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7월 2003-07-01   789

투잡스족을 꿈꾸다

누구나 이른 새벽 창문을 열고 어스름한 바깥 세상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살고 마는 것인가?” 땀흘려 일해 생계를 이어가는 것도 사실 위대한 성취이기는 하지만, 몸을 팔아 돈을 벌고 돈을 벌어 몸을 만드는 순환의 함정에 빠진 느낌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

꿈이라는 것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포부라는 것이 없으면 허전하던 때가 있었다. 비록 지금 허름한 세월을 보내더라도 끝내 이룰 무엇이 우리에겐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큰맘을 먹고 시간을 내어 지리산에 올랐을 때, 나는 사무실 네 벽에 갇힌 도시생활 너머에서 펼쳐지고 있는 다른 삶의 모습을 보았다. 일군의 젊은이들에서 노부부에 이르기까지 지리산은 그들에게 생활의 ‘다른 공간’이었다.

한 가지의 결을 가진 삶은 여러 결을 지닌 삶보다 단조롭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삶은 어떻게 보면 그래서 도전의 즐거움을 있을지 모르지만 누림의 여유는 없다. 어느 것이 옳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결을 가진 다양한 무늬의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다른 가치의 삶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난 6월 6일 한국 포콜라레 본부에서 주최한 ‘하루 마리아 폴리’에 참가한 적이 있다. “일치를 향한 사랑의 운동”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는 이 모임에서 어느 발표자가 한 사람의 노력이 서로 경쟁하고 무관심했던 것이 자연스러웠던 일터를 어떻게 상호 존중과 일치의 공간으로 바꿀 수 있었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국에서 모인 1000여 명의 참가자들은 그 기쁨과 감동을 함께 나누었다. 이 자리는 그들에게 평화라는 삶의 가치를 나누고 실현하는 소중한 시간이자 공간이 되고 있었다. 이 기쁨이 그들을 황금연휴의 첫날을 무더운 강당에서 보내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요즘 투잡스족이 늘어 간다고 한다. 낮에 일하는 직장으로 부족해 밤으로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 더 많이 벌고 있다는 것이다. 더 많은 돈으로 더 쾌적한 삶을 원하는 것이다. 두 가지 일거리는 커녕 하나 있는 직장도 겨우 출근하고 견뎌내는 필남필녀에게는 언감생심 부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또 하나의 새로운 직업이 필요할 지 모른다. 하나의 무늬가 아닌 여러 무늬의 삶을 위해서, 생존의 지엄한 과업과 함께 사회와 이웃에 기여하는 보람 있는 생활을 위해 우리는 기꺼이 새롭게 노동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한 켠에 먼지 쌓인 채 놓여 있었던 내 삶의 꿈들을 다시 꺼내 본다. 건강한 활력으로 가득찬 공동체에 대한 희망, 자상하고 아늑한 이웃과의 정감어린 교류, 부당한 처사가 발 붙일 곳 없는 정정당당한 사회, 전쟁의 기운이 평화의 열망에 봄 눈 녹듯 사라지는 나라, 이 모든 가치를 위해 내가 기여할 바를 찾아보기로 한다.

그것이 나에게 두 번째 직업이 될 터이다. 부족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열정이었고, 힘든 것은 피곤한 몸이 아니라 피폐한 마음이었다. 지난 겨울의 정치적 열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듯이 중요한 것은 삶의 여건이 아니고 우리 안의 열망이었다. 몸을 움직이면 삶이 바뀌고, 내 삶이 바뀌면 이 사회가 변할 것이다.

이왕재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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