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1월 2002-12-30   1737

“홍세화 파문”이후 언론인의 정치활동 찬반논쟁 본격화

기자의 정당가입을 허하라?


최근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의 특정 후보에 대한 공개적 지지 표명과 이로 인한 직무 정지 사건으로 언론계 안팎에선 언론인의 정당가입과 정치활동 문제를 둘러싸고 뜨거운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2월 5일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은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출연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튿날 조상기 『한겨레』 편집위원장은 홍세화 위원이 언론인으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며 직무정지를 통보했다. 이는 필요한 절차를 충분히 밟지 않은 상태에서 편집위원장 단독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당연히 회사 안팎으로부터 반발이 거셌다. 노조는 절차상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며 직무정지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고, 민주노동당은 부당한 조치를 거두라며 『한겨레』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언론계의 뜨거운 감자

13일 『한겨레』 윤리위원회(위원장 정연주)는 홍 위원에게 내려진 직무정지 처분을 해제하면서 “(기자의 정당가입 및 정치활동에 대해) 윤리위원회의 결정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홍 위원이 특정 정당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 이와 관련된 행동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같은 달 26일엔 문제로 지적된 『한겨레』 윤리강령 제7조 「우리는 정당에 가입하지 않으며 특정 정당이나 특정 종교 및 종파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놓고 공청회를 연 뒤 이 조항의 개정 여부를 묻는 투표를 27∼30일 실시하기로 했다.

『한겨레』노조 장철규 부위원장은 “헌법상 보장된 정치활동의 자유를 제약하는 이 조항의 전면 삭제나 ‘우리는 정당에 가입하지 않으며’의 문구 삭제 등을 검토하고 있으며, 회사에 조직적 위해를 가하지 않는 범위에서 정당활동을 허용하도록 건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겨레』는 지난 여름에도 소속 기자의 정당가입 문제를 둘러싸고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기자의 정당 가입이나 특정 후보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 표명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언론계에서 이 문제는 분명 ‘뜨거운 감자’임에 틀림없다.

특정이념 표방하는 정당의 기관지냐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개적이고 폭넓은 논쟁을 거쳐 합리적 결론을 이끌어낼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기자는 언론인인 동시에 일정한 정치적 견해를 가질 수 있는 한 사람의 국민이다.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지면을 통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편드는 것은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행위로 당연히 제재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언론매체를 통해 자신이 가진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고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이재국 『경향신문』 노조위원장은 “정당법 등 상위법이 허용한 언론인의 정치활동을 회사의 사규로 금지하는 것은 문제 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언론사 중 유일하게 기자들의 정당가입 및 정치활동을 보장하고 있다. 언론노조가 산별로 전환하면서 제시한 ‘모범단체협상(안)’을 받아들여 『경향신문』 단체협상에 정치활동 보장 조항을 넣게 된 것이다.

박선호 『문화일보』 경제부 기자도 “지금 일부 언론처럼 정치적 중립을 가장해 특정 후보를 비방하거나 편드느니 차라리 드러내놓고 밝혀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주식의 내부자거래처럼 언론인이 자기 지면을 통해 특정 정치세력에게 유리한 보도를 노골적으로 할 때가 있다”며 “차라리 어느 언론사가 어떤 정치적 색채를 갖고 있다고 밝히면 오히려 독자들도 이런 사실을 가감해서 그 언론을 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현 MBC 기자는 “기자의 정치활동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의심케 할 만큼 보도에 영향을 미친다면 안 되지만 예를 들어 정치와 일정한 거리가 있는 영화담당 기자가 정당에 가입해 활동하는 게 뭐 큰 문제가 되겠느냐”며 “정치활동을 사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언론인의 정치활동 허용에 반대하거나 아직은 때가 이르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금철형 KBS 기자는 “일부 언론은 언제나 공정성과 균형을 이루는 것처럼 말하지만 선거 때가 되면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보도를 해온 게 사실이고 기자들이 자기 소신껏 기사를 쓰거나 보도할 수 있는 여건이 100% 보장돼 있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기자의 정당가입 문제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박성제 MBC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간사는 “홍세화 위원에 대한 직무정지 조치는 당연하다”며 “만일 『조선일보』 기자가 <100분 토론>에 나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면 시민단체와 진보진영이 그냥 넘어갔겠는가”고 반문하면서 기자의 정당가입과 정치활동 금지에 찬성했다.

그는 “특정 이념을 표방하는 당의 기관지가 아닌 다음에야 공영방송이 특정정치세력 편들기를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며 이는 연예인은 물론 프로그램 진행자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슈피겔』 발행인의 선택

그렇다면 외국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에 따르면, 유럽 신문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정론(政論)지 개념으로 발달해왔기 때문에 기자들이 특정정당의 정책과 이념을 갖고 활동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러나 미국 신문의 경우 대중지 성격으로 성장해왔기 때문에 특정 정당의 입장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기자들의 정당 가입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미국의 언론은 실제론 선거에서 특정 후보 지지를 밝히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 언론이 자본의 소유로 돼 있기 때문에 발행인이나 편집인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언론사가 특정 후보 지지 의사를 밝히게 되는 것이다.

독일의 권위지 『슈피겔』의 발행인은 한때 정치활동을 하기 위해 발행인직을 버린 적도 있고, 유럽의 어느 신문은 상당수 기자들이 각기 정당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신문의 논조를 편집국이 정하지 못하고 당원들의 결정에 따르고 있어 문제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것일까. 이번 논쟁을 촉발시킨 홍세화 위원의 말을 들어보자.

“언론은 사익추구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공리공익과 사회정의 측면에서 얘기해야 한다. 오늘의 이런 일은 공화국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기자의 정당 가입을 불허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정당법도 언론인의 정치참여를 보장하는 내용이 있다. 그걸 윤리강령으로 막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한겨레』라면 정당법에 정치참여활동의 자유를 제한한 공무원과 초중고등학교 교사에게도 그 권리를 확장하라고 주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교수는 정치참여 할 수 있고, 교사는 할 수 없다는 게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는가. 그렇다면 『한겨레』는 이 조항의 개정을 위해 나서야 한다. 진보적 대중지 아닌가.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성숙하지 않아서 빚어진 촌극이라면 시민사회 논의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야 한다.”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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