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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간호 05월
  • 1995.05.01
  • 2281
내부고발자(WhistleBlower)를 통해 본 「사회복지법인」혜인원의 비극
참여연대 내부고발자지원센터가 정신지체수용시설(이하 시설)인 혜인원을 알게 된 것은 94년 11월 하순쯤이다. 그 당시 인권하루소식 모 기자가 “혜인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있는 정광용 노조 위원장이 옛날에 이곳 내부비리를 장애인 관련 월간지에 제보했는데 최근 절도죄로 구속이 되었더라”는 얘기와 함께 장애인 전문잡지 「함께걸음」 94년 5월호를 보여 주었다. 나는 우선 ‘절도죄’란 말에 관심을 가졌다. 양심적인 내부고발자가 박해 당하는 여러 가지 중에 이런 것도 있을 수 있구나 하면서….

‘부식비 착복에 아동 폭력까지’

87년에 설립된 사회복지법인 혜인원(현 동산원)은 경기도 광주군 탄벌리에 있으며, 100명의 정신지체장애 아동을 수용하고 있는 시설이다. 국고 전액 보조를 받고 있는 혜인원은 최창수 전 이사장(안과의사) 설립 당시부터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고, 상상을 뛰어 넘는 각종 비리는 내부의 직원인 보육사들에 의해서 93년 7월부터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상습적인 후원금 착복과 감독기관인 광주 군청에서 나오는 부식비를 착복하고 원생에게는 겨울에 담근 김치를 이듬해 여름에 물어 씻어 주어 영양실조로 사망하는가 하면, 일부 보육사들의 상습적인 아동 폭력. 심지어는 쇠고랑에 채워 학대를 가하는 등등. 그래서 10여명의 보육사중 남다른 봉사와 희생정신을 가진 젊은 몇몇 보육사와 일부 직원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광주 군청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 진정을 하기도 하고 언론사에 제보하기도 하였다. 결국 93년 7월경 모 방송사에 보도가 되어 최악의 부조리들은 조금씩 나아지고 관선 이사가 11월경 파견되기에 이르렀다.

‘쓰레기 소각장에서 주운 친권포기각서와 몇몇 통장’

그러나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94년 3월경 혜인원은 서류 창고를 정리하게 되고 많은 개인 서류들을 쓰레기 소각장에 갖다 버렸다. 당시에 정광용 보육사(현재 구속중)는 우연히 소각장에서 몇몇 서류들을 습득하였다. -이것이 후에 절도죄 사건의 결정적 조작 부분이 된다- 친권포기각서와 아동 명의 후원금 통장, 그 외 여러가지 잡다한 개인적인 서류들이었다. 아동에게 어떠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부모의 ‘친권포기각서’ 였다. 비록 법적인 효력은 없더라도 어떻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유는 간단했다. 정신지체아동에 대한 재가(在家) 재활 여건의 미비와 사회적인 시선에 대한 부모의 굴복도 문제지만, 관련 법 그것이 주범이고 부도덕한 이사장이 공범이었다. 법에 의하면 전국에 130여개에 달하는 이러한 시설은 무연고 아동 70%, 생활보호대상 연고 아동 30% 비율로 수용하게 되어 있다. 결국 집에서 보호하기 힘든(?) 아동의 부모는 이사장이 요구하는 데로 친권포기각서를 쓰게 되고 평생 양육비 조로 500만~1500만의 기부금을 낸다. 광주 군청 서류에는 70% 고아(현재는 연고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로 보고되어 있지만, 실제로 혜인원에는 80%의 연고 아동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시설에 공통적인 문제라고 한다. 정광용 보육사는 소문으로만 듣던 이런 일들을 직접 접하면서 또 한번 호루라기를 불게 된다. 그것이 「함께걸음」5월호 이다.

‘시설 내부비리 근절을 위하여 노동조합을’

정광용 보육사를 비롯한 3명의 보육사들은 94년 9월1일 서정희(여, 60세, 치과의사) 현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최창수 전 이사장과의 혜인원 불법 매매 의혹, 전직원 사직 압력 등 또다른 문제로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보육사들은 혜인원의 구조적인 비리 근절, 재활 여건 개선, 노동 악조건 개선 등 시설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서 필수적인 노동조합을 전국시설 최초로 설립을 시도하였다. 그것이 김순회 원장(5150, 목사)이 부임한지 보름쯤 되는 10월24일이었다. 시설의 노조는 각종 난마처럼 얽혀 있는 비리 근절에 획기적인 방안인 반면, 사회복지법인을 개인 사유재산쯤으로 생각하는 이사장들에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원과 관의 합작품 절도죄’

노조에 대한 혜인원과 광주군청의 기상천외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노조 설립 신고에 대한 군청의 터무니 없는 계속적인 반려와 제3자 개입, 정광용 노조 위원장 해고, 다른 3명의 조합원에 대한 노조 탈퇴와 해고 위협을 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정광용 위원장, 박아무개 사무장, 홍아무개 회계감사, 이진숙 쟁의부장은 상급 노동 단체인 전문노련과 전해투(전국해고자원상복직투쟁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힘차게 싸워 조합 설립 인가증을 받았다. 11월 초순 겨울 북서풍이 막 불어닥칠 무렵이었다.

노조 설립 기쁨도 잠시, 정광용 위원장은 11월16일 어이없게도 절도죄로 고소를 당했다. 정위원장 발을 묶기 위하여 혜인원 측과 광주 군청이 만든 교묘한 합작품이었다. 3월 당시 쓰레기 소각장에서 발견한 친권포기각서, 아동 명의 통장과 직원 관련 서류를 사무실 서류함에서 절취했다는 것이었다. 서정희 이사장의 지시에 따른 김순회 원장과 일부 보육사의 허위 진술, 편파적인 수사에 따라 정위원장은 12월9일 구속되어 새해 전에 절도죄로 기소되었다. 두명의 조합원도 연말 결산하듯이 30일자로 해고되었다.

‘새해 벽두는 초조했지만’

새해는 접어들었지만 답답할 뿐이었다. 이렇다할 변화없이 시간만 끌어가는 재판, 의기소침해진 조합원들, 지원 단체들의 떨어져가는 동력 등 막막하게 2월을 보냈다. 이진숙 쟁의부장만이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등 마지막 힘을 다하여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겨우내 얼어붙은 얼음이 봄바람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3월14일 3차 공판이었다. 증인으로 나서길 거부하던 염홍섭 전 총무(94년 10월 해직)가 얼어붙은 말문을 열기 시작하였다. 작년 3월 당시, 서류가 도난 당한 것도 없고 정위원장은 문제의 서류들을 쓰레기 소각장에서 주웠다며 자신에게 보여주었다는 증언이었다. 이진숙 쟁의부장의 지방노동위 승소 판정도 났다. 상황은 점점 유리하게 돌아 갈 것 같았다.

‘의외의 내부고발자 김순회 원장’

3월17일 전화가 왔다. 약간 흥분한 듯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진숙 보육사였다. 자신들을 괴롭혔던 김순회 원장이 그간의 ‘모든 일은 허위’라며 양심선언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내부고발자지원센터도 흥분되었다. 우선 이 사실에 대한 보안을 유지하고 원장을 만나자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부고발자의 전화가 왔을 때의 몇가지 원칙을 생각하면서 흥분된 마음을 달래고 곧바로 센터 임원들에게 보고하였다.

처음 만난 김순회 원장은 초췌하고 불안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동기가 궁금했지만 볼안해하는 원장을 안심시키고 센터 임원들과 일단 만나자고 설득을 하였다. 과거 부정에 연루됐던 사람이 참회하는 마음으로 호루라기를 부는 것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더욱이 정위원장의 재판에 결정적인 증언을 할 것이기 때문에 일단 안심시켜보자는 의도도 있었다. 3월21일 원장과 센터 임원들과 처음으로 만났다. 허위 사실로 정위원장을 고소했다는 것과 서정희 이사장의 전횡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시설 내부비리와 이사장으로부터 직위해제 당했다는 얘기도 했다.

다음은 원장이 호루라기를 분 혜인원 비리를 요약한 것이다.

1) 최창수 전 이사장과 서정희 현 이사장은 혜인원을 3억5천만원에 불법 매매하였다는 것이다.

사회복지법인은 실정법상 매매 금지되어 있으나 사실상 이러한 사회복지법인의 매매는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이사장이 혜인원을 사유재산처럼 생각하게 된 근본 이유일 것이다.

2) 94년 12월 말경 여의도 모 증권 회사로부터 후원받은 500만원을 횡령하는 등 상습적으로 후원금을 횡령하고 유용하였다.

시설은 후원금을 받으면 원장 명의의 후원금 관리 통장에 입금하고 영수증을 처리해야 하는데도 후원금은 입금되지 않고 이사장 개인이 유용하였다. 심지어는 이사장 며느리가 낸 후원금 1백만원 까지도 착복하였다.

3) 보건복지부의 혜인원 시설 보수 공사 지원비 2천4백만원을 지원 명목대로 쓰지 않고 임의 전용하였다.

4) 국고에서 지원되는 시설운영자금의 용도를 임의로 변경하였다.

혜인원은 우물 공사, 옷장 교체, 봉고차 구입 등 시설내부 공사를 하고 공사비를 시설 운영자금으로 6백5십만원을 우선 지불하였다. 그러나 이 공사비는 법인 돈으로 지불하여야 하기 때문에 김순회 원장이 서정희 이사장에게 요구하였고, 이사장은 나중에 주겠다고 하였으나 수십 차례의 독촉에도 결국 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경우는 관할 감독 기관의 관리·감독이 부실하기 때문에 시설에 일반적으로 있는 문제이며, 결국 ‘시설운영자금의 이사장 개인 금고화’가 되는 것이다.

5) 기사, 서무 직원을 보육사로 광주군청에 허위 보고하여 그들의 월급을 주었다고 한다.

규정상 보육사가 10명이 되어야 하는데 8명밖에 없기 때문에 법인에서 월급을 주어야 할 직원을 보육사로 둔갑시켜 군청에 보고하여 결과적으로 국고를 축냈다는 것이다.

6) 이진숙 쟁의 부장의 부당노동행위구제 신청에 대한 수원지방노동위 복직 명령을 불이행함은 물론 혜인원측의 중앙노동위 재심 청구에 대해 지방노동위 조사 담당이 재심청구를 대신 써 주는 등 관련 공무원들이 적극 개입되었다.

7) 정광용 노조위원장이 석경자 군청 사회계 주임을 제3자 개입 혐의로 성남지방노동사무소에 고발하였으나 관련 공무원과 짜고 이를 기각하였다.

8) 정위원장 구속을 위해 혜인원측과 담당 형사에게 적극적으로 로비를 하였다.

‘장애 인권은 사회가 함께 보듬어야’

그 동안 의혹으로만 알려졌던 비리들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겨울 내내 차가운 감옥에서 억울하게 옥살이한 정광용 노조 위원장을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센터는 얼마전 이와 같은 사실을 사회에 알리고 관련자를 엄벌에 처할 것을 관련 당국에 강력하게 촉구하였다. 또한 내부고발자에 대한 어떠한 박해도 반대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루 빨리 정위원장이 석방되어 혜인원의 정상화와 조합의 정상화가 이루어져야 장애 아동의 인권이 회복될 것이다.

시설 직원에게 얻어터지고도 말도 제대로 못하고 골방에서 거져 흐느껴 울기만 할 정신지체 아동을 보면서 장애인 복지문제 뿐만아니라 우선 풀어야 할 숙제는 이들에 대한 사회의 편향된 시선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어느 교수의 말을 떠올리면서…

“아마 우리나라 총체적 모순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 시설일 겁니다.”

김경환(내부고발자지원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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