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12월 2019-11-28   1053

[역사] ‘별이 크리스마스’ 최종범을 기억하며

‘별이 크리스마스’
최종범을 기억하며  

 

삼성전자 사원이 아닌 삼성제품 수리기사

여섯 해 전 크리스마스이브, 삼삼오오 모여든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강남역 사거리 삼성 사옥 앞에서 ‘별이 크리스마스’ 문화제를 열었다. 그해의 성탄절이 ‘별이 크리스마스’로 명명된 까닭은 첫 돌을 맞기도 전에 삼성 에어컨 수리 기사였던 아빠를 잃은 별이를 기억하고, 숨진 지 57일 만에야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던 별이 아빠 최종범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최종범은 용접과 배관작업에 능해서 에어컨, 냉장고 등의 수리를 맡았던 ‘중수리’ 기술자로 그해 추석 당일에도 두 건의 콜을 치고 나서야 형의 집으로 향했던, 도가 넘도록 성실한 삼성엔지니어였다. 왼쪽 가슴에 삼성전자서비스 로고를 단 채 명절은 물론 야간, 주말 가릴 것없이 삼성 에어컨과 냉장고, 세탁기 같은 제품을 수리했지만, 그가 삼성전자 사원이 아니라는 것을 형이 알게 된 것은 그가 죽고 나서였다. 

 

그가 다니던 곳은 삼성전자가 삼성전자서비스를 통해 AS수리를 2중 하도급시킨 169개 협력사 중의 하나인 삼성TPS였다. 그해 삼성전자의 소비자들은 제품을 사면서 AS비용으로 1조 7천억 원을 지불했는데, 삼성전자가 이러한 도급 구조를 통해 삼성전자서비스에 지급한 외주도급비는 6천억 원, 그리고 삼성전자서비스가 169개의 협력사에 넘긴 총액은 그 중 3천 3백억 원을 지불하는 구조의 제품을 사는 것이었다. 

 

일감을 나눠줘야 할 협력사는 중수리 재료비, 장비비, 미수금, 유류비, 차량수리비, 휴대전화비, 식비  모두를 현장 수리 노동자에게 전가한 뒤 그들에게 주어야할 임금은 건별로 책정했다. 수리 중 에어컨 냉매가 터져서 동상과 화상을 달고 살던 별이 아빠가 여름철 성수기가 지나면 최종적으로 손에 쥘 수 있었던 금액이 월 평균 100만 원 남짓이 돼버리는 이유였다. 

 

그해 여름, 이 불법적인 구조에 맞서 서울에서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별이 아빠는 별이 엄마에게 이제 노조가 생겼으니 그동안 밤늦게까지 일하고도 받지 못했던 임금도 받을 것이고, 별이를 위해서라도 노동조합간부까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할 테니 더 늦게 들어와도 이해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별이 아빠는 노조가 생긴 직후 협력업체 사장으로부터 욕설이 섞인 전화를 받았다. “어디 삼성전자 기사 따위가 고객이랑 말하는데 허리에 손을 올려?” 이 사건 이후 별이 아빠는 진정서를 써 놓고도,  “사장도 가정이 있는 사람이고 내가 입사한 후부터 계속 함께한 사람인데….”라고 동료에게 문자를 보낸 뒤 없던 일로 해버렸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12월호(통권 271호)

고 최종범 열사 영정 Ⓒ권경원

 

무노조경영과 노조와해공작 ‘그린화전략’

이제와 명백해진 사실이지만 당시 삼성은 ‘그린화전략’라는 이름으로 노조와해 공작을 펼치고 있었다.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세계 일류 기업 삼성이 최고의 빈부격차를 생산하는 방식이었다. 별이 아빠의 죽음에 당사자가 될 수 없으니 단체 협상도 경총을 대신해 내보냈던 그들이 고용노동부와 언론을 포함한 로드맵까지 그려가며 그룹차원에서 펼치고 있던 일이었다. 

 

노조가입자가 많은 서비스센터에 본사 파견 직원을 내려보내 일감을 주지 않는 식의 대응이 이어졌고, 이를 감독해야할 고용노동부는 추석 직전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종합적으로 보면 불법파견이 아니다”라는 근로감독 결과를 유권해석이랍시고 냈다. 직후 별이 아빠를 포함한 노조가입자를 중심으로 한 본사의 표적 감사가 이어졌다. 대상 직원들은 통상 이뤄지던 3개월이 아니라 5∼6년 전 작업까지 소명해야했다. 

 

별이 아빠가 ‘그동안 삼성 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는 글을 단체 채팅창에 남기고, 테이프로 둘둘 말린 백미러가 붙은 2002년식 카니발에서 발견된 것은 그로부터 10여 일 뒤였다. 

 

별이 아빠는 모란공원에 안장되었다. 그해 가을 그가 처음 알게 된 이름 전태일이 묻혀 있는 곳이었다. 삼성의 그린화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던 2014년 5월 강릉에서 또 한 사람의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 염호석이 자신의 승용차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정보경찰과 염호석의 친부까지 매수한 삼성은 그의 시신을 탈취하는 만행을 서슴없이 저지르기도 했다. 

 

2018년 4월 17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삼성그룹을 수리했다. 삼성이 창업 이래 지켜왔던 무노조경영 방침을 폐기시키고 ‘직접고용 합의와 노조를 인정하고 합법적인 노조 활동을 보장한다.’라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올해 11월 삼성의 최고 임원들이 주도했던 노조와해공작 ‘그린화전략’에 대한 1년 6개월에 걸친 법원의 심리를 마치고, 1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46년 전 가수 김민기가 <금관의 예수>라는 곡에서 노래했던 ‘거절당한 손길들의 곤욕의 거리’는 40년이 흐르고도 강남역 그 자리에 그대로 재현되었고, 별이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6년의 시간이 또 다시 흐른 지금도 예외가 아니다. 강남역 사거리에는 24년 동안 복직 투쟁 중인 삼성 해고자 김용희가 크리스마스를 딱 한 달 앞둔 지금 171일 째 고공농성 중이다. 한 신문 사설에서 소설가 김훈이 ‘무력한 글로 지껄이고 따지느니 함께 통곡하는 편이 더 사람다울 것’이라고 쓰고 덧붙인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자꾸 귀에 맴돈다.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월간 참여사회 2019년 12월호(통권 271호)

2014년 10월 모란공원에서 다큐멘터리 촬영 중이던 필자는 최종범 1주기 추모집회를 우연히 마주쳤다. 별이 엄마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권경원

 


글. 권경원 다큐멘터리 <1991, 봄> 감독 

<1991, 봄>은 국가의 불의에 저항한 11명의 청춘들과 유서대필, 자살방조라는 사법사상 유일무이의 죄명으로 낙인찍힌 스물일곱 청년 강기훈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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