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7월 2003-07-01   1574

여주 “밀머리 미술학교”를 찾아서

배우는 미술? 즐기는 미술!


경기도 여주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분교에 다다르기까지 창밖으로는 나지막한 산들과 논밭이 펼쳐졌다. 한적한 농가들 사이에 자리잡은 단층짜리 아담한 분교는 현재 폐교된 상태다. 하지만 최근 한창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중이다. 이곳의 교장인 미술작가 박찬국 씨를 비롯해 젊은 작가들이 함께 뜻을 모아 지난해 문을 연 미술학교. 이 학교의 이름은 동네이름을 빌어 ‘밀머리미술학교’라 지었다. 어린이부터 전문 미술작가들까지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사랑방으로 쓰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교문을 열었다.

레컬처(leculture, leisure+culture)를 아시나요

밀머리 미술학교는 생활과 미술의 자연스런 만남을 주선한다. 놀이(leisure)와 문화예술(culture)을 함께 향유하도록 한 것이다. 박찬국 교장은 “미술은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문화 중 하나예요. 그러나 우리학교에서는 미술을 예술이라는 완성된 형태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일상적 상황, 사물을 예술이라는 틀로 볼 수 있도록 이끌지요”라며 수업방향을 설명한다.

밀머리학교에서 주관하는 ‘아트캠프’는 기존 예술의 개념에 도전하는 각 장르의 예술가나 문화운동가들을 초청해 그들의 작업이야기를 듣고 공감대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다. 지난 2월 가진 첫번째 캠프에 참가한 전문작가들은 자신이 해온 그동안의 작업이야기를 소개하고 지역주민들과 여주 5일장에 참가해 전시를 열기도 했다.

2월에 이은 3월 아트캠프에서는 재미있는 수업도 펼쳐졌는데, 수업제목은 ‘애교떠는 쌀자루, 뒤집어지는 고구마박스’. 일명 ‘우리 농산물 메이크업 프로젝트’였다. 첫 수업보다는 일반 참가자들의 호응이 컸던 이 시간에는 쌀자루, 고구마상자, 땅콩상자 등 농산물을 재미있게 포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직접 만들어봤다.

일례로 고구마 상자의 경우 훨씬 먹음직스럽게 ‘군고구마’라고 겉포장에 명기했지만 정작 포장은 ‘군’을 ‘군대’로 익살스럽게 해석해 얼룩덜룩한 국방색으로 감쌌다. 과일도 참신한 포장방법들이 나왔다. 낱개로 포장한 사과에 각각 ‘미소사과’ ‘합격사과’와 같은 이름을 붙여 가치를 높이기도 했다.

따뜻한 왼손

마음을 나누고 이야기를 건네는 수단으로써의 미술은 또 어떨까. 밀머리학교의 또 다른 수업 ‘따뜻한 왼손’. 7세에서 13세의 장애어린이와 비장애어린이들 20여 명이 함께 참가하는 시간이다. 장애유형은 대부분 자폐증이나 다운증후군이었다. 수업을 이끄는 교사 이정은 씨는 아이들간의 차이를 확인하는 수업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장애아이들이든, 비장애 아이들이든 이 수업은 치유나 교육적 변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에요. 아이들 모두 자기의 결점에 관계없이 서로 어울려 즐겁게 노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6월 9일 ‘따뜻한 왼손’ 첫 수업이 있던 날. 오후 3시 교실에는 학교 근처에 있는 한 보육원과 장애인쉼터에서 아이들 10명이 각각 선생님들의 손을 잡고 들어섰다. 또한 이 수업에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보조교사 노릇을 하기 위해 지역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함께 참가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학교에서는 이들 학생들에게 한 주 앞서 보조교사교육을 실시한 상태이기도 했다. 6월부터 8월까지 진행하는 ‘따뜻한 왼손’ 수업에는 ‘자연과의 대화’ ‘흙놀이’ ‘나의 수호천사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이 각각 4주간씩 담겨 있다.

아이들은 첫 만남에 눈길을 피하면서도 호기심에선지 서로의 주위를 맴돌았다. 하지만 탐색은 아이들의 손에 과자가 쥐어지면서 끝났다. 대부분이 7세나 8세인 아이들은 자원봉사 학생들의 소개로 서로 인사하면서 금세 서로의 입에 과자를 넣어주었다. 장애아이들과 함께 온 한 수녀님은 “이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사회는 그리 넓지 못해요. 아이들이 참여할만한 프로그램도 거의 없죠. 지역은 더더욱 그래요. 그저 많은 아이들과 어울려 놀게 하고싶어 데리고 왔어요”라고 말했다.

교실에서 낯을 익힌 아이들이 교실 밖으로 나와 만난 것은 느티나무와 풀, 곤충들이었다. 아이들은 하나씩 받은 돋보기를 꽃, 풀, 나무에 가져다 대고 탄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커다란 느티나무에 붙어 느릿느릿 움직이는 벌레들을 포착하고는 입을 다물지 못하며 신기해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밝다. 평소에 좀체 말을 하지 않던 경준(가명)이도 이날만큼은 나무벌레를 가리키며 탄성을 질렀다. 돋보기를 카메라인 양 자원봉사 언니와 오빠들에게 들이밀며 ‘찰칵’ 소리를 내는 아이, 돋보기는 목에 건 채 햇빛 가득한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땀을 쏟아 얼굴이 발개진 아이들 모두가 놀이에 빠져있을 무렵, 이들에게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운동장 옆에 있는 텃밭에 화단을 만드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모종삽을 쥐고 서툰 삽질로 흙을 사방으로 날렸지만 연신 까르르 웃는다. 아이들이 낑낑거리며 나르는 벽돌 한 장 한 장이 모아져 조별로 다른 화단이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분홍, 노랑, 연두, 하늘색의 벽돌은 각각 하트모양, 동그라미, 반달, 사각 등 갖가지 모양의 화단을 이뤘다. 꽃모종을 심고 물을 뿌릴 즈음에 아이들의 얼굴과 손은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만족스러운 표정들이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이뤄지는 이 수업에서 아이들은 앞으로 흙으로 자유로운 형태를 만들어 직접 가마에서 굽기도 해보고 마지막 수업 4시간 동안에는 스스로 상상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서 수호천사로 만들어 그림책을 엮어보게 된다.

이정은 교사는 “경직된 프로그램의 경우 교육의 의도나 정해진 방향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답답해할 수 있지만 간단한 소재나 주위 환경을 아이들에게 차려주고 스스로 놀게 하니까 아이들 각자가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일반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딸 유빈(7)이를 이날 데려온 김현영 씨(38)도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게 보기 좋았다며 흐뭇해했다.

이밖에도 밀머리 미술학교에서는 주말과 여름방학에 각각 캠프를 운영해 보다 많은 개인,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편하게 미술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거리나 공간적인 제약 때문에 아직은 활성화가 되지 못하고 있지만 이들의 시도는 계속될 것 같다. 박찬국 교장의 의지가 그러하다. 그는 “생활과 관련한 미술작업을 보다 구체화하기 위한 가능성을 함께 찾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며 “새로운 가능성의 발견은 예술의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김선중(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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