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4월 2000-04-01   1780

집중분석 ㅣ 20~30대 젊은층은 왜 선거를 외면할까?

선거는 시민참여민주주의 제도의 근간이며, 선거에 참여하여 투표하는 것은 참여민주주의 제도를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권리행사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투표하지 않으면 어떤 상황이 되는지 구체적으로 그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투표율이 50% 내외가 되면 전체 국민중 절반으로부터만 권리를 위임받는 상태가 된다. 50%의 투표율 상태에서 특정인이 40%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면, 선출된 사람은 전체 시민(국민)의 20%에 불과한 계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자신의 정치적 소신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현상은 불행하게도 최근 우리나라 각종 선거에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98년 지방자치선거에서 7개 광역시(서울포함)의 투표율은 50%를 넘는 곳이 한 곳도 없었다. 지난 10년간 투표율을 살펴보면(대통령 선거 제외), 92년 14대 총선 투표율 71.9%, 95년 지방자치선거 투표율 68.4%, 96년 15대 총선 63.9%, 98년 지방자치선거 투표율 52.7%로 계속 투표율이 하락하고 있다. 전체적인 투표율의 하락추세도 문제이지만, 20·30대 투표율이 많이 낮아지는 것이 더 큰 문제점이다. 지난 10년간 투표율을 분석해 보면, 92년 총선에서 40대 투표율이 81.5%였으나 98년 지방자치선거에서는 40대 투표율이 62.4%로 하락했다. 이는 92년 30대가 98년에는 40대로 연령이 상승한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재 20~30대의 낮은 투표율은 10년 후 30­40­50대 이상의 연령층에서 낮은 투표율로 이어질 수 있다.

98년 지방자치선거에서 20대는 33.9%, 30대는 46.2%의 투표율을 보였다. 20대는 3명중 1명이 투표했고, 30대는 2명중 1명만이 투표했다는 것이다.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비판을 보다 구체화하고 세력화할 수 있는 선거에서 스스로 투표권리를 포기하고 스스로 주인의식을 상실하는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스스로 주인의식 상실하는 자기모순

필자는 투표율이 낮아지는 이유를 몇 가지 추론해 보았다.

첫째, 주인의식 결여와 권리의무 개념상실이다.

자신의 집에서 휴지를 함부로 버리고 침을 아무데나 뱉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집에 대한 주인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길거리(특히 다른 사람 눈에 안 띄는 곳)에 버려진 휴지, 담배꽁초 그리고 뱉어진 침을 우리는 많이 볼 수 있다. 연못의 물고기들 중 한두 마리가 병들어 죽어 썩으면 남은 물고기도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대해서는 무한히 희생적이고 관대하나 가족이라는 범주를 벗어난 좀더 커다란 공동체 또는 사회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고 무관심하며 사회발전에 기여하려는 생각이 희박하다. 이는 지금까지 국가가 개인을 잘 보호해주지 못해 가족단위로 생존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으로 축적된 결과일 수도 있다.

일제시대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 사건의 자발적 증인이 되면 어떠한 대접을 받는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여하튼, 현재 우리는 사회 전체적으로 주인의식이 결여되어 있고 젊은 계층에서도 개선되는 경향을 보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다.

둘째, 우리 사회는 진정한 보수와 진보세력이 존재한다기보다는 부패한 보수와 무능한 진보가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기준으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할 수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보수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이라 할 수 있고 진보는 기득권을 가진 계층이 진부 또는 부패화되는 것을 새로운 방향으로 개혁해 보려는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보수는 독재주의 체제에서부터 기득권을 누린 집단이 더 많다. 이들은 혜택을 계속 받기 위하여 그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우리의 진보는 어느 정도 세력화는 되었으나, 아직까지는 참여도가 낮은 소극적인 시민들로 인하여 영향력이 미흡하며, 비판만 하고 해결책 제시가 미흡하다는 다소 무능한 세력으로 비추어진다. 진보가 무조건 좋은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부패한 세력을 개혁하려는 방향에는 누구도 이의가 없다. 따라서 현재 우리사회를 보면 정치·재벌·교육·문화 등의 모든 분야에서 개혁을 외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개혁을 시작할 수 있는 선거에 참여하는 투표권리를 젊은층에서 가장 많이 포기하고 있는 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 대체로 젊은층이 보다 개혁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무능한 진보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반박할 수 있을까?

정당간 차이없는 정책·노선

셋째, 우리나라의 정치집단과 유권자 모두 선거에 참여하는 과정이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성적 판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여 정치적인 실망감을 느끼며 무관심해진다는 것이다.

정치집단에서 민주화라는 선거 이슈가 사라진 지금, 어떤 형성과정을 거쳤든 상관없이 주요 정당의 기반이 특정지역들이며, 정당간 정책 노선의 차이점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총선을 앞두고 주요 정당이 발표하는 공약정책을 보면 거의 모든 유권자를 만족시키려 하고 있어 정당간 차이가 거의 없음을 느낄 것이다.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이성적 판단으로 후보자를 선택할 환경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유권자들도 이성적 판단을 하려고 그다지 노력하는 것 같지 않으며, 언론도 유권자에게 정보제공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특히, 무책임한 공약남발을 방지하고 정당간 정책노선 차별화를 유도하기 위한 노력이 거의 없다. 수년간에 걸쳐 공약의 이행 상태를 추적 점검하여 공개하고 정책노선의 차이점을 끈질기게 캐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환경 속에서 유권자들에게 이성적 판단만을 요구하면 정치적 실망감으로 이어져 낮은 투표율을 보이는 것이다. 이성적 판단에 따라 투표하려는 사람은 투표에 소극적이고 감성적 판단에 따라 투표하려는 사람은 투표에 적극적이어서 결과적으로 선거 전체가 감성적 분위기로 흐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20~30대의 투표율을 높일 수 있을까? 필자도 묘책은 없다. 우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혁은 본래 혁명보다 어려운 것이며, 지금 혜택을 많이 누리고 있는 집단들의 여러 가지 저항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변화는 어느 전환점에 갑자기 일어나는 것 같지만, 사건과 변화욕구의 축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젊은 유권자들이여 주인의식을 갖고 투표에 참여합시다!

김덕구 한국갤럽조사연구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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