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5월 2000-05-01   690

자유 뿜어내는 비트의 세계

저녁이 거리에 내리 깔릴 즈음. 저녁 약속이 있는 회사동료들은 먼저 서둘러 자리를 뜬다. 남자 직원들은 떠들썩하게 술약속을 잡고 있다. 항상 조용히 집으로 향하던 과장도 오늘은 술자리에 합석할 예정인 모양이다. 퇴근 시간의 풍경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녀 또한 서둘러 가방을 꾸려 사무실을 나왔다. 뒤에서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가볼 곳이 있다”며 애써 웃음지어 보였다.

그녀는 신촌 전철역에서 내렸다. 전철역 계단을 오르자 봄바람이라 하긴 이른 스산한 바람이 얼굴에 와닿는다. 이내 그녀는 바삐 움직여 걸었다. 한참을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걷다 발걸음을 뚝, 멈췄다. 그녀가 잠시 고개를 들자, 한 사내가 꾸벅 인사를 한다. 그녀도 가벼운 목례를 나누고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몸을 옮긴다. 롤링 스턴스. 사내 앞으로 보이는 간판명이다. 그 사내는 ‘롤링 스턴스’를 운영하는 사장이고, 매일 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한다. 이미 광장은 ‘요란한 전자 기타음과 괴성(?)’이 장악한 다음이었다.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것을 아는 그녀의 친구들은 “귀가 멍멍할 정도로 시끄러운 전자음악”이라 하지만 달리 들으면 그만이다. 그녀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소리일 뿐이다. 그 이, 이시정 씨(28세)와 잠시 인터뷰를 나눠보자.

이 곳을 얼마나 자주 찾으십니까?

“꽤 자주 오죠. 시간만 나면 혼자서 오곤 해요. 가끔 친구들과도 오지만 굳이 약속을 잡지 않고 혼자 올 때도 많죠.”

왜죠? 이 곳이 어떤 곳이길래?

“99년 9월, 10월에 이곳에 처음 왔어요. 저는 음악 듣는 것을 무척 좋아해요. 그러나 TV나 대중적으로 알려진 가수들은 대부분 댄스 중심이죠. 어차피 대중음악이라는 것이 개인의 완전한 욕구를 해소시켜 줄 수는 없잖아요. 아, ‘롤링 스턴스’이 특히 좋은 이유는? 그걸 물으신 거죠? 다른 곳은 술과 음료를 마시면서 음악은 부수적인 것으로 틀어줘요. 그러나 여기는 음악만 있어요. 라이브 클럽에는 음악하는 사람들의 얘기와 음악만을 추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즐기려 와요.”

공연 날짜가 짜여 있던데요. 오늘 공연하는 밴드 중에 특히 좋아하는 밴드가 있습니까?

“오늘 출연하는 세 팀 중에 저는 ‘세인트’라는 팀을 좋아해요. 이 곳에서 처음 알게 됐죠. 처음 봤을 때부터 너무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 팀의 매력은 어떤 점에 있습니까?

“아주 잘 해요. 노래도 물론이고 기타 연주도 수준급이죠.”

그는 정말 ‘세인트’ 팀을 좋아했다. 세인트가 자작한 ‘어린 시절’이라는 곡을 부르자 아예 까르르, 박수를 치며 몸을 뒤로 제쳐 한껏 웃어댔다. 이렇게 그들의 노래를 즐기는 관중이 있기에 세인트는 한껏 재량을 뽐낸다.

“저희들이 원래 좀 지저분한 노래를 많이 불렀잖아요? 오늘은 좀 깔끔해지려고 기르던 머리도 자르고, 새로운 노래도 준비했는데 다시 예전처럼 지저분한(?), 레드 제플린의 노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아주 슬픈 노래죠.”

출연한 팀들은 한 곡을 부른 다음, 이렇게 잠시 관객들과 자연스러운 입담을 나눈 후 다음 곡을 시작한다. 작은 무대에서, 자신들과 공감할 수 있는 관중들 앞에서라서 그런지 대단한 스타십이나 억지를 부릴 필요가 없는 모양이다. 앞에 선 자가 여유로운 얘기로 시작하니, 듣는 이 또한 그들의 작은 소리에도 민감히 반응하며 박수를 쳐준다.

무대와 객석까지 합한 공간의 면적은 약 20평이 될까말까. 관객들의 눈이 잘 미치지 않는 곳에 작은 문이 하나 있다.

방금 전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분들이군요.

“예. 저희들은 ‘시베리안 허스키’라고 해요. 이렇게 4명이 저희 팀입니다.”

나이가 어떻게들 됩니까?

“스물네살이 두 명, 스물두살, 스무살입니다. 저는 공익근무요원입니다.(리더인 엄중혁 씨)”

이렇게 좁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군요.(쯧쯧. 5명이 들어서자 공간은 꽉 차 몸을 돌릴 여유조차 없었다.) 오늘 공연은 어땠습니까?

“(모두들 쑥쓰럽다는 듯 웃음) 솔직히 오늘은 왜 이리 노래가 잘 안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조금 속상해요.”

왜요? 재미있게 들었는데. 팀이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요?

“저희 4명 모두 펑크를 좋아해요. 그리고 언더다 대중음악이다라는 구분은 두고 있지 않구요. 큰 무대에도 설 수 있었으면 해요. 음악만 할 수 있다면야.”

여기 외에도 다른 라이브 클럽에서도 노래를 부릅니까?

“예. 몇 군데에서 부르는데, 특히 ‘롤링 스턴스’는 음악을 들으려 오는 사람들이 꽤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에요. 분위기도 좋구요.”

‘시베리안 허스키’ 보컬인 유수연 씨(22세)는 바지에 구슬을 직접 달아 꾸미고 나왔다. 그런 열성이 있었건만 노래 도중에 실밥이 풀어져 그 구슬들이 후두둑, 떨어지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본인은 무지하게 부끄러워했다. 시베리안 허스키에게 오늘은 뭐가 좀 안풀리는 날이었나 보다.

시계침이 10시를 가리킬 때 쯤, 공연은 막을 내렸고, 관중들은 일거에 빠져나갔다. 대략 30, 4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지만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황량한 감이 든다. 클럽을 운영하는 김영만 씨(31세)와 동생 천성 씨가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록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에서의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방송에서는 특정 장르에만 집착하고, 너무 10대들의 취향에만 집중되어 있죠. 록이 아직 사람들에게는 익숙치 않아 소외되어 있는 장르이죠.”

그는 한때 클럽을 운영하기가 경제적으로 힘이 들어 문을 닫을까 몇 번을 망설였다고 한다.

“시작할 땐 좋아서 했지만 지금은 의무감으로 버티고 있는 것도 있어요. 클럽들이 많이 생겼다가 없어지기도 했고. 이제는 여기에서 팀을 발굴해 음반을 제작하려고 해요. 한국에는 록음반 제작자들이 거의 없어요. 장사가 잘 안 되니까. 이 일이 잘 되어서 록이 꾸준히 사랑받고 저희도 제자리를 언제까지나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윤정은(참여사회 기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