 배경이 없다

이탈리아어 ‘작은 오페라’라는 뜻으로 대사와 춤, 오케스트라가 있는 오페라를 말한다 

 

 


글.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다』, 『클래식 400년의 산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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