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12월 2019-11-28   2289

[특집] 유기동물 안락사에 대한 어느 수의사의 제언

가려진 이슈 ➍  케어 안락사 사태와 동물권  

유기동물 안락사에 대한 어느 수의사의 제언   

글. 강민형 나비누리 동물병원 진료수의사

 

 

월간 참여사회 2019년 12월호(통권 271호)

 

지난 1월, 국내 3대 동물권 단체 중 하나인 ‘케어’의 박소연 대표가 지난 4년간 200마리 이상의 동물을 안락사 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동물학대 사건에 적극적인 구조 및 모금 활동을 하던 동물권 단체 대표가 명확한 가이드라인 없이 무분별한 안락사를 시행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러나 구조 동물 대량 안락사 혐의가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는 여전히 케어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

 

2019년, 국내 반려동물 양육인구는 약 1천만 명으로 증가했다. 그에 비례해 유기동물 수도 늘어나고 있다. 유기동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14년부터 동물등록제를 의무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기동물 이슈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해외 동물보호단체·국제수의사단체 연합ICAM이 제시한 동물 안락사 기준의 하나로 ‘자원부족Lack of Resources’이 있다. ‘자원부족’이란 재정 부족, 인력 및 장비 부족, 시설 부족 등으로 동물의 치료와 돌봄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을 의미한다. 하지만 동물보호단체에서 구조한 동물을 자원부족을 이유로 안락사를 허용해선 안 된다. 자칫하면 무분별한 구조와 무책임한 안락사를 허용하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동물 임상 수의사로서 처음 동물을 안락사시킨 날의 기억은 잊을 수 없다. 나의 결정으로 한 생명이 사라진다는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고,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무뎌지지 않았다. 수의사이자 반려 동물과 함께 사는 보호자로서 무분별한 동물 안락사를 줄이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첫째, 동물보호단체와 지차체보호소의 구조 능력 및 수용 능력을 확대해야 한다. 즉, 인력과 예산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공감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둘째, 동물보호소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다. 올해 3월, 국회 입법조사처는 사설보호소에 대해 운영기준이 없고 실태파악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지목했다. 보호소 운영자의 성향이나 여건에 따라 동물을 모으는 데 집착하면서 정작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애니멀호더animal hoarder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차제보호소 외의 사설보호소 또한 운영자격, 시설기준, 질병관리, 반환 및 분양 등 운영기준을 마련해 신고하도록 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 

 

셋째, 반려동물 유기 처벌 강화다. 2018년, 동물 유기 벌금이 10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상향되었다. 그러나 단순한 벌금형 처벌로는 유기동물 수를 줄여나갈 수 없다.

 

넷째, 반려동물 입양에 필요한 절차를 제도화해야 한다. 유럽과 같은 동물 복지 선진국에서는 동물 입양 시 일정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가족구성, 경제상황, 주택환경, 근무시간 등이다. 독일에서는 분양샵을 통한 매매를 금지하고 있으며 브리더를 통한 출생 전 예약, 보호소에서 입양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입양이 가능하다. 반려인은 반려동물 자격증을 취득하고 별도의 세금을 낸다.

 

동물은 말을 할 수 없다. 이 당연한 사실로 인해 그들은 자신의 최소한의 생명권(동물권)을 주장할 수 없다. 그들의 삶이 온전히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결정은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편집위원 한 줄 참견

박태근  동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상식이 되었다고 믿었으나, 길고양이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사람이 먹고사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을 때만 앞선 말이 상식으로 여겨진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생명’이라는 공통분모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거라 여전히 믿는다

조준희  금세 잊힌 안락사 이슈와 뒤이어 찾아온 아프리카돼지열병 사태, 우리는 생명에 대한 사회 윤리를 아프게 성찰할 계기를 계속해서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19 ‘가려진 이슈’ 사이로 

1. 국정농단, 그리고 사법농단도 있었다 / 김희순

2. 잊혀진 제주 예멘 난민, 그들의 행방을 찾아서 / 이일

3. ‘힙지로’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 현욱

4. 유기동물 안락사에 대한 어느 수의사의 제언 / 강민형

5. 봉인된 차별금지법, 일상에서 멀어지는 평등 / 미류

6. ‘역대급’ 군비 증강, 남북관계 어디로 가고 있나 / 황수영

7. 일본 방사능은 걱정, 한국 핵발전소는 침묵?/ 강언주

8 ‘이게 나라냐’고 물었지만 안전한 대한민국은 언제 오는가 / 장동엽

9. 데이터3법 ‘가명처리’ 하듯 국민 눈 가릴 텐가 / 희우

10. 90년생이 왜 ‘오나’?청년은 항상 거기 있었다  / 조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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