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12월 2016-11-30   870

[특집] 여성성을  모욕하지 마

특집_굿바이, 박근혜의 나라

 

여성성을 
모욕하지 마

 

글. 김상미 참여사회 편집위원
 

 

 

“세상에, 어떤 드라마보다 8시 뉴스룸이 더 재미있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60대 초반, 독실한 기독교도이며 강남에서 두 아들을 키운 이모님은 요즘 나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신다. 늘 1번을 찍어 왔지만, 3년 전부터 살림살이 힘든 아들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완전히 마음이 돌아섰다고 한다. 우리는 때때로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대통령 얼굴이 이상하지? 보톡스를 맞나 봐.” “세월호 7시간 동안 그랬다는 말이 있어요.” “요즘 강남 사는 친구들은 얼굴에 실 주사를 맞는데 주름이 쫙 펴진대.” “헉, 뭘 그런 걸?” “프로포폴 같은 걸 맞으면 안 아프대. 백만 원인가 한다던데….” 

설마하며 뒷담화처럼 나누던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사실로 드러나는 걸 두어 달 겪다 보니 분노 이전에 허탈한 웃음만 나올 지경이다. 뉴욕타임스까지 11월 21일(현지 시간), 이 사단으로 인해 한국 여권(女權) 신장이 가로막히게 됐다, 박 대통령 때문에 여성 전체가 편견에 매도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했을 만큼 이 일이 ‘여성 혐오’ 혹은 ‘여성 비하’ 최소한 ‘여성 정치인’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그게 아니잖아’라고 쏘아붙이기엔 이들이 벌인 행각의 일부는 이른바 ‘강남 아줌마’로 표상되는 온갖 행태들을 너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학칙까지 바꾼 부정 입학, 교수를 동원한 학점 관리, 온갖 불법 시술과 주사, 가명 치료, 나한테 잘했나 못했나를 만사의 기준으로 삼기 등, 적나라하고 천박해서 떠올리기도 싫다. 하지만 이 사단의 본질은 여자라서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위임 받은 권력을 대통령이 오로지 자기와 자기 가족(최씨 일가)만을 위해 부당하게 행사하여 ‘헌법 질서’를 유린했다는 점이다. ‘많이 배우고 공부 잘한’ 엘리트인 새누리당 정치인들, 검사와 검찰, 공무원들, 언론 등 그 곁에 붙어, 혹은 그를 앞세워 권력을 마음껏 누려온 사람들, 돈을 내고 소원수리를 협상한 재벌들 역시 이 모든 범죄의 공범이다. 

박근혜와 그 공범들은 정치에 등장했을 때부터 그의 ‘여성성’을 노골적으로 악용해 왔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18년 동안 요가를 해서 탄력 있는 몸이라는 둥, 엘레강스하다는 둥, 60~70대의 아이돌이라는 둥. 지금 이 사단의 와중에도 ‘약한 여성’이어서 지켜야 한다며 변호사조차 ‘여성으로서의 사생활’ 운운하고 비서실장 김기춘은 ‘여자로서의 사생활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세월호 7시간 동안 대통령의 행방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지 않는가? 여성성이라는 것을 이렇게 저열하고 모욕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저들의 또 다른 범죄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회복해 나갈 수 있을까? 이는 탄핵이나 조기 대선 등의 정치적 해결 외에도 박근혜 이후, 새로운 사회, 새로운 시대를 상상하고 꿈꾸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11월 5일 종로를 행진한 다음 광화문 일대에서 2차 집회가 열렸다. 사회자가 “~한 잡년이”라고 하더니 바로 “아,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다음 발언이 끝난 다음에도 부적절한 말을 했다며 사과했다. 여성혐오 발언을 자제하자, 소수자와 약자를 빗대어 풍자하지 말자, 라는 손 피켓이 등장했다. 이처럼 빨리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건 광장과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라는 실재하는, 실존적인 공간과 존재로 인해서가 아니었을까? “그들이 저열하게 하더라도, 우리는 품위 있게.” 라는 미셸 오바마의 멋진 말처럼, 우리도 그렇게 성찰하고 반성하며 바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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