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8월 2003-08-01   1359

정치자금법 바꿔야 청정정치 가능하다

수입지출 내역의 완전한 공개·실사 및 처벌권 강화가 핵심


정대철 민주당 대표의 굿모닝시티 불법자금 수수 의혹으로 불거진 여야의 정치자금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만약 정치권이 시민단체에서 오랫동안 주장해온 정치자금 투명성 제고를 위한 개혁입법을 받아들였다면? 정치자금을 둘러싼 부정부패를 획기적으로 차단할 방안들은 이미 나와 있다. 정치권이 스스로 부정부패의 고리를 만들어 놓은 현행 정치자금관계법이 어떻게 개정되어야하는지를 짚어 본다. 편집자 주

정치인에게 100만 원 이상 후원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을 공개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치자금관련 계좌추적권을 갖고 있었다면 ‘굿모닝게이트’ 같은 대형 정치자금비리사건이 불거졌을까?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 각종 인허가 과정의 로비의혹이 제기된 굿모닝시티는 예상대로 대형사고를 쳤다. 이를 계기로 정치자금법을 개정하자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고, 노무현 대통령은 특별기자회견을 열어 여야 모두 대선자금을 국민 앞에 공개하고, 정치자금법 개정을 서둘러달라고 주문했다.

유시민 개혁당 의원도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에 “아무리 깨끗한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라도 후원회 계좌에 잡히지 않는 돈을 많든 적든 따로 조성해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하며 제도개선과 함께 유권자 정치의식의 변화도 주장했다. 유 의원이 지적한 문제가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정치인들은 이런 문제를 나서서 정면승부하려하기보다 오히려 이런 현실을 핑계로 불법정치자금 관행을 합리화해 왔다.

수입·지출내역의 완전한 공개부터

그동안 문제로 지적돼온 정치자금 투명성 확보 문제는 사실 이미 답이 있다. 김민영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은 “고액 정치자금 수입내역의 완전 공개는 그동안 ‘어떤 대가’를 바라며 정치권에 기부했던 정치자금을 줄여, 정치권 스스로 소액다수의 후원문화, 자발적 선거운동 풍토 조성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강제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치개혁을 위한 시민단체의 연대기구인 정치개혁연대는 지난 2월 여야 정치권과 함께 구성한 정치개혁추진범국민협의회(이하 범국민협의회)를 구성해 정치자금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을 요구해왔다. 그 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정치자금 수입·지출 시 수표, 카드 사용 의무화 △후원금, 당비 수입내역 신고 의무화 △100만 원 이상 수입의 경우 수입내역의 유권자 공개 △정치자금 수입·지출시 선관위에 신고된 예금계좌만 사용 △정치자금 회계보고 시 세금계산서, 카드전표 등 세법상 인정되는 영수증만 첨부할 것 등이다.

현행 정치자금관계법은 이 같은 시민단체의 요구를 거의 반영하지 않고 있거나, 일부 수용했더라도 사무규칙같은 하위 법령에 광범위한 예외조항을 두어 불법·편법에 대해 빠져나갈 구멍을 도처에 마련해 놓았다는 지적이다. 이번에 정대철 대표가 굿모닝시티 윤창렬 회장으로부터 받은 액수 중 상당 부분을 영수증 처리하지 않은 것도 현행 제도의 대표적인 허점이다. 또 정치자금 지출에 대한 규제도 허점투성이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지현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는 “한 정당 총재는 매달 5000만 원을 당으로부터 받아 사용했으나 현행 법은 지출 내역에 대한 영수증 첨부를 피할 수 있어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고 현행 법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정치자금 수입·지출의 투명성 강화와 함께 정치자금 실사 기능과 정치자금법 위반자에 대한 처벌규정 강화도 시급한 과제다. 이런 과제들로는 △정치자금법 위반자에 대한 공직출마 기회 제한 △허위, 부실회계의 경우 국고보조금 중단 또는 삭감, 환수 △선관위에 계좌추적권 부여 △정치자금 회계보고 시 중앙선관위가 공인회계사 지정 △금융정보분석원에 계좌추적권 부여 등이 제시되고 있다.

이들 중 상당 부분은 이번에 중앙선관위가 정치자금제도개선안으로 확정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어서 정치권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특히 선관위의 계좌추적권 보유는 그동안 무작위 표본추출 방식으로 각 당의 정치자금을 실사해왔던 선관위가 앞으로 계좌추적권을 통해 정치자금의 경로와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민단체는 적극 환영하고 있다.

정치개혁시민연대는 정치자금 현실화 방안과 국고보조금제도 개혁도 주장하고 있다.

정치자금 현실화 방안으로는 △당내 경선후보와 지방자치단체장까지 모금주체 확대 △정치자금 기부한도 총액 제한은 없애되 개인후원 한도는 낮춰 소액다수의 모금취지 회복 △소액 정치자금의 세액공제 등이 제기되고 있고, 국고보조금 개혁방안은 50%의 정책개발비 의무사용, 국고보조금을 소액당비와 소액후원금과 연계시키는 매칭펀드(matching fund) 제도 등이 거론되고 있다.

‘굿모닝게이트’로 진퇴양난에 빠진 민주당 신당추진모임은 지난 7월 15일 정치자금 제도개선을 들고 나왔고, 청와대 역시 7월 21일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회견을 통해 이 문제를 ‘정대철 대표 개인비리 차원이 아니라 정치자금제도 일반의 개혁’ 문제로 대응할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이 같은 정치권의 대응이 전면적인 제도개선으로 이어질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정치자금 제도개선 전망

우선 정치권 일반이 여전히 기득권에 집착하고 있는 점이다. 정치개혁을 표방한 민주당 신당추진모임이 내놓은 개선안 역시 ‘고액 기부자의 공개’라는 투명성 강화의 핵심은 비켜가고 있다. 한나라당 역시 이번 사건을 제도개선 의지가 아닌, 여당과 정부에 대한 정치적 공세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입장 차이도 정치자금법 개선안의 입법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지난 범국민협의회의 정치자금 제도개선 논의 과정에서 한나라당 오세훈 의원은 “정치자금 투명화는 상대적으로 약자인 야당에 별도의 인센티브를 줘 피해의식을 덜어주지 않는다면 한나라당이 동의하기 어려울 것”란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반면 민주당 천정배 의원은 “정치자금은 기본적으로 투명성의 문제이고, 투명성을 제고하면 모금 한도는 현실화해도 된다”고 맞섰다. 정치자금 투명성 강화에 대한 양당의 입장이 기본적으로 다른 셈이다.

결국 시민단체를 통한 국민적 압박 수위가 정치권의 제도개선 수용 폭을 상당 부분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개혁연대는 7월 21일 정치자금 제도개선을 위한 시민단체 집회를 국회 앞에서 개최했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시켜나간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계속 공전하고 있는 국회 정치개혁특위를 해산하고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대표취임연설에서 제안한 범국민정치개혁특별기구의 구성을 정치권에 거듭 촉구한다는 방침이다.

장흥배(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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