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01-02월 2019-12-30   1402

[만남] 불온한 인터뷰 – 김지문 회원

불온한 인터뷰  

김지문 회원

 

참여사회 2020년 1-2월 합본호 (통권 272호)

 

그를 만나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이거였다. 언제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졌는가. 

 

“참여연대에서 천안함 재조사를 요구했을 때였어요. 그전까지는 정치나 사회 문제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죠. 그때 아버지(김민영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가 거기서 일하시기도 했고, 참여연대 앞에서 시위하는 우익단체들의 모습을 보면서 왜 이런 사회갈등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어졌어요. 그 일을 계기로 사회과학 서적들도 읽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그는 중학생이었다. 무슨 책을 읽었느냐고 묻자 그의 입에서 『리바이어던』, 『국부론』과 같은 제목들이 쏟아진다. 문득 『굿바이 미스터 블랙』을 열심히 읽던 나의 중학생 시절이 떠올랐으나, 애써 지웠다. 

 

아버지 그리고 아들

군에 입대하기 전 그는 참여연대 청년조직 청년참여연대(이하 ‘청참’)의 준비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청참 활동을 시작했는데 너무 즐거웠어요.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도 그때 만났고요. 청참 활동을 하며 가장 좋았던 건 ‘불온 대장정’인데, 서울부터 땅끝까지 장기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 가서 주민들을 만나고 투쟁의 의의를 찾아보던 활동이었죠.”

 

근데 군 제대 이후엔 청참 활동이 뜸하다고 들었어요. 

“그전부터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어요. 대학에 다니면서 많은 사상을 접하기도 했고, 시민운동의 영역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 문제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중 가장 큰 문제의식은, 시민사회 운동이 정치와 연결되지 못하고 진보적 정당들이 더 이상 운동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그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노동운동, 성소수자운동, 여성운동, 청년운동 등이 정당과 결합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 이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다. 

“그런 활동들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정당이 정의당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군대 가기 전부터 중앙청년학생위원회 집행위원, 지역위원장, 대학위원장직을 맡았는데 그러면서 청참 활동이 좀 뜸해지기 시작했죠.”

 

시민운동을 해 온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지금 전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도 제가 활동하는 것에 대해 전폭적으로 지지만 하시는 건 아니고요. 아버지는 민주당원이니까 제 입장에선 민주당의 부족한 점에 대해 비판할 수밖에 없는 거죠.”

최근에는 특히 ‘조국’과 관련된 이슈로 아버지와 많이 싸웠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여러 문제에 대해 의견이 다르긴 하지만, 아버지만큼 존경하는 인물도 없어요. 정치적 견해가 다른 것과 존경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꾸준히 청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민주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청참의 활동가들이 열성적으로 노력한다는 걸 잘 알아요. 안타까운 점은, 시민사회 영역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학 내 여러 문제나 등록금 같은 이슈에서 정당의 참여를 꺼리는 경향이 있어요. 운동이 정치와 연결고리를 갖고 세상을 바꾸어나가야 하는데, 정당이 운동을 지지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영역을 좁혀왔듯이 시민사회도 순수성과 시민성을 강조하고 정당과 연대할 수 있는 부분을 배제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좁혀가고 있죠. 이건 청참뿐만이 아니라 청참이 연대하는 대학생 네트워크들, 총학생회들이 비정치화됨으로써 생기는 문제 같아요. 이런 지점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함께 노력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청년당원모임 ‘모멘텀’을 만들다 

그가 건넨 명함을 찬찬히 바라봤다. ‘정의당 청년당원모임 모멘텀 조직국장.’ 15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청년들의 모임 ‘모멘텀’은 학내와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에서 노동자와 그리고 성 소수자, 여성 등의 소외계층들과 함께 연대하고 투쟁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모멘텀은 정의당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날카롭고도 뼈아픈 소개로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국 노동당의 ‘모멘텀’이란 조직에서 모티프를 따왔는데, 만들어진 지는 5개월 정도 됐어요. 대부분 24세 미만으로 특정 정파를 떠나 운동 정치의 복원을 원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죠. 옛날 같은 ‘사회구성 논쟁’이 아닌, 다양한 계층과 정체성이 뭉쳐서 정치 지형을 바꿔나가는 데 목적을 두고 있어요.” 

 

영국 노동당의 ‘모멘텀’은 당이 제시하는 ‘제3의 길’ 노선과 블레어 주의자들의 우경화를 비판하며 만들어진 노동운동가들과 청년당원들의 그룹이다. 2010년대로 접어들며 중앙당이 노동자와 청년 등 대중들이 원하는 진보적 이슈를 수용하지 못하자 대안을 찾기 위해 치열한 논의를 거듭했던 이들은 결국 당 안에 새로운 좌파 조직 ‘모멘텀’을 건설했다.  

“5명으로 시작한 영국 노동당의 ‘모멘텀’은 10년 만에 5만 명을 모았어요. 그리곤 결국 2017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죠.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이 정의당을 비롯해 현재 한국의 모든 진보세력에도 해당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자리에 누구와 함께 있든지 상관없이 늘 뜨거운 감자인 ‘정치’가 화두에 오르자 그의 목소리가 가팔라졌다. 

“그냥 젊은 사람 데려다가 공천해서 국회의원 시키는 건 자유한국당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진정한 ‘청년정치’는, 청년이라는 틀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들의 고민과 문제점에 관심을 기울이는 정치 세력이 등장해야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현재는 대표성 있는 청년들을 어떻게 선출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청년 비례대표 할당 방안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논의조차 모든 정당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의 대화는 현시점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조국’ 관련 이슈에까지 흘러갔다.   

“조국 사태를 위시한 여러 문제가 공정한 경쟁이란 게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경쟁’ 자체, ‘능력’을 위주로 하는 이 사회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거죠. 수능시험도 겉으론 공정해 보이지만 거기에 얼마나 많은 돈과 자원을 투자할 수 있는가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불평등할 수 있거든요. 여러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경쟁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고 해도 경쟁이 과열되는 것은 막아야 해요. 어떻게 하면 더 공정한 과정과 평등한 결과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다양한 시도들도 해나가야 하고요.”

 

민주당이나 심지어 정의당 내에서도 진보적인 이슈들을 어떻게 현실에서 구체화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자체가 거부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여전히 기성 정치권은 말만 앞세울 뿐 앞으로 한발 나아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참여사회 2020년 1-2월 합본호 (통권 272호)

지난 11월 23일, 김지문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모멘텀의 홍콩 민주화 시위 지지 집회 사진 Ⓒ김지문

 

홍콩에 대해 말하다 

‘나 김지문은 홍콩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한양대학교에서 1인 시위를 하겠습니다.’

지난 12월 초 <경향신문>에 실린 한 기사의 제목이다. 그의 관심사가 국내 문제에만 머무르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그동안 진보 정치에선 국제연대라는 부분이 너무 협소했어요. 위안부 성노예 문제나 베트남전 때 한국군이 끼친 피해 등 몇몇 이슈에 대해서만 연대가 이뤄졌죠. 근데 민주화나 인권 등 진보 좌파가 지향하는 가치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문제니까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도 처음엔 홍콩 시위에 관심이 있는 중국 본토 친구들을 위해 관련 정보를 모으는 것 정도였다. 그러다 갑자기 ‘대자보 사태’로 인해 상황이 심각해졌다.  

“작년 11월 즈음에 고려대학교의 모멘텀 회원들이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한 대자보를 붙였다가 중국 유학생들한테 공격을 당했어요. 그 일이 저희 조직과 시민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결국 저도 이 일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죠.” 

 

이어 그는 홍콩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일국양제 내에서 홍콩의 자치가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정치적 불평등, 영국 식민지였을 때부터 주요 대기업과 재벌들이 홍콩 내의 모든 사회적 서비스와 토지 이용권을 독점해 오고 있는 것과 취약한 사회적 안전망으로 요약되는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친중 언론’과 ‘홍콩의 독립을 주장하는 언론’의 두 그룹이 과대 대표되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실제로 홍콩의 독립을 주장하는 이들은 시위 지지자들의 5~10%밖에 되지 않는단다.

“한국 청년들의 관심도 엄청나요. 제가 다니는 대학만 해도 거의 매일 100명 이상이 찾아왔어요. 또 여러 대학교에 ‘레넌 벽Lennon Wall이 설치되기도 했죠.”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우리가 과거에 거쳤던 민주화 운동의 길을 지금 홍콩이 겪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연민을 느끼고, 공감하는 거죠. 그리고 한국에 있는 중국 유학생들의 반응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것 같아요. 저처럼 홍콩 시위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청년들을 향해 홍콩 독립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세력이라고 사실을 왜곡하고 대자보를 훼손하는데, 이런 행동들이 오히려 더 큰 반향을 만들어낸 것 같아요.”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승을 거두며 홍콩 시위와 관련된 한국인들의 관심이 조금  사그라든 것 같은데, 이후의 행보는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요?

“홍콩 시위가 일단락되면, 강연회 같은 것을 열어 현재 홍콩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인들이 왜 지지했는지, 왜 그렇게 강력한 공감을 발휘했는지, 왜 이전의 다른 국제 이슈보다 홍콩 시위에 더 집중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같이 분석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홍콩 시위와 관련한 경향신문 기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홍콩 민주화 운동에서는 한국의 급격한 파편화와 축적되는 사회적 분노, 그리고 정치적 불평등이 만들어낼 ‘다가올 미래’가 보인다.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만 같은 거대한 권력에 맞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동북아시아 청년들의 연대가 보인다.”

 

청년들이여, 불온한 대안을 상상하라 

그와 함께 한 1시간 남짓한 인터뷰는 A4용지 9장 분량. 짧은 지면 탓에 이야기를 덜어내야 하는 것이 아쉽다. 다만 세상을 제대로 바꿔내고 싶은 그의 열정만은 어떻게든 담고 싶었다. 

“청년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문제는 ‘정치 참여’입니다. 고학력이라 불리는 좌파 석학들부터 밑바닥에서 복직 투쟁하는 노조 분들까지 저희를 보면 “얘네가 어디서 배웠는지 기특하게 나와서 이러네.” 이러는데, 우리가 단지 ‘젊은이’, ‘청년’이 아닌 ‘정치세력’이라는 것을 알려야 해요. 청년들의 아젠다를 담아내려면,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은 정치참여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절대로 바뀔 것 같지 않은 거대한 권력에 맞서 끊임없이 불온한 대안을 상상하고 있는 ‘정치세력’이 있다. 

 

 

❶  황미나 작가가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모티프로 하여 창작한 만화

❷  1980년대 체코 공산정권 시기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대가 수도 프라하의 벽에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의 노래 가사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구호를 적어 저항하던 데서 시작되었다. 2019년 홍콩 시민들이 송환법 반대와 홍콩 자유를 요구하는 내용의 포스트잇 메모를 도심 벽에 붙이면서 또다시 ‘레넌 벽’이 등장했다. 대학 내에서는 홍콩 민주화 시위 지지 게시물을 부착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글.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9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사진. 이한나 미디어홍보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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