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10월 2012-10-08   1717

[놀자] 내 멋대로 네 멋대로, 악기와 놀자

 

내 멋대로 네 멋대로, 악기와 놀자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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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저녁, 친구들과 홍대 앞의 옥상에서 만났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6층 건물의 꼭대기까지 땀을 뻘뻘 흘리고 올라갔더니, 작은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소박한 화단이 보였다. 우리는 각자 가져온 음식을 나눠먹었지만 그게 주목적은 아니었다. 흐릿한 촛불 아래로 악보들이 오고갔고, 에어컨 실외기의 윙윙거리는 소음 사이로 기타 줄을 조율했다. 누군가 천천히 아코디언을 켜기 시작했고, 또 누군가 탬버린을 흔들며 손목을 풀었고, 나는 오랜만에 기타의 코드를 짚었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음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묘한 화음을 이루었다. 약간의 취기 덕분에 ‘리베르탕고Libertango’와 ‘아멜리에의 왈츠La Vales D’ Amelie’는 그럭저럭 들을 만한 무엇이 되었다. 

  내겐 어떤 상처가 있다. 7~8년 전에 어떤 동호회에서 파티를 준비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던 때라, 내가 “기타라도 들고 와서 캐롤이나 같이 부를까?” 하고 물었다. 20대 초반의 여자아이가 씩 웃으며 말했다. “촌스러워요.” 나는 바로 찌그러졌다. 그래, 통기타에 맞춰 ‘조개 껍질 묶고~’ 노래 부르는 건 80년대 학번 엠티 때나 하는 거지. 이제는 모니터에 가사가 뜨지 않으면 노래도 못하는 시대지. 

  그로부터 몇 년 뒤, 여기저기서 기타 가방을 둘러멘 친구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홍대 앞에서 밴드를 하는 친구들인가 했다. 그런데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동네에서, 다양한 연령층의 기타리스트들과 만나게 되었다. 급기야 TV 홈쇼핑의 황금 시간대에 통기타를 파는 모습을 목격했다. “도대체 왜 저런거야?”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답은 이랬다. “너, <슈퍼스타 K> 안 봐?” 

  아무래도 <위대한 탄생>, <톱 밴드> 같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사람들은 기획사에서 묶음 패키지로 나오는 댄스 그룹에 질렸다. 그리고 혼자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는 싱어송라이터의 자연스러운 모습에 반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세시봉’ 같은 왕년의 통기타 문화에 대한 향수들도 더해졌다. 아빠는 대학 시절의 추억을 더듬으며, 엄마는 못다한 꿈을 기억하며, 아들딸은 미래의 가수와 밴드를 꿈꾸며 기타를 두드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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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가딩가 쿵쿵, 함께하면 더 신난다!
기타는 참 좋은 악기이지만, 쉽지는 않다. “손가락 끝이 아파서 죽겠어”, “기타 메고 다니다 허리 부러지겠어”. 그래서 ‘마의 F코드’를 쥐려고 사투를 벌이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인지 기타와 닮았지만 훨씬 작은 또 다른 녀석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하와이에서 훌라춤을 추는 무희들 옆에 자리 잡고 있던 우쿨렐레다.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 편하고, 현도 네 줄 밖에 안되어 배우기 쉽다. 소리도 작아서 카페 야외에서 통통거리며 쳐도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요즘은 동네 문화센터 같은 데서도 강좌를 만날 수 있다.  

  누군가 진지하게 악기를 배우고 싶다고하면, 나는 아코디언도 추천하고 싶다. 멜랑콜리한 선율이 심금을 울리고, 여러 장르에 함께 할 수 있다. 게다가 의외의 수준급 연주자와 강사들이 있다. 그게 누군고 하니 탈북자들이다. 북한에선 피아노만큼이나 대중적인 악기가 ‘손풍금’이라 전문 연주자가 아니라도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는 한때 플라멩코 기타를 배워본 적이 있다. 2년 정도 나름 열심히 했는데, 어느 순간 피시식 김이 새버렸다. 왜 그런가 싶었더니 선생님과 단 둘이 앉아 연습만 하니 지겨워 죽겠는 거다. 역시 음악의 재미는 함께 모여 합주하는 데 있다. 그러니까 누군가 기타를 치면, 다른 누군가는 키보드를, 또 누군가는 베이스나 드럼을 배워 함께 연주하는 게 좋다. 

  허나 이런 밴드가 쉽게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실력도 문제고, 덩치 큰 악기도 문제고, 연주할 공간도 문제다. 그러니 조금 힘을 빼는 것도 좋다. 기타가 어려우면 우쿨렐레를, 드럼이 버거우면 젬베 같은 작은 북도 좋다. 얼마 전에 벼룩시장에서 3만 원 짜리 멜로디언을 불어봤는데, 보기엔 어설퍼 보여도 화음도 낼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이게 피아노나 키보드를 대신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또는 오카리나나 리코더처럼 멜로디를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하나쯤 있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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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 과목 ‘악기 연주’에 한 표! 

악기를 연주하게 되었다면 그 다음엔 자작곡이다. 내가 제일 최근 배운 악기는 블루스 하모니카다. 어느 블루스 뮤지션이 홍대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단지 ‘블루스를 더 많은 사람과 즐기고 싶다’는 이유로 강좌를 개설했다. 다섯 명이 매주 한 번씩 모여 악기에 주둥이를 대고 빨았다 불었다 했는데, 두 주 만에 즉흥 연주에 도전했고, 셋째 주에는 즉석에서 자작곡을 만들기도 했다. 내가 만든 곡은 ‘발바닥 블루스.’ 밑창 꺼진 신발 때문에 다친 발을 끌고 시내버스에 탔다가 넘어진 아픔을 담았다. 

  올해 3월 진보신당이 교육 분야의 정책공약을 설명하면서 ‘악기 연주 능력 습득은 필수, 미적분은 선택’이라는 예를 들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나는 미적분을 배척하는 데는 반대한다. 미적분은 그야말로 인문 교양, 학교가 아니면 어디서 배우나. 하지만 악기 연주를 필수로 하는 것은 대찬성이다. 제각각의 악기가 모이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알려면, ‘사직동, 그 가게’에서 가끔 열리는 ‘멜로디 잔치’를 찾아가보길 권한다. 

 

이명석

저술업자. 만화, 여행, 커피, 지도 등 호기심이 닿는 갖가지 것들을 즐기고 탐구하며, 그 놀이의 과정을 글로 쓰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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