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8월 2003-08-01   764

기성 보수 뺨치는 젊은 보수들

친미반북과 시장지상주의로 무장, 수구 극우성 못벗어


보수를 표방하는 인터넷 매체와 정치웹진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다. 타깃독자가 상대적으로 젊은층일 수 밖에 없는 이들 매체들이 발산하는 목소리의 수준은 한국의 보수가 수구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타진해 볼 수 있는 가늠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매체들의 주장과 시각속에서 50년 묵은 기성세대의 낡고 뻔뻔한 보수주의를 업그레이드할 만한 젊은 지성의 성찰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편집자 주

“자유는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어야 자유고, 평화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 자유, 거저 얻어지는 것 아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며 수배와 감옥생활을 밥먹듯이 했을 법한 어느 운동가의 말이 아니다. 『독립신문』(independent.co.kr) 신혜식(35세) 대표가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을 반박하며 한 말이다. 그는 “국보법은 오히려 좀 더 강화되거나 다듬어질 필요가 있다. 폐지 주장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모르는 사람의 주장이다”고 말한다.

지난해 7월 독립신문의 창간에 이어 비슷한 시기에 『미래한국신문』, 같은 해 11월 『사이버뉴스24』, 올 초 『뉴스앤뉴스』(newsandnews.com) 등이 잇달아 등장하면서 온라인 보수매체들의 백가쟁명 시대를 맞고 있다.

온라인 보수매체들이 연이어 등장한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다. 그 중 “연이은 대선 패배 이후 위기감을 느낀 수구보수 세력의 목적의식적인 재무장”, “광범위한 보수층 독자를 잡기 위한 상업적 동기” 등이 대표적이다.

인터넷 논객 장신기 씨는 “보수세력들도 사이버공간의 여론형성 기능을 높게 평가하면서 오프라인 매체에서 가졌던 파워를 온라인에서도 가져보고자 하는 의도가 개입된 것”으로 분석했다. 이런 해석들은 약간의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온라인 보수매체의 계속되는 창간 배경을 젊은 세대의 자발적인 욕구보다는 인터넷 매체의 담론형성 기능에 대한 보수세력의 재평가나 상업적 동기에서 찾고 있다.

인터넷매체의 이념지형이 보수세력의 엄살처럼 진보 편향인가는 좀 더 엄밀한 분석이 필요하지만 지금까지 온라인 매체의 성격이 개혁지향적 네티즌의 특성을 반영해 대체로 개혁·진보에 가까운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정운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은 “건전한 경쟁이 가능해졌다는 면에서 이들 매체들의 등장 자체는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기성세대의 친미반북·시장지상주의 답보

문제는 이들 매체들의 색깔을 진정한 보수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신혜식 대표의 말이다.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를 확고하게 지키자는 것이 보수다. 이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안에서 보수와 진보 사이의 대화와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북한 주민의 고통을 지적하지 않은 채 오히려 동조, 옹호하는 세력은 정말 아니다. 반핵반김, 그 정도면 된다. 그 바탕 위에서만이 경제 지향적 세력과 복지인권 지향적 세력이 공존할 수 있다.”

그의 자유민주주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라는 핵심적 명제를 ‘반북’으로 대신해온 기성세대의 보수 논리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현실의 진보주의가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장경제의 폐해에 대한 문제의식에 기초한다는, 가장 초보적인 수준의 인문학적 소양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시장경제를 동시에 강조하는 이들의 주장에 대해 인터넷 논객 장신기 씨는 “사실 한국사회에서 올바른 시장의 기능을 강조한 세력들은 자유주의적 진보세력들인데, 보수진영은 기득권 옹호논리로서 시장주의를 내세우고, 자유주의 세력의 주장조차도 좌파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친미반북·시장지상주의를 보수로 포장하는 이들 매체의 주장은 때론 아슬아슬한 전쟁 옹호론에까지 나아간다. ‘말없는 다수’의 ‘건전한 보수’를 표방하고 만들었다는 『뉴스앤뉴스』의 홍일식 대표는 창간사에서 “인류가 당면했던 인성 파괴적 폭력과 잔인무도한 폭압적 지배구조들이 오히려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 박멸되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고 말하고 있다. 홍 대표는 박멸해야 할 대상으로 이라크 정권과 함께 북한 체제를 거론하고 있다.

물론 기성 보수를 비판하는 젊은 세대들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조직화되지 못하거나 매체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결성된 ‘보수학생연대’는 사회적 갈등의 해결책으로 이념보다는 실리주의적 관점을 취한다는 점에서 극우적 성격을 벗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인터넷에서 거의 찾아볼 길이 없다.

김성욱 『미래한국신문』 기자는 “보수세력이 왜 헤게모니를 상실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다름과 같이 답했다.

“보수는 헤게모니가 아닌 정권을 상실한 것이다. 정권 잃었다고 해서 사회의 지배가치까지 잃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 왜 정권을 상실했느냐? 보수를 참칭하는 수구세력들이 탄력성을 잃었다. 보수는 원래 개혁을 본질로 하는 것이다. 재벌 부패? 당장 잡아서 없애야 한다. 수구세력이 잘못한 거 많다. 그 때문에 보수라는 개념 안에 모든 부정적 가치들이 담겨버렸다. 그렇다고 수구세력의 잘못된 유산을 우리 젊은 보수가 떠 안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젊은 보수의 정체성이 지면을 통해 반영되는 것 같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김성욱 기자는 “적의 적은 친구라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기득권을 옹호하는 마인드를 갖는 매체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좀 문제 있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이런 그의 솔직함도 그러나 법무부의 준법서약서 폐지 추진을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묘사한 그의 7월 13일 기사에 이르면, ‘반북’ 앞에만 서면 마술에 걸린 듯 빛을 잃고 마는 젊은 보수의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두 번의 대선 패배 이후 젊은 세대들을 잡기 위한 보수세력의 노력이 부쩍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광화문 촛불시위에 맞서는 대형교회의 시청 앞 친미반북집회엔 의외로 많은 젊은 세대들이 참석하고 있고, 전국경제인연합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영 리더스 캠프’를 진행하며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악이라는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매체로서의 성장 가능성 낮아

그러나 보수세력의 젊은층 끌어안기는 주로 온라인 매체란 형식으로 조직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들 매체의 성장 가능성이 향후 보수세력의 젊은층 공략의 성공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는 뜻이다.

인터넷 보수매체의 리더격인 독립신문의 1일 평균 클릭 수는 3~5만. 『오마이뉴스』에 비해 한참 떨어지지만 창간 1년 남짓한 매체로서는 과소평가할 수 없다. 그러나 매체로서 성장 잠재력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는 지적이다. 우선 이들 매체들이 네티즌의 특성에 맞는 쌍방향적 의사소통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운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은 “『오마이뉴스』의 경우 네티즌과 호흡하기 위해 독자의견 쓰기, 시민기자 등 새로운 시스템을 많이 도입했다”면서“지금은 조중동마저 기사마다 독자의견 쓰기가 가능한데, 이런 쌍방향 민주성이 없다면 특수한 계층, 집단의 커뮤니티 사이트 이상으로 발전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또 하나 지적할 것은 매체로서의 윤리성이다.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는 지금까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기사들로 ‘앙마의 촛불시위 자작극’, ‘DJ의 노벨상 로비’, ‘노무현 후보의 감춰진 딸’, ‘지난 대선의 투개표 조작의혹’ 등을 주저 없이 꼽았다. 그의 말 속엔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기사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당사자들에게 어떤 피해를 줬는지에 대한 기자윤리의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자 윤리가 괄호 쳐진 매체가 매체로서 성장할 수 있을지 그들이 그토록 주장하는 냉정한 시장원리가 어떻게 평가할 지 지켜볼 일이다.

장흥배(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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