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8월 2010-08-01   1020

김용민이 만난 사람-가까이 다가온 ‘유연한 진보’

가까이 다가온 ‘유연한 진보’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김용민 시사평론가 사진 김은진 사진가

 

‘완벽주의’,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에 대한 첫 인상은 이러했다. ‘전국 수석’ ‘서울대 합격’ 이건 완벽주의자의 전유물이다. 이뿐인가. 의원 배지를 달자마자 닭장차에 끌려가고, 여당 ‘육체파’ 여성 의원의 완력에 짓눌리고, 경찰 군홧발에 짓밟히며 고난을 자초하는 패기覇氣. “그래, 이정희 의원은 바르고 옳아. 하지만 부담스러워.” 이게 솔직한 내 소회所懷였다. 왜냐. 별 세계 독종같으니까.

“기지촌의 6살 여자아이 얼굴이 안 잊혀진다”

만나자마자 물었다. “스스로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하느냐”라고. 질문은 생뚱맞지 않았다. 전당대회에서 차기 대표일꾼으로 선출되자마자 전국을 누비다, 인터뷰 며칠 전, 병원에 실려 갔기 때문이다.

  “이 질문엔 ‘얼굴이 안 잊혀진다’는 말로 답을 대신하고 싶어요. 대학 졸업을 앞둘 무렵, 동두천 기지촌에서 만난 6살 여자 어린이였어요. 아버지는 미군 병사, 어머니는 한국인 성매매 여성이었지요. 아버지는 여느 주한미군과 다르지 않게 1년 근무 후 본국으로 떠난 뒤 연락을 끊었고, 어머니는 유흥업소에 진 빚이 너무 많아 딸을 두고 도망갔어요. 이 어린이는 포주 손에 양육되고 있었고요. 생각해보세요. 포주는 무슨 심산으로 이 여자아이를 거뒀을까요. 오로지 인류애적인 마음이었을까요. 아니면. 아니면… 지금은 스무 살이 넘었을 텐데…”

  ‘엘리트’ 이정희는 이 어린이의 얼굴을 마주하고는, 양지陽地로 향하던 발걸음을 가시밭길로 돌린다. 그리고는 ‘이 세상의 사악함과 맞서 싸우려면 자신부터 먼저 단단하게 무장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더 발전된 야권연대 위해선 힘이 있어야 한다”

완벽주의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하지만 여전히 이정희 대표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인 이유는 그가 속한 진보정당이 갖는 완고한 이미지이다. 날카로운 주장과 서릿발 같은 투쟁, 장렬한 전사로 이어지는 3단계 정치공식에는 도무지 대화와 타협의 속성으로 요약되는 융통성과 권력에의 의지가 전무하다. ‘진보정당은 불임정당이 아니라 피임정당’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오해 역시 6·2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모두 풀렸다. 거대 야당과 소수 야당의 주도권 다툼 때문에 도저히 돌파구를 찾지 못할 것 같았던 야권 단일화에 탄력을 가한 당이 민주노동당이고, 이정희 의원은 강기갑 당시 대표와 더불어 원내대표로서 그 선봉에 섰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거치면서 당원의 표정이 달라지더군요. 활력과 자신감을 얻은 것입니다. 이젠 공직에도 진출하고 행정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10년 노력한 것, 드디어 성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확실히 고무됐다. 그러나 정당도 사람이 모여 있는 공간이라 ‘야권 단일화를 빌미로 자기 인기 모으기에 치중한 것은 아닌가’하는 질시를 접하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이건 ‘이정희 독트린’이 아닌 ‘민주노동당원 독트린’임을 이정희 대표는 분명히 한다.

  “당이 유연해졌지요? 힘이 생겨서 그렇습니다. 민주노동당이 더 발전된 야권연대 또 진보정치의 통합을 적극 선도하려면 당의 기반이 튼튼해져야 합니다.”

  여기서 이정희 대표의 ‘자기 객관화론’을 요약해본다. 민주노동당이 야권연대에 기대는 것이 아닌 무게중심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고.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절실히 느낀 것은 힘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연대를 위해서는 거대 정당이 독식하기보다 양보하는 미덕도 보여야겠지요. 그러나 민주노동당을 비롯해 그 어떤 당이든 그것에 기대어 자기 실력이상으로 얻어내려는 과욕을 보이면 안 됩니다. 자력으로 지분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야 2012년 총선, 명실상부한 야권연대가 성사되고 대선도 그 무드로 가게 됩니다. 한쪽에 힘이 쏠리면 끌려가게 돼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실력을 키워가야 합니다.”

  어떻게 실력을 쌓겠다는 것인가. 말하자면 어떻게 대중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의 지평을 넓히겠다는 것일까. 정답은 ‘진정성’이었다.

  “한진중공업 구조조정 사태가 터져 나온 초반부터 홍희덕 의원과 부산시당이 사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섰어요. 그런 끝에 구조조정을 막아냈지요. 일터를 지킨 공로를 인정해줘서였을까요? 한진중공업 노동자 100명 넘는 분들이 입당했고, 영도에서 기초의원 진출을 성사시킬 수 있었답니다. 민주노동당은 자본의 논리와 위력이 세상을 삼키는 시대에 약자인 노동자의 마지막 보루가 돼야합니다. 이게 우리의 존재의 의미입니다.”

  한때 ‘철 지난 종북주의 추종세력’ ‘수구좌파’라는 오명을 들으며 ‘꼴통’으로 내몰리던 민주노동당, 확실히 ‘전략적’으로 변모했다. 이런 유연함이라면 당장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으로 갈린 진보정당의 통합도 환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실 이정희 대표의 전당대회 공약도 여기에 무게중심이 있다.

  “사실 밖에 나가면 ‘둘은 왜 갈라져 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아마 진보신당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듣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절대 못 합칠 양자일까요? 진보신당과의 통합 대원칙은 이미 3월에 합의된 상태입니다. 따라서 신뢰회복을 위한 충분한 시간과 서로 간에 진정성 확인이 이뤄진다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 판단됩니다.”

  이른바 ‘종북주의’ 갈등도 씻어낼 수 있을까?

  “남북 북미 상호 간에 핵문제를 위시한 한반도 평화 정착 원칙에 큰 차이가 있던가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도 의견이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안이 진보정치 통합의 심각한 걸림돌이 되리라고 보지 않습니다.”


“MB정부 국정 난맥상, 퇴임 이후라도 책임 물어야”

그러고 보니 이정희 대표를 만난 2010년 7월 22일은 국회에서 미디어관계법이 변칙 처리된 지 1년 된 날이다. 그날, 한나라당 의원들로 둘러싸인 의장석에서 MB악법이 하나 둘 처리됐다. 야당 의원들은 이를 온몸으로 저지하려고 힘을 썼다. 하지만 끝내 좌절되고 말았다.

  따지고 보면 그 해 우리는 참 비루했다. 연초에 용산 참사로, 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여름에는 미디어법 날치기와 쌍용자동차 노조에 대한 인면수심격의 탄압, 가을과 겨울에는 4대강에 대한 만행 앞에 무력함만 느꼈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몸으로 또 마음으로 울던 그 현장엔 어김없이 이정희 대표가 있었다.

  이러다보니 이정희 대표는 친노부터 선명 진보까지 두루 신망을 받고 있다. 원조 ‘친이親李’는 쇠락하는 반면, ‘DNA’가 다른 ‘친이’는 거듭 그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나는 이를 ‘작은 차이를 극복하며 통합의 대의를 앞세운 리더십’이라고 평가한다. 나 역시 ‘친이’가 되고 있는 것일까. 그 무렵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작은 차이를 넘어 승리하는 게 한나라당의 전통”이라고 밝힌 말이 생각났다. 이정희 대표의 반응을 들었다.

  “그 말씀 하시려면 형님 비판했다고 4선의 중진 의원 사찰하는 행동은 막으셨어야지요.”

  아무렴이다. 내친 김에 ‘김칫국 먹는다’는 소리 듣기를 각오하고 물었다. “2012년 대선에서 본인이 대안이 될 생각이 있냐”고. 그러나 이정희 대표는 본인 대신 민주노동당 차원의 입장을 밝혔다. “2012년에 민주노동당이 얼마나 도약했는지, 집권을 허락할 만큼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단계에 이르렀는지가 중요하다”라고 했다. “나는 아직 생각 안 해봤는데 주변에서 부추긴다”는 식의 관용적 표현조차도 아니다. 축구로 비유하자면 민주노동당이 스타 몇 명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조직력으로 승부하는 팀이란 이야기이다.

  진보정권 집권 이후 4대강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단호한 답을 들었다.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 막아야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밀어붙인다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때마침 김두관 경남지사 인수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연구를 했는데 ‘폭파하는 게 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미국도 1950년대에 댐을 엄청나게 많이 지었다가 1990년대 들어 원상회복하는 과정에서 유일한 방안으로 폭파를 꼽게 됐다고 합니다.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자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게 첩경이라며 말입니다.”

  4대강은 결국 이명박 정부의 독선과 아집이 빚어낸 산물이다. 허튼 데 돈 뿌리고는, 정작 써야 할 복지비용에 대해서는 “하루 6,300원으로 황제의 삶을 누릴 수 있다”며, 민노총 표현으로 ‘개드립’을 날리는 현 정권에 대해 임기종료 후 응징해야 한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말하자면 퇴임한 이후라도 MB에게 국정을 파탄 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정희 대표도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작년에 기획재정위에서 한나라당의 한 의원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렇게 국가부채가 심각해지면 좋은 건 하나있다. 다음에 아무도 정권을 안 잡을 것이란 점이다’라고 했다. 그럴 정도로 다루기 어려운 수준의 문제가 돼 버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권력의 그림자도 이용하지 않은 경우라면 모를 일이다. 국정 난맥상에 대한 책임을 퇴임 이후라도 물어야 한다고 본다. 정치 보복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법적으로 문제될 소지가 있다면 엄중하게 추궁해야 할 것이다.”

  막 임기 절반을 지나는 대통령의 퇴임 이후를 거론하면서 ‘청산’의 어휘를 써야 하는 심경을 착잡하기 그지없다.

“2012년 대선, 보편적 복지 실현이 진보진영의 모토”

다음 대선 이야기를 더 해보자. 대선 국면에서 우리 국민은 각 후보의 미래적 가치를 따진다. 1992년 군부 정권 종식, 1997년 경제위기 극복, 2002년 국민통합, 2007년 경제성장을 요구했던 것이다. 전 정권 심판, 비도덕적 후보 퇴출 따위의 심판론은 힘을 얻지 못했다. 따라서 현재 야권 연대의 고리인 반MB만으로는 2012년 대선 승리를 도모하기 어렵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진보진영은 어떤 논리를 세워야 할까. 이정희 대표의 주장은 똑 떨어진다. ‘보편적 복지국가론’이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곳에서 숨 쉬는 것만으로 혜택을 입는 구조의 완성이다. 그러고 보면 무상급식은 보편적 복지의 출발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진보진영에서는 월 11,000 원만 더 내면 건강보험 보장성을 100%로 확대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고무적인 현상이다.

  “복지는 경제 사회적 권리입니다. 이게 마치 시혜인 것처럼 학술적으로 통설화되고 결국 개념화됐는데 잘못된 것입니다. 보편적 복지가 실현되는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그 단초가 형성됐지요. 그러나 한계도 있었습니다. 규제 완화라는 당근으로 민간에게 떠맡긴 것이지요. 이런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국가가 주도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세금을 늘여야겠지요. 종합부동산세처럼 헌법재판소의 시비를 받지 않을, 국민의 이해와 동의가 전제된 조세의 지지대를 구축해야 합니다.”

“야당을 한데 묶는 힘, 시민사회에 있다”

이정희 대표는 그래서 야권의 정책적 공통분모 찾기와 시민사회와의 구심점 역할을 강조한다.

  “그동안 야당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해준 곳은 시민사회입니다. 민주노동당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중앙의 연대가 결렬돼도 지방차원의 연대가 이뤄질 수 있었던 것도 시민사회의 의지와 열정 덕이었습니다. 민주노동당이 지향하는 바는 시민사회와 함께 하는 주민자치참여입니다. 주민참여예산제를 정착시키려는 의지를 그래서 앞세우려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지방자치차원에서 협력하지만, 2012년 이후에는 국가 차원의 협치를 만들고 싶습니다. 각각 현안에서 야당을 묶는 힘. 당리당략에 따라 야당이 이탈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야당이 자기이해에 따라 포기하지 않게 하는 힘. 시민사회에 있습니다. 함께 뜻을 모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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