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5월 2000-05-01   794

근조화환 대신 구호단체에 기부를

얼마 전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살아 생전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안 하고 언제나 밑지고 손해만 보며 선량한 한 평생을 보내신 어른이었다. 그러나 난 결혼한 지 10년이 넘도록 사실 그분의 음성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맏며느리를 보기도 전에 중풍으로 쓰러져 말씀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게는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이 늘 안타깝게만 들렸다. 나를 한 번도 ‘아가야’ 라고 부르지 못하셨지만 시아버지는 언제나 따뜻한 시선으로 어리고 못난 며느리를 지켜봐 주셨다. 표정과 눈빛에서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 가족들은 가까운 병원 영안실에 빈소를 차리고 조문객을 맞을 채비를 하였다. 빈소를 꾸밀 꽃을 주문하는 일도 처음부터 처리해야 할 일 중의 하나였다. 이번 장례를 치르면서 느낀 것인데 슬픔 속에서 꽃이 상당히 위로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흰 국화가 영전을 장식하니 빈소 분위기가 한결 살아났다. 슬프게만 보이던 아버님의 사진도 꽃이 주위를 감싸니 편안하게 보였다. 빈소를 완전히 차리기도 전에 고맙게도 많은 분들이 문상을 하러 오셨다. 그리고 문상객들에 이어 화환이 답지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튿날이 되자 화환은 더 들여놓을 틈이 없게 되었다. 빈소 입구에까지 세워진 근조 화환을 보며 문득 영국에서 보았던 신문의 부음 공고가 떠올랐다.

‘○월 ○일 ○시 존 스미스 씨의 장례예절이 ○○교회에서 있습니다. 평소 저의 아버지를 기억하고 사랑했던 분들께서 참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화환은 사양합니다. 그러나 만약 꽃을 선물하고 싶으신 분이 있으면 그 돈을 어린이 구호재단으로 기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버지를 여읜 자녀들이 낸 부음 공지였다. 망자를 위해 크고 아름다운 꽃바구니를 꾸미는 대신 그 돈으로 어린이나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단체 또는 시민단체에 돈을 기부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대개 그런 단체일수록 고인이 평소에 좋아하던 활동 분야와 관계가 있었다. 죽은 이를 기리는 마음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그런 기사는 신문 귀퉁이에 아주 작게 실려 있었지만 그때 내가 받은 인상은 아주 강렬했다.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데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을까. 하루만 두면 시들고 말 꽃바구니에 돈을 쓸 게 아니라 더 효과적인 데 쓸 일이구나 생각하면서 영국인들의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에 경의를 표했었다.

그러나 시아버지의 빈소를 지켜보며 나는 생각이 달라졌다. 변한 것이다. 꽃집 아저씨가 힘겹게 들여다 놓는 근조화환이나 그 꼬리에 붙은 무슨, 무슨 단체의 이름을 살펴보는 것은 슬픈 가운데서도 잠시 마음이 펴지는 순간이었다. 돌아가신 어른께는 도리를 다하는 것 같았고, 옆에 계신 시어머니께는 큰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일종의 효도 같기도 했다. 그리고 문상 오시는 분들에게도 그간 사회생활 해오면서 어느 정도는 사람 구실을 하고 살아왔다는 표시 같기도 해서 좋아 보였다. 꽃은 단순한 꽃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을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부음기사가 내게는 너무 멀리 생각되었다.

하지만 발인 날이 되자 꽃이 너무 아깝게 생각되기 시작했다. 3일장이니 그 좋은 꽃을 더 두고 볼 수도 없게 되는 것이었다. 재활용도 안 되는 게 꽃이지 않은가. 또 다시 그 부음기사가 생각났다. 그 큰 화환이면 여간 큰 액수가 아니었을 텐데, 그걸 모두 합하면…. 꽤 큰돈을 잠시 동안의 분위기나 형식을 위해 낭비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똑같은 경우를 또 다시 맞는다 해도 화환 대신 시민단체 기부를 마음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형식과 내용의 완전한 합일, 생각과 실천의 완벽한 일치는 멀고 먼 일이다. 그러나 시아버지께서 대답하실 수 있다면 분명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근조화환 대신 불쌍한 노인들에게 그 돈을 보내드리라고.

권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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