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한마당-장애인으로 돈 버는 사회

‘벌방’에서 죽어가도 국가는 속수무책

최근 에바다 농아원 원장이 국고보조금을 횡령했다고 하여 구속됐다. 신문이나 방송에선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다뤘고, 경기도는 부랴부랴 시설 특별감사에 나서는 등 부산을 떨었다. 이보다 앞서 지난 해에는 ‘소쩍새 마을’의 운영자였던 정승우 씨가 역시 후원자들의 후원금을 사적으로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 세상이 떠들썩했다. 정씨는 결국 ‘소쩍새 마을’의 운영에서 손을 뗐지만, 그가 그동안 ‘소쩍새 마을’의 후원금을 쏟아부었던 진여원은 다시 그의 재산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가끔 툭툭 터지는 시설의 문제는 시설 내의 장애인을 도구화하는 데 있다. 많은 시설에서 장애인은 실제로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번에 문제된 에바다의 경우도 시설 측 서류 가운데 장애인 수첩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또한 원생들의 이름을 변조해 두 개의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사용한 것은 결국 원생들을 국고지원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결론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시설의 장애인이 돈의 수단으로만 치부되면 그래도 낫다. 이들은 때로 성폭행 대상으로, 강제노역 대상으로, 시설 대표의 선행을 드러내기 위한 가치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처럼 각개로 치졸하게도 이용되지만, 현재 이런 비참한 시설에 수용되지 못해 줄서는 장애인들도 부지기수다. 왜 그럴까?

장애인 시설, 국가 재정으로 민간이 운영

현재 한국의 장애인 수용시설은 160여 개가 있다. 그리고 대다수 시설은 민간이 운영한다. 민간부문이 장애인 수용시설을 운영한다는 그 자체가 모순이다. 왜냐하면 이는 당연히 정부의 몫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는 이 문제와 관련해 민간부문에 대해 운영비의 전액을 보조금으로 제공하고 있다. 즉, 운영권에 대한 전권을 위임하는 반면에 이에 상응하는 재정을 지원함으로써 민간부문이 이 사업을 담당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수용시설을 운영하는 민간부문에 대해 기부금 등을 모금할 수 있는 권리, 세금감면 혜택, 특정사업의 위탁 등 나름대로의 반대급부를 제공할 수 있는 근거조항을 마련해놓고 있다.

따라서 장애인 수용시설의 실질적 문제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운영권의 위임이다. 이 문제는 대부분의 장애인 수용시설이 폐쇄적인 운영방식을 수용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고, 결국 이 점이 시설 문제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구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보건복지부의 시설지원 요건은 시설 관리자들의 24시간 근무를 불가피하게 만든다. 특히 장애아동과 직접 접촉하는 보육사들의 경우 현실적으로 24시간 종일 근무를 하고 있어 외부와의 접촉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는 시설 폐쇄화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런 속에서 시설 문제는 문제집단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에 집중된다. 즉, 국가나 민간 모두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만, 사건이 터지면 둘다 철저히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한다. 이러한 책임의 진공상태에서 시설 장애인들은 국가나 민간의 필요에 의하여 도구화되고 대상화된다.

지금까지 발생했던 모든 시설의 문제가 정작 이들 시설장애인과는 무관하게 발생하고 해결됐다는 주장은 이러한 현상에 근거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즉, 아동시설이든 성인시설이든 장애인들의 주장을 수렴할만한 구조는 전혀 구축돼 있지 않으며 장애관련 권익단체들도 시설장애인들과의 연계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세력으로 간주될 수 있는 시설의 보육사나 전문가들 또한 스스로의 역량을 결집시키기에도 역부족인 상태이다.

장애인 수용시설의 문제는 이미 선진국에서도 충분히 경험한 시행착오에 불과하다. 마치 이 문제가 우리 나라만의 특별한 문제라고 보는 것은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미국이나 독일의 경우에도 시설비리 문제는 수없이 터져 나왔으며 일본의 경우에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다만 미국이나 독일 등은 문제해결을 장애인들의 사회통합이라는 관점에서 풀었고, 일본은 시설운영의 공개와 현대화라는 관점에서 풀었다.

최근 10년 사이 장애인 시설과 관련한 비리사건은 흡사 장애인 문제의 전부인 것처럼 언론에 보도되고 국민에게 알려졌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전체 장애인을 고려한다면 매우 제한적인 일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중요하다고 목청을 높이는 이유는, 문제해결에 대한 전망 제시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제안해 볼 수 있다.

시설장애인 권리는 국가 책임

우선 국가 책임주의가 다시 한번 확인돼야 한다. 장애인 수용시설의 합리적인 운영이나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들의 인간적인 대우는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사항이다. 우리 나라 헌법에 명시된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면 국가가 책임 회피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민간에 위탁된 시설장애인의 권리는 국가가 보장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민간운영의 개입을 감시할 기구가 필요하다. 정부는 현재 장애인 복지예산의 절반 이상을 수용시설 장애인의 생존비로 지출하고 있다. 물론 정부예산의 절대 액수가 부족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가장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앞에서 문제의 원인으로 국가가 예산을 지원하면서 책임을 방기한다는 점을 꼽았는데 이런 점에서 국가는 민간부문의 시설 운영을 감시하고 지원할 기구 설립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향후 장애인 수용시설은 공영제의 운영방식을 채택한다는 원칙 하에 현재 민간사회복지법인들이 운영권과 소유권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문제 역시 점진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따라서 이와 관련 (가칭)‘장애인 시설 관리공단’의 설립과 운영을 심도있게 논의해야 한다.

이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가능케 하는 각종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 장애인 수용시설 예산지원 상황을 살펴보면 95년 기준으로 대략 시설수용인원 1인당 연간 200여만 원이 지원되고 있다. 이는 국가가 시설장애인들에게 지원하는 예산이 결코 적은 규모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장애인 복지의 방향이 탈시설화와 사회통합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렇다면 시설장애인들에 대한 통합프로그램의 활용과 더불어 이들이 자기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을 누릴 수 있는 각종 방안이 모색돼야 함이 당연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장애인들은 분명 자기의 선호도를 가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판단능력 또한 지니고 있다. 적어도 자기 인생에 대한 결정권은 장애인들에게 있으며 이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 프로그램은 전문가들의 보조적인 역할이어야 한다.

한편 수용시설은 중증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방향으로 선회돼야 한다. 도저히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장애인에 한해서만 시설은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그리고 이 시설은 최소한의 규모로 운영돼야 한다. 근래 정부가 중증장애인 요양원이라는 미명 하에 200명에서 300명 이상까지 수용하는 대규모 시설을 건립하는 것은 장애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사회적 폐기물로 처리하려는 발상에 다름아니다. 이러한 대규모 시설의 비인간화는 필연적이며 그 서비스의 대상이 독립생활이 불가능한 중증장애인이라면 결과 또한 명확하기 때문이다.

장애인, 사회적 폐기물 아니다

시설의 문제는 사회의 도덕성과 관련된 문제다. 그 사회가 유지하는 최소한의 도덕률조차 사회 한 구석에서 지켜지지 않고 또 그렇게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제도적으로 방관하고 있다면 우리는 도덕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낼 수 없을 것이다.

7년 전 집을 잃고 수용시설에서 생활하던 한 장애인이 영양실조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외아들이었던 그 자식을 찾기 위해 3년 여를 찾아 헤메던 장애인의 부모는 아들의 생사 여부를 모른 채 살고 있다. 가족들은 그 장애인의 죽음을 접하고 부모가 받을 충격을 우려해 부모에게 알리는 것을 극구 만류했다.

6년 전 또다른 장애인은 시설 내 한 골방에서 피를 토하고 죽어갔다. 한밤중에 그 골방에 들어가 죽었다는 게 시설 측의 해명이지만, 그가 죽어간 골방은 시설 원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벌주는 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시설운영자와 공무원들은 의사의 사망진단서 한 장으로 그를 화장해 버려 사망원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시설 원생들에 대한 인권탄압을 넘어 주민등록증을 위조하고 장애인 수첩을 쌓아놓고 있다가 적발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친권포기각서라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강요했던 시설들이 급기야는 실정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면서까지 비리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인들은 자기방어권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고 국민들은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이를 듣고 있다. 과연 시설문제가 장애인들만의 문제인가?

조근태 『장애인 복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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