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12월 2019-11-28   1199

[특집] 90년생이 왜 ‘오나’? 청년은 항상 거기 있었다

가려진 이슈 ➓  『90년생이 온다』와 세대론 논쟁 

90년생이 왜 ‘오나’?
청년은 항상 거기 있었다   

글.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90년대생 3년차 직장인 

 

2019년 12월호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참여연대에는 화장실마다 ‘공동체약속문’이 붙어있다. 몇 년 전, 더 평등하고 따뜻한 참여연대 공동체를 만들어가자는 의미로 전체 간사가 워크숍을 통해 함께 만들었다. 워크숍에서 간사들은 몇 가지 질문을 받았는데, 그중 하나는 (기억하기로는) “언제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 드나요?”였다. 내가 적어낸 답은 “동료로부터 ‘너네들’, ‘청년들’ 등의 단어와 함께 나와 우리 청년회원을 타자화하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예를 들면 “나는 잘 모르지만 너네는 그렇게 놀지 않니?”, “내가 지금 이 나이에도 청년이라고 불릴 수 있나” 같은 말이다. 이는 물론 자기도 모르던 내면의 ‘꼰대’가 튀어나와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고 싶지 않은, 배려의 마음에서 나온 말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말들이 불편한 이유는, 청년을 ‘나와는 섞일 일이 없는 먼 대상’으로 철저히 타자화하기 때문이다. 

 

최근 비슷한 불편함을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 둘 다 흔히 ‘밀레니얼’이라 불리는 세대를 분석한 책이었다. 요즘 ‘밀레니얼’에 대한 책이 유행이라고 하는데, 청년 사업을 담당하는 나에게는 어쩐지 슬픈 소식이다. 책을 다 읽기도 전부터 책 속의 90년대생이 ‘비’90년대생에게 어떻게 비칠지 훤히 그려졌기 때문이다. 나아가 청년과 ‘비’청년의 불통이 결국 도서 트렌드까지 만들어버렸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에 의해 타자화된 청년 혹은 2030세대는 대의보다 개인에 집중하는 이기적인 부류로 묘사되곤 한다. 안정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며, 그래서 무력해 보이기까지 한다. 기성세대가 자신이 속한 사회와 조직을 생각할 때, 청년은 ‘나’를 먼저 생각하며 작은 가치에 연연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지금의 청년세대는 누구보다 부당함에 예민하다. 경제성장과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 사라져버린 개인의 권리를 대의로 여기는 것이 오늘의 2030세대다. 한순간의 침묵이 동료의 불행, 나아가 사회적 재난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의에 가려진 환경, 여성, 일상 민주주의, 평등, 모두의 권리를 사회적 필요로 만들어내는 것. 지금 청년들이 각자의 조직에서 하고 있는 일이다. 누군가에겐 좀 불편하고 때론 무섭겠지만, 일상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이 사회를 책임지는 시민으로서 청년이 하는 가장 정치적인 행위다. 

 

이처럼 누구보다 정치적으로 발화하고 있는데도 청년은 아직 정치사회적 주체가 되지 못한 것 같다. 청년을 바라보는 이 사회의 시각은 올 한해 화제가 된 밀레니얼 분석 도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 『90년생이 온다』라는 책 제목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 40만 부 가까이 팔리며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나눠주었다는 이 책은 제목부터 청년을 소통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90년생이 왜 ‘오나’? 90년생은 언제나 거기 있었다. 당신의 가족으로, 학교 선후배로, 투표장의 유권자로, 광장에서 뜻을 같이한 촛불로. 항상 그 옆에 서 있었다. 청년은 뜬금없이 나타나 자기주장을 늘어놓는 이방인이 아니다. 청년은 누군가의 동료이며, 이 사회를 함께 책임지는 시민이다. 자기만 잘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구조적 불평등으로 생겨난 틈의 집합체가 청년 문제라면, 그건 결국 모두의 문제다. 

 

청년이 궁금하신지? 우선 ‘청년’이라는 단어부터 떼어놓고 이야기를 시작하자. 우리 사회를 생각하는 동료 시민으로서 대하고 소통하자. 그럼 정말 90년생이 ‘올’ 수도 있다. 


편집위원 한 줄 참견

김동환 서른, 당신의 잔치가 끝났을 때, 그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그들은 잔칫상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황미정 빚더미에 눌려 겨우 졸업한 대학, 10명 중 4명은 공시의 세계로 뛰어든다. 밀레니얼 세대의 화두가 왜 ‘공정성’인지 어떤 사회적 구조에서 탄생했는지 논의가 필요하다 

박태근 90년생은 분명한 실체다. 어떤 이는 책을 읽고 알겠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그럼에도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그와 무관하게 그들은 지금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이다. 90년생이란 틀을 만들기 전에 구체적인 주변의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만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2019 ‘가려진 이슈’ 사이로 

1. 국정농단, 그리고 사법농단도 있었다 / 김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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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힙지로’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 현욱

4. 유기동물 안락사에 대한 어느 수의사의 제언 / 강민형

5. 봉인된 차별금지법, 일상에서 멀어지는 평등 / 미류

6. ‘역대급’ 군비 증강, 남북관계 어디로 가고 있나 / 황수영

7. 일본 방사능은 걱정, 한국 핵발전소는 침묵?/ 강언주

8 ‘이게 나라냐’고 물었지만 안전한 대한민국은 언제 오는가 / 장동엽

9. 데이터3법 ‘가명처리’ 하듯 국민 눈 가릴 텐가 / 희우

10. 90년생이 왜 ‘오나’? 청년은 항상 거기 있었다  / 조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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