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인뉴스] 위기라는 분기점 이후 전환을 살펴보다

위기라는 분기점 이후 전환을 살펴보다

온라인 연속좌담 ‘위기에서 이후를 보다: 한국판 뉴딜과 그린뉴딜’ 개최

 

글. 김건우 참여사회연구소 간사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용어는 지구의 역사에서 인류의 등장이 초래한 급격한 변화, 일종의 생태적 대격변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아직 학문적으로 합의된 개념은 아니지만,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지속되어온 인간의 생산방식이 파괴적인 생태 착취를 자행했고, 지구의 신진대사에 구조적 변화를 꾀했다는 걸 뜻한다. 하나의 지질시대로 규정될 만큼 인류의 ‘위대한 성취’는 지구에 재앙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파리기후변화협정을 거쳐 지구의 생태가 현재의 생산방식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는 위기감으로 나타났고, ‘1.5℃’라는 저지선으로 합의되었다.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말처럼 우리는 “미래를 훔치고 있다”. 

 

미래를 대가로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그런 지속 불가능한 상황을 우리는 위기라고 한다. ‘위기’란 기존의 것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위기 전과 후가 연결되지 않는 상태이며 그 단절은 곧 무언가의 해체나 소멸을 내재한다. 하지만 인류는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사라짐을 선택할 수 없다. 낡은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의 전환을 선택해야 한다.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는 위기라는 분기점 이후의 전환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6월 16일과 18일에 걸쳐 온라인 연속 좌담 <위기에서 이후를 보다: 한국판 뉴딜과 그린뉴딜>을 개최했다. 

 

월간참여사회 2020년 7-8월 합본호 (통권 277호)월간참여사회 2020년 7-8월 합본호 (통권 277호)

연속좌담 <위기에서 이후를 보다: 한국판 뉴딜과 그린뉴딜> 생중계 화면 갈무리. 1회차는 김공회 경상대 교수, 나원준 경북대 교수, 윤홍식 인하대 교수, 이승윤 중앙대 교수(왼쪽), 2회차는 김공회 경상대 교수, 남종석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이사, 김선철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이 패널로 참석했다(오른쪽). 전체행사는 참여연대 유튜브에서 다시보기로 시청할 수 있다 ©참여연대 

 

전환은 가능한가?

뉴딜New Deal이 유행이다. 전쟁과 대공황이 몰아친 20세기 초의 위기와 현재가 유사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특히 그린뉴딜의 경우, 영미권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정책으로 제출되었거나, 시행 중이다. 날로 심화되는 불평등과 인류세라는 역진불가능한 생태적 위기는 이렇듯 세계적 차원의 ‘전환’을 요청하고 있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뉴딜’로 대표되는 한국판 뉴딜 또한, 그런 요청에 대한 하나의 답일 것이다. 하지만 좌담에 참석한 패널들은 한국판 뉴딜이 전환에 미달하는 낡은 것의 토대 위에 있다는 데 동의했다. 

 

윤홍식 교수는 현재 정부가 제출한 뉴딜은 박정희 정권 이래로 지속되어온 개발(산업)정책의 줄기에 놓여 있으며 ‘뉴딜’의 포인트인 패러다임 전환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뉴딜은 금융에 대한 자유를 억압(통제)하는 등 기존의 자유시장주의적 이데올로기로부터 국가의 개입이나 사회적 협약deal을 달성하는 방식으로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패널들은 당시의 뉴딜은 구제relief·개혁reform·회복recovery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핵심은 ‘개혁’에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뉴딜이 ‘새로운 계약’인 이유는 후버댐Hoover Dam으로 대표되는 산업부흥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된 노동과 사회안전망 구축에 있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승윤 교수는 “당시의 뉴딜은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기준으로 세워진 고용관계에 토대를 두고 있다”면서 “지금 우리가 위기로부터 패러다임 전환을 사고해야 한다면 그러한 토대를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기존의 사회보장 제도는 전통적 표준고용관계와 임금노동자를 전제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플랫폼노동, 그림자노동처럼 기존 고용관계에서 이탈한 노동은 현 사회보장제도의 틀로 포괄할 수 없다는 일침이다. 결국 우리가 전환을 말하기 위해선 ‘일’ 또는 ‘노동’의 정의, ‘취업’과 ‘실업’ 개념을 재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린뉴딜이 말하는 ‘정의로운 전환’ 또한, 이러한 맥락과 맞닿아있다. 정부가 내놓은 그린뉴딜은 아직 구체적이지 않지만, 친환경 산업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 그리고 일자리·이윤 창출을 핵심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이미 ‘전환’의 의미는 퇴색된다. 반대로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사회는 그린뉴딜이 ‘정의로운 전환’의 차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종석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의로운 전환’을 ‘국가 간 정의’, ‘계급 간 정의’, ‘세대 간 정의’로 범주화하면서 이러한 전환이 지구적 차원에서 달성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선철 집행위원은 ‘정의로운 전환’이 “노동자, 농민, 지역주민, 여성, 이주민 등 전환 과정에서 큰 영향을 받는 사회집단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이들의 당사자성에 입각한 참여가 보장되어야” 하는 원칙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한국판 뉴딜이라는 기획과 그린뉴딜 모두 상층전문가, 특히 기획재정부 관료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점은 여러 차례 지적되기도 했다. 김공회 교수는 정부의 안案이라는 것이 아직 구체적이지 않고 7월 중 발표되는 만큼 이후 논의하는 과정에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가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실로 시민사회의 기민한 대응과 전략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전환은 위기로부터

20세기 초 비상한 정세는 국가들을 각기 다른 길로 인도했다. 그 길은 나치즘, 뉴딜, 사회주의였다. 지금의 시간도 그러한 분기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간 기후를 환경만의 문제라고 여겼고, 불평등은 분배구조를 적당히 개선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물론 현재의 위기는 1998년이나 2008년에 비해 가시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위기는 이미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들은 무급·유급휴직 등으로 위기를 지연하고 있지만, 중소영세 사업장과 자영업,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심각한 위기가 닥치고 있다. 여러 지표의 전망은 ‘이후’의 시간이 생각보다 부정적이라는 걸 말하고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지금은 위기인가? 지난 수십 년간 반복된 위기는 각각의 순간이었을 뿐인가? 그 위기가 동일한 시간대에 놓여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의 위기는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사라져버리는 것인가, 내려가면 올라가는 식의 추세일 뿐인가? V자로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은 어떤가. 툰베리가 꼬집었던 건 위기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이들이었다는 것을 되새겨야 할 때다.

 

 

❶  2015년 유엔 기후 변화 회의가 채택된 국제협약으로, 195개국이 지구 평균온도의 상승폭을 1.5℃ 이하로 제한하는 데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❷  위기Crisis는 일상 언어에서 ‘위험한 순간’이나 ‘고비’ 정도로 이해되지만, 사실 그 어원과 학문적 쓰임은 ‘분할Krinein’, ‘분기점’이며 ‘최후의 심판’이라는 묵시론적 의미를 지닌다 

 

>>[목차] 참여사회 2020년 7-8월호 (통권 2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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