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10월 2001-10-01   925

햄버거에 대한 명상,획일화와 다양성 사이에서

햄버거에 대한 명상,획일화와 다양성 사이에서

‘맥도널드’로 상징되는 패스트푸드 가 맛 좋고 간편한 먹거리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러니 패스트 푸드가 문제라고 목청 높여 비판하는 책이 책방에 깔렸다고 해도 그리 새롭거나 충격적인 소식은 아니다.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 그런데도 패스트푸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은 그럭저럭 팔려나간다. 지난달 서점에 깔리기 시작한 『패스트푸드의 제국-패스트푸드가 당신의 생명을 노린다』(원제 Fast Food Nation)도 신생 출판사 에코리브르가 펴냈는데,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만 5700권(9월 9일 현재)이 넘게 팔렸다. 사회과학 분야의 책으로는 베스트 셀러라 부를 만한 ‘엄청난(?)’ 판매고다.

1년에 책 한 권 살까 말까 한 한국인에게조차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 책의 힘은 무엇일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정치사상잡지 『월간 아틀란틱』의 기자이자 지은이인 에릭 슐로서의 감동적인 발품이 빚어낸 이 책의 질일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패스트푸드가 이제 누구에게나 너무도 익숙한 먹거리라는 점이 작용했을 듯하다.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데, 그런 경고를 무시할 수 있는 배포 큰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더군다나 패스트푸드의 주 고객층이 성인이 아니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들의 아들딸이라는 사정에 이르면 더 말할 게 없다.

이콜리(O157)균으로 가득 찬 다진 쇠고기

지은이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패스트푸드를 사먹는 데 지난해에만 1100억 달러를 썼다고 한다. 지난해 미국 사람들이 고등교육, 개인용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자동차, 영화, 책과 잡지 및 신문, 비디오 및 음반을 사고 보는 데 들인 돈보다 더 많은 금액이다. 알기 쉽게 풀어보면, 미국의 아주 평균적인 날에 성인의 4분의 1이 패스트푸드점을 찾는다. 또 이들은 한 주에 햄버거 세 개와 프렌치 프라이 네 개를 먹는다고 한다.

패스트푸드를 많이 먹는다는 사실보다 그 먹거리의 질이 심각하다. 패스트푸드 체인점의 주방은 일관공정(一貫工程)을 갖춘 하나의 작은 공장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패스트푸드 체인점의 깔끔한 실내장식, 종업원들(미국에서 이들의 3분의 2 남짓은 10대 시간제고용 노동자로 초과근무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노동조합 결성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이런 사정은 한국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의 단정한 복장과 함께 패스트푸드의 품질이 매우 높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낳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패스트푸드 체인점의 식품 재료는 몇 가지 푸성귀를 빼고는 모두 완벽하게 탈수돼 냉장 상태로 규격화된 시스템에 의해 조달된다. 패스트푸드 체인점은 20세기 대량생산시스템의 원조인 포드 시스템을 지구촌에 거미줄처럼 구현해가고 있다. 몇 가지 통계를 더 보자. 맥도널드는 지금 세계 117개국에 2만8000개의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해마다 체인점이 2000개 넘게 늘고 있다. 맥도널드는 미국에서 쇠고기와 돼지고기, 감자의 최대 수요자이고, 닭고기는 두 번째로 많이 사들인다. 이러한 수요독점(monopsony)은 미국의 소규모 목축업자들을 모두 전업시키고 13개의 대규모 정육업체만 살아남게 만들었다. 정육업자뿐 아니라 맥도널드가 요구한 규격을 맞추지 못하는 소규모 공급업자(이들의 대부분은 농민이다)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은이의 말을 들어보자. “패티(햄버거 빵 사이에 들어가는 다진 고기) 한 조각은 수십, 수백 마리의 소에서 모은 고기로 만들어지는데, 이콜리 균에 감염된 소 한 마리는 3만2000 파운드의 다진 쇠고기를 오염시킨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1993년 미국에서 햄버거를 먹고 복통을 호소한 700명 가운데 200명이 입원하고 4명이 숨진 ‘잭 인 더 박스’ 사건 이후 50만여 명의 미국인이 이콜리(E-coli)0157균 때문에 고생했고 수백 명이 사망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어린이였다.

패스트푸드 체인점은 특유의 대량생산방식만큼이나 빠르고 넓게 불특정 다수에게 질병을 전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건 동네 음식점의 상한 음식을 먹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더군다나 패스트푸드 체인점의 식품은 ‘조리’되는 게 아니라 이미 가공된 ‘부품’들에 의해 ‘조립’된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규격화한 방식으로 ‘생산’된다. 당연하게도 자연의 그 무엇을 즐길 수 있는 폭은 좁아지고 규격화된 인공의 맛을 강하게 띨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패스트푸드에 들어있는 지방질과 고칼로리, 그리고 이와 불가분의 소비관계를 맺고 있는 청량음료(특히 코카콜라)에 포함된 과다한 칼로리가 비만 등 상당한 문제를 일으킨다. 꼭 무슨 질병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더라도 패스트푸드는 건강에 좋지 않다. 미국 성인의 절반 이상, 어린이의 4분의 1 남짓이 비만이거나 과체중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인의 비만율은 세계 산업 국가 가운데 최고로 높은데 이 비율은 패스트푸드 소비량 증가와 발맞춰 지난 수십 년 간 급상승해왔다. 물론 이게 다 패스트푸드 탓만은 아닐 테지만, 어쨌거나 지금 미국에서 비만은 흡연에 이어 두 번째 사망요인이다. 살을 빼는 데 들이는 돈이 패스트푸드 소비에 쓰는 돈보다 적지 않다.

가공된 부품들에 의해 조립된 패스트푸드

문제는 패스트푸드 체인점 번성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기가 어려워 보이는 시대적 상황이다. 미국에서 패스트푸드 체인점의 번성은 1950년대 서부의 급속한 도시화와 함께 시작됐다. 맥도널드는 새로운 체인점을 낼 곳을 고를 때 위성사진과 인구통계학적 정보, 현재 매장의 판매정보 등을 결합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맥도널드는 90년대 이후 상업용 위성사진을 가장 많이 구입하는 회사다. 도시화가 당분간은 지속될 지구적 현상이라면 패스트푸드의 생명력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패스트푸드가 “어디로부터 왔고,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 음식을 하나 살 때마다 그 이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또 그 음식이 만들어내는 길고 짧은 파급 효과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는 지은이의 권고는 되새겨볼 만하다. 지은이는 책의 결론에 해당할 최종적 ‘행동지침’으로 이렇게 제안한다. “미국(지구촌이라 바꿔 불러도 무방하다)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도 패스트푸드를 강요받지 않는다. 그러니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한 첫걸음은 너무도 쉽다. 사지 않으면 된다. 패스트푸드 회사를 운영하는 임원들은 악당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사업가들일 뿐이다. 사람들이 원한다면 그들은 유기농 농법으로 재배한 목초를 먹은 소고기로 햄버거를 만들어 팔 것이다. 이윤이 생기는 한 그들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을 팔 것이다.” 좀 허탈하지만, 무의미한 제안만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요즘 사람들은 공업용 사료를 먹인 소 때문에 발생한 광우병 소동이나 유전자조작 식품의 유해성 논란 등을 거치며, 인공적인 것이 자연적인 것보다 ‘열등’하고 건강에 좋지 않다는 점을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는 듯 하니까 말이다.

통상 ‘맥도널드화’라는 개념으로 표현되는 ‘패스트푸드점들의 원리·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그리고 통제가 사회의 모든 부문을 지배하는 과정과 그것이 초래하는 불합리성’의 정치 사회적 맥락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이 책과 함께 『맥도널드 그리고 맥도널드화』(조지 리처 지음, 시유시 펴냄, 1999년)를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내가 보기에 ‘맥도널드화’의 핵심은 획일화인데, 그것이 다양성과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사실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이 점은 맥도널드 체인점이 세계 도처에 있는 미국 대사관들과 함께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가들의 집중적 공격대상이라는 점에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이제훈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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