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12월 2011-12-05   2572

안건모의 사는 이야기-잠자리채 헌금함과 불전함



잠자리채 헌금함과 불전함

 

안건모 <작은책> 발행인

 

한 달에 한 번 가는 ‘역사와산’이라는 산 모임이 있다. 회원들과 전국에 있는 산을 다니면서 그 지역이나 산에서 일어났던 역사나 문화재와 관련한 역사도 덤으로 공부하고 있다. 이번엔 합천에 있는 가야산을 가기로 했다. 산에 오르기 전에 해인사라는 절에서 새벽 예불을 드린다고 했다. 예불을 드린다고? 불교도 모르고 절에서 하는 예법(?)도 모르는데 어떻게 예불을 드리지? 궁금했다.

  지난 11월 19일 토요일 밤 10시, 모임 일행 서른 명이, 대절한 버스를 타고 시청에서 출발했다. 해인사에 도착하니 새벽 세 시다. 하늘엔 초승달이 떠 있고 수많은 별이 깜박이고 있었다. 우리는 어떤 스님이 안내하는 대로 대웅전을 들어갔다.

  대웅전에는 불상들이 늘어서 있고 그 앞에는 스님들과 신도들이 앉아 있었다. 헉 그런데 뭐야? 스님은 우리보고 불상도 안 보이는 뒤쪽, 한쪽 귀퉁이에 앉으라고 한다. 벽면에는 온통 탱화 그림이 있었다. 이 벽을 보고 있으라고? 방석을 가져오려고 갔더니, 스님 방석이 따로 있고 손님 방석이 따로 있다. 스님 방석도 고참 방석이 있고 신참 방석이 있는지 모양이 다르다. 스님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할 때도 고참이 앉아 있던 방석을 ‘아랫 것’들이 다 거둬서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평등한 조직이 아니었다.

  우리는 탱화가 그려진 벽을 보고 앉아 있었다. 뒤쪽에서 목탁 소리와 불경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인지 알 리가 없었다. 뻘쭘했다. 이렇게 앉아서 저 알 수 없는 불경 소리를 듣는다고 뭔 깨달음을 얻지? 이게 예불인가?

  한 40분을 멍청히 앉아 있다가 밥을 먹으러 갔다. 식당은 깨끗했다. 짙은 회색으로 된 무도복 같은 옷을 입은 외국인들이 밥을 먹고 있었다. 상 위에는 ‘공양 중 묵언’이라는 팻말이 놓여 있었다. 왼쪽부터 가운데까지는 스님들 자리라고 따로 있고 맨 오른쪽에 ‘불자석’이라는 ‘손님’들 자리가 있었다. 손님 자리는 모자랐다. 스님 자리가 텅 비어 있었지만 그 자리에 가는 사람은 없었다. 수도하는 그곳에서도 계급이 있었다.

  접시에 밥을 담고 그 옆에 김치와 무말랭이를 담았다. 이건 얼마짜리일까? 모임 대표한테 물어 보니 밥값은 1인당 3천 원씩, 10만 원을 냈단다. 밥값은 내야 하겠지. 그런데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 문화재를 관람하면서 절 관계자에게 설명을 들어보려고 했더니 돈을 내야 한다고 했단다. 그래서 대표는 국립공원 쪽에 물어 봐 관광해설사에게 부탁해 놨다. 물론 거기서 하면 무료다.

  열대여섯 살 무렵에 서울 홍제동 뒷산에 있던 백년사를 간 적이 있다. 그날은 절에서 장례식을 치른 뒤였는지 수의를 태우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 가고 난 뒤 불당 옆문을 몰래 들여다봤는데 스님들 세 명이서 불전함에서 꺼낸 돈을 바닥에 쏟아놓고 세는 모습이 보였다. 지폐가 스님들 무릎 위까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불교는 그냥 믿으면 되는 줄 알았더니 교회에서처럼 헌금을 내야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헌금 때문에 어릴 때 한번 교회를 가서 쪽팔렸던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3, 4학년 때였나? 크리스마스 때 사탕과 초콜릿을 준다는 말에 친구와 함께 교회를 갔다. 찬송가를 부르고 설교를 하고는 헌금을 모금하기 시작했다. 어라? 저건 뭐지? 그 모금함은 잠자리채였다. 그걸 들고 다니면서 돈을 받았다. 그게 내 앞으로 올 때 내 맘은 두근거렸다. 잠자리채 헌금함 안에는 동전과 지폐가 들어 있었다. 한 푼도 내지 못해 쪽팔렸다. 나는 그 뒤로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았다.

  그 잠자리채 헌금함은 지금은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상자로 바뀌었지만 그때보다 더욱 엽기적이다. 어떤 교회는 헌금 많이 낸 사람 차례대로 그래프를 그리기도 한다고 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같은 곳은 설교 때 헌금을 많이 내야 천국을 갈 수 있다는 설교를 하기도 하고, 아예 헌금을 내는 자동화기기(ATM)까지 설치했다. 인터넷에 뜬 사진을 보면 자동화기기 이름이 ‘헌금 하시는 곳’이라고 써 있다. 잠자리채 헌금함에서 자동화기기로 바뀌었다.

  그런 헌금을 제 돈처럼 쓰는 목사도 있다는데, 그것보다 얼마 전에  ‘빤스 목사’ 소식을 듣고 뒤집어질 뻔했다. ‘사랑’이 충만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이라는 목사는 “이 성도가 내 성도됐는지 알아보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면서 “옛날에 쓰던 방법 중 하나는 젊은 여집사에게 빤스(팬티) 내려라, 한번 자고 싶다 해 보고 그대로 하면 내 성도요, 거절하면 똥이다”라기도 했고, “애 다섯 안 낳으면 감방 보내겠다” 하고 설교한 적도 있다. 그 전광훈 목사는 “우리가 내년 4월에 기독교 정당을 만들어서 헌법을 개조해 아이 5명을 안 낳으면 감방에 보내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하면서 ‘우익 기독교 정당’ 창당을 주도하고 있다. 이 목사에게 그런 설교를 들은 신도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오! 믿씁니다! 아멘!’ 했을까. 정말 궁금했다.

  가야산에서 내려와 다시 해인사를 들렀다. 해인사 앞마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손을 합장하고 네모나게 쳐 있는 줄을 따라 돌면서 ‘뭔’ 소원을 빌고 있었다. 무슨 소원을 빌까. 얼마 전에 아내와 같이 강원도 춘천에 있는 청평사에 잠깐 다녀온 적이 있다. 그 절간 마당에는 자녀들의 ‘수능 합격’을 기원하는 리본과 꽃봉오리가 정신없이 달려 있었다. 그것도 다 돈을 낸 거다. 그런데 절이 소원을 비는 장소인가? 그것도 대학입시라니? 부자들만 ‘일류대학’을 갈 수 있는 이 사회의 잘못된 교육 제도를 고칠 생각은 않고 자기 자식만 ‘일류대학’을 보내려고 하는 ‘욕심’을 부처님께 빌다니. 게다가 자기 자식만 일류대학 나와 혼자만 잘 먹고 잘살려고 하는 욕심은 이 천민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게 하는 요인이 아닌가. 본래 불교는 ‘무소유’가 바탕에 깔린 종교 아닌가? 내가 종교의 ‘심오한’ 뜻을 몰라서일까.

  오늘 새벽에 우리 일행들은 벽을 보고 앉아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뭔가 소원을 빌었을까? 뭔가 한 가지 깨달았을까? 나는 그냥 뻘쭘했다. 아, 게다가 ‘춥고 배고프고 졸려!’ 난 역시 원초적인 속세 인간일  뿐이야. ‘씨바’, 그냥 그렇게 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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