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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20년 01월
  • 2019.12.30
  • 749

혐오에 맞서는 대항표현

글. 유민석 혐오표현 연구자 

 

 

참여사회 2020년 1-2월 합본호 (통권 272호)

 

어째서 대항표현인가?

대항표현counter speech은 혐오표현을 논박하고 약화하는 맞받아치기, 되받아쳐서 말하기로 알려져 있다. 이런 대항표현이 꼭 거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혐오표현 연구자인 외자스랍 제이넵Özarslan Zeynep에 따르면, 터키와 쿠르드족 간의 군사분쟁과 지진이라는 자연  재해 이후 소셜 미디어인 트위터에서는 “신의 징벌이었다”, “죽어도 싼 테러리스트” 같은 혐오표현이 급증했지만,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구조하고 돕자”는 식의 반대 트윗, 즉 혐오자들을 비난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트윗도 같이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혐오자들을 비난하고 희생자들에게 연대하는 트윗들 역시도 대항표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 매년 혐오에 맞서 사랑을 이야기하는 퀴어문화축제, 장애인 단체들의 투쟁, 나아가 세월호 유가족들과 5.18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들의 투쟁에서 볼 수 있었듯이, 이미 많은 사람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뿌리 깊은 폐부인 차별과 혐오를 폭로해 왔고, 저마다 다양한 방식들로 폭력을 증언해왔다. 이 모든 활동은 차별과 혐오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대항표현이자, 같이 모인 사람들의 연대와 지지와 응원을 확인하는 역량 강화의 자리라고 볼 수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과 불법 촬영물 규탄 집회부터 최근에 뜨거웠던 ‘미투#MeToo 운동’, 성폭력 피해에 맞선 “우리는 서로에게 용기다”라는 슬로건은 이런 대항표현이 갖는 역량 강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미투 운동에 참여한 많은 여성은 다른 여성들의 증언과 폭로와 투쟁에 용기를 얻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점에서 대항표현은 피해자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갖는다.

 

대항표현 때문에 혐오가 심해지는 것은 아닐까?

지하철에서 아랍계 여성을 향해 “너희 나라로 돌아가”, “조용히 살아”, “죽이겠다”고 할 때 주변에서 다른 승객들이 아무도 말리지 않고 그 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한다면, 그 상황은 혐오발화자가 기세등등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상황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다른 승객들의 방관과 침묵으로 인해 그런 혐오표현이 확산될 수 있는 것이다. 

 

혐오표현은 사람들의 방관과 묵인을 통해서 힘을 갖기도 한다. 이런 사례는 혐오표현에 목소리를 내야 할 어떤 도덕적인 의무가 요청된다는 것 역시 보여준다. 따라서 혐오표현이 방관으로 인해 힘을 획득한다면, 역으로 대항표현은 혐오발화자에게 분명한 이의제기를 함으로써 힘을 약화하기도 한다. 

 

나아가 대항표현은 혐오발화자들을 변화시키거나 설득하기도 한다. 대항표현 연구자인 캐서린 겔버Katherine Gelbel의 말대로, 공동체의 대항표현은 시간이 흘러 혐오발화자의 행위나 태도의 변화를 달성할 수도 있다. 심지어 설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공론장에서는 혐오발화자가 대놓고 혐오표현을 하지 못하도록 교화시키는 기능도 있다. 혐오자들이 위선적인 척이라도 하도록 유도하는 기능이 있는 것이다.

 

대항표현과 혐오표현을 구분할 방법이 있을까?

많은 사람은 사회경제적 기득권이나 부패한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와중에 장애인 혐오표현이나 여성 혐오표현을 하기도 한다. 또한 여성들 역시 성 소수자나 장애인 혐오를 하기도 한다. 권력관계가 복잡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혐오표현 연구자인 마리 J. 마쓰다Mari J. Matsuda의 주장대로, 이런 사례들의 경우 비난의 대상이 일정 부분 기득권이 있을 수 있지만, 여전히 다른 부분에서는 사회적 약자로서 욕설과 차별, 희롱을 경험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이런 표현들은 기존의 억압적인 차별과 공모하는 방식이고 혐오를 재생산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대항표현이라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혐오표현과 대항표현은 뭐가 다른 것일까? 차별 및 불평등, 반차별과 평등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우리는 혐오표현과 대항표현을 가를 수 있다. 어떤 표현이 또 다른 누군가에 대한 차별이나 불평등을 자행하고 영속시키며 강화한다면, 그런 표현은 대항표현이 아닌 혐오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대항표현이라는 명분으로 다른 사회적 약자 집단을 향한 혐오를 강화하거나 그들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단서 조건이 있다. 대항표현 역시도 오용하거나 남용해서는 안 되며, 그런 표현들은 대항표현이라는 명분으로 혐오표현의 기능을 되풀이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항표현을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을까?

세월호가 지긋지긋하다는 한 정치인에게, 세월호 유가족들은 “자식은 부모에게 지겨울 수가 없다”고 항변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 특수군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혐오표현에 맞서서 영화 <김군>은 이를 반박하는 내용을 영화로 표현한다. 코미디언 김숙은 “어디 아침부터 남자가 인상을 써?” “남자 목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패가망신한다는 얘기가 있어” “집안에 남자 잘 들여야 한다더니”라며 그동안 여성들이 들어야 했던 성차별적인 여성 혐오표현을 되돌려주기도 한다.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이처럼 혐오표현의 의미를 전복시키거나 혐오발화자의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부당한 차별과 불평등을 폭로하거나 거부하고, 피해자들의 역량 강화를 드러내고, 기존의 혐오표현의 의미를 전복시키는 표현이라면, 모두 대항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치학자 캐서린 겔버Katherine Gelber는 구체적인 대항표현의 방식들을 제시한다. 

 

첫째로, 혐오표현이 묘사하고 있는 불평등의 사실성 여부에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맞받아칠 수 있다. 예컨대 이를테면 “야, 이 바보야, 멍청아”라는 혐오표현에 대해서 “난 지난 모든 시험에서 A+를 받았거든?”이라고 맞받아치는 식이다. 

 

둘째는, 혐오표현이 지지하는 차별이라는 규범이나 가치의 정당성을 거부하고, 반차별이라는 규범 및 가치에 의지하여 되받아치는 방식이 있다. 이를테면 “야, 이 바보야, 멍청아”라는 혐오표현에 대해 “당신은 나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라고 응수하는 식이다. 

 

셋째는, 화자의 내면적인 주관 세계, 즉 진정성에 호소함으로써 대응하는 방법이다. “야, 이 바보야, 멍청아”라는 혐오표현에 대해 “나는 네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단다.”라고 호소하는 식이다. 대항표현은 개인이 그 자리에서 할 수도 있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연대를 조직하여 보다 집단적으로 행할 수도 있다. 성명서, 리플렛, 청원, 집회, 반론보도 요청, 전단지, 칼럼 같은 다양한 형식들이 모두 대항표현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혐오표현이 길거리에서 발생했다면, 피해자 및 피해자 집단은 인근 지역 내에서 지역 신문 배포를 제작함으로써 대응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직장과 같은 좀 더 공적인 장소에서 발생했다면, 대항발화자는 그 직장 내에서 반인종차별 프로그램의 개발을 도울 수 있다. 혐오표현이 언론에서 발생했다면, 대항발화자는 동일한 시청자·구독자에 도달하는 동일한 매체에 반론의 권리를 요구할 수도 있다.

 

나아가 국가 공직자나 정치인 또는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차별시정기구가 피해자들을 대신해서 대항표현을 할 수도 있다. 이런 대항표현을 시민 사회의 대항표현과 구별하여, ‘국가 중심 대항표현state-based counter speech’이라고 한다. 국가 중심 대항표현은 대항표현의 당사자가 피해자 개인이 아니라, 그를 대표하는 보다 권위를 갖는 제3자(국가나 시민단체)가 대항표현의 주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국가 고위 공직자가 차별이나 혐오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직접 분명히 내주거나, 아니면 보다 간접적인 방식으로 혐오에 맞서 싸우는 정부 산하기관이나 시민단체에 지원을 제공해주는 방식도 존재한다. 철학자 맥심 르푸트Maxime Lepoutre는 이런 국가 중심 대항표현은 개인적인 대항표현이 가지기 쉬운 권위의 부재나 추가적인 이중 부담 같은 한계점들을 최소화해 준다고 설명한다.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혐오표현금지법의 처벌적이거나 규제적인 형사적 대응보다는, 대항표현의 사회적 대응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 혐오표현을 법으로 억제하여 금지할 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검열과 사상검증의 위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대항표현의 활성화는 그런 우려가 없다. 사법부의 법적 다툼으로 운동이 축소되지도 않으면서, 근본적으로 침묵 당해왔던 소수자들이 직접 말대꾸함으로써 혐오표현의 메시지를 거부하고, 침묵시키는 해악을 상쇄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언어철학자 린 티렐Lynn Tirell의 말대로, 언어는 세계를 억압하기도 하지만, 세계를 변화시키는 도구이기도 하다. 평등과 반차별의 메시지를 담은 대항표현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특집 혐오의 시대에서 공존의 시대로

1. 왜 혐오의 시대가 되었나?  이승현

2. 혐오표현의 자유? 홍성수

3. 혐오에 맞서는 대항표현 유민석

4. 혐오와 싸울 권리를 허하라  한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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