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11월 2004-11-01   803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세계 곳곳에서 게속되는 분쟁의 배후, ‘패권주의와 자본의 횡포’ 파헤치다

『세계분쟁과 평화운동』 (참여연대국제연대위원회 엮음/아르케)


아프리카는 최초의 인류가 발원했던 지구상 가장 오래된 땅이며 수에즈 운하에 의해 아시아와 연결되고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과 면하는 총 3036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대륙이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서구 열강들에 의해 끊임없이 식민과 종속의 역사를 강요받았던 슬픈 운명의 대륙이기도 하다.

케이프타운의 한 대학에 낭만주의 시를 강의하는 50대 백인교수 데이비드 루리가 있다. 제자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탄핵되어 사실상 대학에서 쫓겨난 그는 자신의 딸이 소유한 흑인 구역의 작은 농장으로 가게 된다. 잠시 동안 딸과 자연의 영향을 받으며 자신을 돌아보던 그에게 어느날 흑인 강도가 들이닥친다. 짧은 평온은 다시 균열과 분노에 자리를 내어 주지만 뜻밖에 폭행당한 그의 딸은 흑인들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고 백인이 흑인사회에 머무는 대가로 받아들인다. 작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남아공 출신의 존 쿳시는 좬추락(원제 disgrace)좭에서 서구 백인들이 심어놓은 식민주의가 어떻게 백인과 흑인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폭력의 근원을 제공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불화를 끝낼 것인지를 정교하고 세련되게 보여준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불화, 그리고 그 사람과 사람들이 모인 집단과의 반목, 또 그 집단과 집단이 모인 세계와의 전쟁의 해결책은 어찌보면 아주 간단해 보인다.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또한 차이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함께 사는 것!

네덜란드계 백인 출신인 그의 정체성과도 무관하지 않겠지만 존 쿳시의 작품은 대체로 두 세계의 반목과 상처 그리고 자신의 뿌리였던 서구사회의 위선을 폭로하고 비판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폭로와 비판 다음엔? 그 다음은 언제나 그렇듯 우리들 자신의 몫이다.

분쟁과 갈등을 뛰어넘어 평화의 길로!

좬세계분쟁과 평화운동좭은 읽으면 읽을수록 고통스러운 책이다. 지난 9월에 출판됐으니 아직 따끈따끈한 기계열이 남아 있을 법한데도 읽으면서 오한이 났다. 전세계 수천 수백의 인구가 크든 작든 분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 이성이 발달할수록 세계가 더 나아질 것이란 이상주의적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문명과 야만의 경계가 사라지고 좀더 교묘한 방식으로 폭력과 전쟁이 조장되고 있다는 현실을 확인하면 이 세상에 과연 희망이란 존재하는가 되묻고 싶어진다.

세계분쟁과 평화운동은 읽으면 읽을수록 절망스럽다. 내가 사는 세상의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이 없고 언제든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소위 세계 유일의 강대국 미국의 이해에 따라 언제든 내가 사는 곳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도 있다. 석유장악과 이를 통한 달러화 지키기를 위해 수많은 이라크인들의 삶이 부정된 현실을 보라. 인권과 평화라는 방패 뒤에 숨어 철저히 자국의 이해만을 관철시켜 온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냉전이 종식되었음에도 여전히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대량살상무기로 ‘문명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로 낙인찍고 있으니 말이다.

세계분쟁과 평화운동은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가 그간의 뉴스레터를 정리하여 세계분쟁과 평화운동에 관한 심층적인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출간한 책이다.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굳이 전쟁을 얘기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억압과 전쟁의 참상만큼 평화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일깨워 주는 것이 있을까. 이 책은 이말이 사실임을 선명하게 입증한다.

전체 3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으면서 그 중 1부는 세계의 선함을 대변한다고 자처하고 있는 미국의 본질에 대해 할애하고 있다. 과연 미국은 선함과 인권의 대변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저절로 얻게 될 것이다.

2부는 세계 각 분쟁지역에 대한 역사적 맥락과 현재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함께 실은 분쟁지도와 관련 웹사이트도 또다른 길잡이 노릇을 해 줄 것이라 기대한다.

전세계 반전 평화운동을 소개하는 3부는 폭력과 야만의 자리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평화로 채우기 위해서는 평화와 인권운동의 중요성을 구체적으로 알려내고 보다 더 공고한 세계시민사회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현재에 와서 더욱 중요해진 전 지구적 연대에 대한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서문의 “이 책을 읽는 선량한 독자”라는 말이 유독 마음에 남는다. 착하고 어진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사는 지를 아는 법이다. 데이비드 루리가 흑인 강도에게 폭행을 당했지만 그들을 비난하고 처벌하지 않았던 것은 그 폭력성을 옹호해서가 아니라 남의 땅에 들어와 주인처럼 살았던 백인들이 이제는 어떻게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할 지를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이 책을 읽어내는 데 고통을 느꼈다고 고백해야겠다. 나 역시 선량한 독자의 한 사람일까 하는 자문과 함께 지금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닌 타인의 고통이 어쩌면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절망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저 루쉰(중국문학가)이 그의 소설 어딘가에서 했다는 다음 말로 기운을 북돋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희망이란 본래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다. 희망은 대지 위에 난 길과 같다. 애초부터 땅 위에 길이란 없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히 그 곳이 길이 되기 때문이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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