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9월 2004-08-20   1388

[인터뷰] 재일한국인 평화운동가 손명수 씨

“한일간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동북아 평화 모색해야”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한국과 일본의 청년운동가들이 발벗고 나섰다. 한일평화운동가들은 지난 8월 13일 부터 15일까지 임진각과 강화도등지에서 있었던 ‘아시아 평화를 위한 한·일 청년 평화순례’를 함께 하며 향후 공동대응을 모색했다.

한국을 방문한 일본평화운동가들은 순례에 앞서 원폭피해자들과 위안부 할머니를 만나 전쟁의 상처를 다시한번 확인하고 과거사를 사죄했다. 그들은 “이제 배용준이나 원빈 아닌 위안부 할머니가 제일 먼저 한국의 이미지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아시아평화를 위한 한일 청년 평화순례’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재일한국인 평화운동가 손명수씨의 힘이 컸다. 한일간의 교류와 연대야말로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필수요건이라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시아 평화의 필수조건, 한일 시민사회 연대

손 씨는 일본에서 시민운동단체 ‘한일시민광장’에서 일하는 활동가다. 이름 그대로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과 일본. 그 사이에 이도 저도 속하지 못한 재일한국인으로서 살아온 그는 양국간의 굳건한 연대야 말로 아시아 평화의 주요한 길목임을 생생히 보고 느낀 사람이다.

▲ 재일한국인 평화운동가 손명수씨“서로 서로 알아야 되요. 한국도 일본도 90년대 중반부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 일본의 경우 서구사회를 많이 바라봅니다. 근데 바로 이웃나라에 서로 좋은 인프라가 있다는 것을 잘 몰라요. 서로 연관관계가 너무 약한 거죠. 이 고리를 연결시키면 그 효과가 대단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손 씨가 그 전부터 활동했던 공간은 재일한국인 학생그룹.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했던 단체이기도 하다. 북한이 지원하는 조총련, 남한이 지원하는 민단(재일본한국교류민단)과는 독립적으로 활동할 단체가 필요했다는 것. 그것은 남한에도 북한에도 제대로 속할 수 없던 손 씨와 같은 재일동포들의 고민 속에 나왔다. 이런 손 씨의 고민은 해방 후 일본에서 힘들게 살아온 재일동포들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조총련 계열의 민족학교를 다녔어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지문날인을 해야 했지요. 그 때 많은 학생들이 지문날인을 거부해 구속됐었고. 그런 상황 속에서 ‘재일한국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공부도 많이 했구요.”

1945년까지 재일한국인은 국적이 없었기 때문에 모두 일본인이었다. 일본 국적도 있었고 투표권도 있었다. 그러나 1952년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주권을 회복하자 재일한국인도 일본 국적을 뺐겼다. 일본에도 남한에도 북한에도 속할 수 없었던 경계인들.

“재일한국인 1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기억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 놀았던 산이나 강 말이에요. 그러나 2세들은 아닙니다. 그들이 태어나고 살았던 곳은 일본의 아주 가난한 지역입니다. 한국을 모르기에 한국말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 때 당시 재일한국인들이 가졌던 설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손 씨는 72년에 신문에 났던 기사 하나를 생각해 냈다.

“그 당시 한국에서 온 어떤 이가 이런 말을 했었죠. ‘재일한국인도 긍지를 가지고 일하면서 잘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한국의 이미지가 나빠진다.’ 재일한국인의 열악한 상황을 가지고 오로지 한국의 이미지만 걱정한 거죠. 의미가 참 많은 기사였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처하게 된 구조적인 현실도 모르고. 재일한국인은 한국사람한테도 일본사람한테도 차별받았습니다. 그리고 차별을 피해 북한으로 가도 차별받았습니다. 그렇게 2세들은 한 많은 생을 살았습니다.”

일본사회, 한국과 북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 한일청년평화순례의 마지막 날. 광화문 열린시민광장에서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한일참가자들

손 씨가 한일간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지극히 제한적인 일본의 외신. 바로 언론이다. 일본에서 외신이라며 한국의 소식을 보도하는 대부분의 뉴스가 조선일보라는 것.

“일본으로 들어오는 외신정보의 대부분이 조선일보입니다. 물론 조선일보 정보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정보도 접할 수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북한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의견들이 대부분이죠. 일본사람들은 이러한 뉴스가 한국의 전부인 줄 알아요.”

그는 또한 일본에 불고 있는 극우주의에 대해서 우려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여당이 아닌 야당인 민주당 의원의 입에서도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일본 정치인들의 현실 감각을 비판하며 일본이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내놓는다.

“북한을 도와야 해요. 한국이 제도적으로 일본보다 탈북자에 대한 문제가 앞서 있습니다.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본도 통일비용을 내야합니다. 안 그러면 한반도 통일 이후에 더 많은 비용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만이 감당할 문제가 아니지요.”

북한의 일본의 납치사건으로 일본에서는 북한을 공격하거나 경제제제를 가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또한 국제 평화를 준수하고 전쟁을 위한 무력행사를 금한다는 내용의 헌법 9조를 폐기하자는 여론도 드세다. 북한에 대한 공격은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재일한국인에게 그 화살이 돌아간다. 재일한국인이 일본에서 피해받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도 한반도의 평화, 동북아의 평화는 기본요건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스라엘 국민들도 예전에는 고통받았었죠. 하지만 그들은 건국 후에 팔레스타인을 더 심하게 학대하지 않아요? 그들의 정책에는 그들의 논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당한 것은 국가가 없기 때문이었다’는 것. 그들은 자기네들이 양보하면 또 그렇게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조국을 또는 국가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이것이 바로 폐쇄적인 민족주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평화에 대한 생각. 그는 민족을 넘어 세계의 보편적인 가치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지 않으면 전쟁의 역사는 반복될 뿐.

더 가까워져야 할 한국과 일본

▲ 참가자들은 이라크침략전쟁에 관련한 자료영상을 보며 토론을 벌였다

손 씨의 한국어 실력은 수준급이다. 아니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한국어를 구사한다. 일본어 잘 하는 한국사람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한일교류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언어라고 생각하고 대학 때 한국어를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손 씨의 선배 중에 외국어 능력이 ‘꽝’인 사람이 있다고 한다. 10년 동안 ‘아야어야’를 공부한다고. 딱히 쓸 곳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한국어 교본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바로 민족어를 공부해 민족적 정체성을 찾고 싶다는 것. 그러나 2세들은 한국어 공부를 해봤자 쓸 기회가 없었다는 것. 그러나 3세 4세는 다르다.

“그러나 한국도 많이 발전했어요. 무엇보다도 민주화를 달성하지 않았나요? 그것이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한국인 3세 4세에게 많은 힘을 주고 있습니다. 한류열풍, 배용준, 겨울연가만이 한일교류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가 후배들에게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라고 다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우면 쓸 수 있다고. 그리고 한일교류를 위해 그 능력을 써야 한다고.

2박 3일간 한국과 일본의 청년활동가들은 한국땅에 뿌려진 전쟁의 상흔을 만나고, 아시아의 평화에 대해 함께 고민을 나누었다. 이들 앞에 놓여진 과제는 무겁다. 왜곡된 과거사, 북한 핵의 평화적 해결, 자위대와 자이툰부대의 문제…

아시아 평화를 가로막는 장벽을 향해 한일 청년활동가는 함께 힘을 모아 갈 것을 약속했다. 재일한국인 손명수씨는 이들의 땀과 열정이 아시아 평화를 향한 희망의 씨앗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홍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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