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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03월
  • 2020.03.01
  • 616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우는 평화  

문아영 회원 ・ 피스모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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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기사를 쓰는 동안 코로나바이러스가 다시 세를 확장하고 있었다.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특정 지역이나 종교, 특정 환자에 대한 혐오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문득 문아영 회원과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녀는 평화를 사랑하기에 혐오하는 사람에 대한 혐오를 거부했다. 누구나 생존의 두려움을 느끼면 그럴 수 있다며 혐오하는 사람의 입장까지도 충분히 이해했다.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계속 세상을 향해 ‘다정한 말 걸기’를 시도하는 그녀. 새삼 그녀와 피스모모의 존재가 더 귀하게 느껴졌다. 그녀를 지난 2월 14일, 피스모모에서 운영하는 카페 ‘트랜스’에서 만났다. 

 

교육을 통해 평화를 말하다

문아영 회원은 평화교육단체 피스모모의 대표다. 피스모모는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와 함께 캠페인이나 시위에 참여하는, 참여연대의 파트너이기도 하다. 

 

“참여연대는 이미 회원이 많으니 굳이 나까지 후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한국의 시민사회에 힘을 실어줘야겠다는 위기감이 들어 2012년부터 후원을 시작했어요.”

 

먼저 그녀가 운영하고 있는 피스모모의 소개를 들어봤다.

 

“피스모모는 평화교육단체예요. 기존의 평화활동이 활동 중심이었다면, 저희는 교육을 통해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을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처음에는 교사 연수로 시작했어요. 그러다 청소년들을 직접 만나달라는 요청에 청소년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전공했다는 그녀, 어쩌다 평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을까.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학생은 조용히 앉아 수업을 들어야 하는, 억압을 전제로 한 교육이 제겐 불편했어요. 학생의 권리를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권과 전쟁, 난민 문제로도 관심이 확장됐죠. 그러다 당시 참여연대 평화실행위원이셨던 이대훈 님을 만나 평화학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어요. 평화학을 공부해보니 평화학이 제 고민과 질문에 가장 잘 대답해주더라고요. 코스타리카에서 평화교육학 석사를 받고 돌아와 2012년 ‘평화교육프로젝트 모모’(피스모모의 전신)를 시작하게 되었죠.”

 

단체 이름 ‘모모’라는 단어에 그녀가 생각하는 평화교육의 가치가 담겨 있었다.

 

“모모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먼저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교육에서 벗어나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운다는 말이고요.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해요. 『모모』에서는 사람들이 일하는 시간 이외의 시간을 다 저축하거든요. 은퇴하고 이자까지 쳐서 돌려받으려고요. 하지만 주인공 모모는 시간저축은행 금고를 털어 사람들의 저당 잡힌 시간을 되찾아내죠. 저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폭력적으로 변하는 이유가 시간이 없어서라고 봐요. 너무 바쁘니까 갈등 상황을 깊게 들여다보고 전환해나갈 시간도 없는 거죠. 평화 문제에서 ‘시간 부족’을 핵심으로 가져가고 싶었어요.”

 

온몸으로 경험하는 배움

그렇다면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우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 이번에도 거침없이 답하는 그녀. 

 

“좋은 질문이 필요하죠. 그리고 좋은 질문을 통해 좋은 대화가 일어나게 하는 것이 촉진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구성할 때 촉진자의 역할을 깊게 고민해요. 일단 ‘여기 온 모든 분들을 환대하고 그 환대 속에서 서로 배운다’는 원칙을 합의해 안전한 배움의 공동체를 만듭니다.

 

다음에는 질문을 통해 대화를 시작하죠. 교육 중간에 놀이처럼 보이는 활동을 많이 배치하는데요. 만약 ‘권력관계’가 주제라면 실제로 권력관계를 경험할 수 있는 활동을 해보는 거죠. 예를 들면 ‘인형극’ 활동에서는 1분 동안 한 사람은 조종자가, 다른 사람은 조종 받는 사람이 됩니다. 잠깐이지만 ‘결정권 없음’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거죠. 그리고 그 경험은 자연스럽게 일상에서의 경험과 연결됩니다. ‘나 아르바이트할 때 이런 느낌이었는데’, ‘직장 상사랑 이런 적 있었어’ 하는 식으로요.

 

이렇게 몸의 경험을 바탕으로 배움을 구조화시키는 활동을 한 뒤, 개인의 경험에서 사회 구조의 문제로 확장해 ‘일방적인 권력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이 바뀌어야 하나’를 함께 고민합니다. 이렇게 머리에서의 배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로 확장할 수 있는 교육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설렜다. 몸으로 생각하고 배우는 교육이라니. 하지만 처음 현장에서는 피스모모의 방식을 낯설어하기도 했다.

 

“초창기에는 책상을 치우고 둥그렇게 앉아 몸을 써서 활동한다고 하면 선생님들이 힘들어하셨어요. 저희가 7년 2개월 동안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나왔는데요, 그 사이 교육 현장에선 몸을 쓰는 것이 새로운 교육방식으로 받아들여졌어요.”

 

국가까지 아우르는 평화교육

피스모모의 평화교육은 개인만이 아니라 국가 간의 평화까지 아우르고 있다. 

 

“2014년에 탈분단 캠페인이란 걸 만들었는데요, ‘분단이 개인과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사회구성원 개개인이 분단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렇기에 개인이 분단을 해체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최근 들어 한국에 평화통일 교육정책이 생겼는데 정책단에서도 ‘탈분단’이란 개념을 고민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것도 피스모모 활동의 성과 중 하나입니다.” 

 

작은 단체이지만 참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는 셈이다. 피스모모 사무국의 구성원은 현재 12명이다. 그녀는 활동가들에게 서울시 생활임금(2020년 기준 시급 10,523원)에 준하는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피스모모의 부채는 자연스럽게 늘어 작년 기준으로 1억 원이 넘었다고 한다. 걱정되지 않은지 물었다.

 

“평화교육의 성과가 단기간에 나오진 않으니 후원을 요청했을 때 무게감이 다른 것 같아요. 저희의 사업 규모를 생각하면 회원이 많아야 지속 가능하거든요. 아직은 회원이 400명 정도라 더 많은 회원님들이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부채는 저희가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고요. 회원이 조금씩 늘고 있으니 차근차근 갚으면서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날것의 세상으로 나가다

피스모모는 작년 4월부터 서울 불광역 근처에 카페 ‘트랜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에게 혹시 카페를 운영하는 것도 재정난 때문인지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어느 순간 피스모모가 만나는 사람들이 굉장히 한정적이더라고요. 평화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나 시민사회영역에 있는 사람만 만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정작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들은 어디서 만나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날것의 세상으로 들어가자고 결심해 카페를 열었죠. 누구든 이 공간을 이용하면서 여기는 왜 이렇게 운영하지, 또 왜 저런 메시지가 있지 하며 궁금해 해주길 바랐어요. 그래서 일부러 피스모모가 운영한다는 걸 드러내지 않았죠.”

 

단체 운영만으로도 바쁠 텐데 실제로 카페를 해보니 어떤지 물었다.

 

“재밌어요. 이 공간에서 소소한 만남이 계속 일어나니까요. 하루는 동네 아저씨들이 제주 제2공항 아웃 푯말은 왜 붙였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친구들이 제주 제2공항 철회를 위해 싸우고 있어요.”라고 말씀드렸죠. 아저씨들은 제주도에 지금 비행기가 너무 많아서 공항이 필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럴 땐 “우리가 관광을 좀 덜 가면 어떨까요?”하고 권유해보는 거죠. 이런 대화 속에서 서로 배우고 알아차리는 순간들이 생기더라고요. 재밌는 게 운영자는 손님한테 욱할 수 없잖아요(웃음). 그래서 어떤 언어로 다가갈지 두 번, 세 번 고민하게 되죠. 어쩌면 저는 이렇게 일상에서 배우는 걸 꿈꿔왔던 것 같아요. 세상이 곧 교실이니까요.”

 

분위기를 바꿔서, 조금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예멘 난민 사태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극명하게 드러난 우리 사회의 혐오. 어떻게 하면 우리가 혐오를 극복하고 좀 더 평화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지 물었다.

 

“사람이 누군가를 간편하게 혐오하고 배제하는 건 본인은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잖아요.  언제든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결국 나만은 피해자가 되지 않을 거라는 ‘착각’을 돌아보게 하는 많은 질문과 대화가 필요합니다. 

 

또 한국 사회에 혐오와 배제가 일어나는 데에는 전쟁과 분단, 압축 성장의 영향이 큽니다. 그렇기에 혐오하는 사람을 탓하기 전에 우리는 어째서 나의 생존에만 집중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사실 우리에겐 누군가와 함께 생존의 두려움을 극복해 본 경험이 별로 없어요. 결국 시간이 필요하고 길게 보고 가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트랜스

피스모모가 운영하는 불광역 인근 카페 트랜스 내부 전경. ‘차별 없는 가게’ 스티커가 눈에 띈다  

 

평화로부터 일어난 변화

피스모모에서 활동하면서 문아영 개인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사실은 제가 분노도 많고 까칠한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평화교육을 시작한 이후에는 많이 변해서 가족들이 놀랐어요. 어머니께서 ‘아영아, 네가 평화교육을 해서 얼마나 다행이니’ 하실 정도로요. 제가 말하는 가치에 따라 살고 싶어서 제 말과 행동을 계속 돌아보고 고쳐왔어요. 그러다 보니 전이라면 쉽게 분노했을 상황에서도 먼저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마지막으로, 그녀가 최근 일상에서 평화를 느낀 순간은 언제인지 물었다. 

 

“양극단의 순간이 있었어요. 먼저 안온하고 평화롭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퇴근하고 잘 준비를 마친 다음, 침대에 누워 내 배 위에 있는 고양이들의 무게를 느낄 때. 참 평화롭고 행복해요. 반대로 제가 지향하는 불편하지만 역동적인 평화의 순간도 있었어요. 최근 호르무즈해협평화집회가 있었는데, 근처에서 보수 단체의 집회가 열리는 바람에 경찰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지켜줬어요. 그 안에 앉아있는데 밖에서 부부젤라를 불면서 “빨갱이들아”하고 외치더라고요. 그 소리를 들으니 ‘아, 그래도 내가 저기에 있는 게 아니라 평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속에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죠. 내가 어디에 서있고 싶은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어요.” 

 

불편하면서도 역동적인 평화의 순간이라니. 그녀는 낯설고 불편한 상황에서도 평화로이 존재하는 법을 깨달은 것 같았다. 생각의 틀을 부수고 갈등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을 때 다가오는 더 큰 평화. 그 ‘역동적인 평화’가 그녀가 8년 동안 평화교육을 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구나 싶었다. 그녀에게서 나오는 평화의 기운이 우리 사회 곳곳에 스미기를.

 


글. 금민지 시민객원기자 

다큐멘터리, 상담, 명상, 자연 치유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공부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해 주한독일문화원 온라인매거진에서 도서관 이용자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사는 길을 찾아 글이나 강의, 다른 어떤 형식으로든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꿈이다.

녹취. 조연우 자원활동가 

사진.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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