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10월 2004-10-01   806

진상규명 중심의 독립적 국가기구가 바람직

과거청산의 쟁점과 관점


현재 과거청산 문제는 과거사규명작업에 당력을 총동원하겠다는 열린우리당, 이에 반하는 한나라당의 강경한 입장이 대치되면서 정치권의 논란이 되고 있다. 과거청산의 의미와 대상 그리고 방식 등과 과거사 특위 구성을 둘러싼 쟁점을 통해 해결 접점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편집자주

개혁에 대한 저항이 늘 그렇듯이, 과거청산을 ‘대놓고’ 반대하는 주장은 별로 없다. 과거청산 반대의 목소리는 ‘경제가 어려운데 왜 하필 지금이냐’, ‘친일과 독재뿐만 아니라 친북용공도 조사하자’, ‘정치적 중립을 위해 과거사 청산기구를 민간기구로 하자’ 등 일견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과거사 청산과 경제정책은 국가적 과제의 측면에서 전혀 차원이 다른 영역이고, 따라서 ‘과거사 청산’과 ‘어려운 경제상황’에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주장은 선전선동의 성격이 다분하다.

그러나 이런 엉터리 주장도 대중적 설득 효과를 거두고 있다. 과거청산을 둘러싼 쟁점을 정리하고 올바른 관점을 취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상규명이 최우선

지금까지 진행된 과거청산의 방식은 명예회복, 진상규명, 보상, 기념사업이라는 네 가지가 보편적이다. 그러나 “대부분 과거청산이 진상규명 없이 바로 보상이나 명예회복의 형식으로 진행돼 왔다(장완익 변호사)”는 점이 지금까지 진행된 과거청산작업의 한계로 지적되곤 한다.

정호기 전남대 호남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보상 문제가 과거청산에 끼친 영향의 예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역학의 중요성과 민주화 기여도가 아니라 개인적 명예회복과 피해에 대한 보상에 초점에 맞춰져 특정 사건과 이념을 둘러싸고 형성된 공동체를 분해시키는 역기능이 나타났다”는 사례를 든다. 김동춘 교수는 “정치권력은 진상규명을 포기하는 대가로 보상, 배상을 통해 피해자들과 협정을 맺을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되면 보상의 형평성 논란과 피해자들간 갈등이 야기된다”면서 진상규명이 우선하고 개인에 대한 보상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과거청산의 수위와 관련 가해자에 대한 처벌 문제도 제기된다. 가해자가 대부분 사망해 처벌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제시대와 달리, 군사독재 시절 특히 80년대 이후의 공권력에 의한 고문, 의문사 등 인권유린의 경우 가해자가 현직의 공직을 맡고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고, 공소시효가 적용될 사례 가능성도 높아 어떤 식으로든 처벌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처벌 문제는 “간첩이 애국자를 단죄한다”는 식의 극렬한 반발을 불러, 진상규명의 문제를 좌우 이념대립의 구도로 끌고 가려는 불순한 의도에 말릴 우려도 높다.

“일단 공소시효 범위 내에 있는 경우에도 처벌은 최소화하는 것이 좋고, 처벌을 거친 다음의 정치적 사면보다는 진상규명을 통한 사회적 처벌이 더 바람직하다”는 김동춘 교수의 의견은 이런 우려를 반영한 결과다. 열린우리당이 만든 ‘진상규명과 화해를 위한 기본법’ 역시 처벌보다 진상규명에 무게를 싣고 있지만, 과거청산기구에 부여될 사면건의권은 ‘사법적 처벌을 전제한’ 정치적 사면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앞으로 정치권에서 논란일 일 것으로 보인다.

청산 대상은 반인권적, 반인륜적 공권력

과거청산의 대상 범위와 관련해서는 대체로 ‘공권력의 반인권적, 반인륜적 행사로 인한 피해’로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 여당의 기본법 초안은 해방 후의 과거청산의 대상을 반민주적 행위, 헌정질서 파괴.위협 행위, 공권력에 의한 사망.상해.실종 사건 등으로 폭넓게 잡았으나 추가 논의를 통해 “해방 후 문제는 국가 공권력에 의한 사망, 실종사건 등으로 한정하자”는 합의를 봤다. 이 경우 3선 개헌, 유신, 12.12쿠테타, 금강산댐 건설 등 개인이 입은 피해와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는 과거사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는 숙제로 남게 된다.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한 환경에 대한 청산 역시 과거청산의 맥락 속에 배치되어야 한다. 국가보안법, 사회보호법 등이 제도적 과거청산의 대표적인 법률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청산의 대상범위와 관련, “친북용공도 조사하자”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주장은 역사인식의 빈곤이 아니라면, 과거청산을 사실상 거부하는 논리다. “한국전쟁 전후의 학살은 대부분 군대, 경찰, 우익집단에 의해 자행(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됐고, 이승만 정권부터 친북용공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는 누구보다 박 대표 본인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한 집안에 두 명이나 친북용공 조직의 핵심에 가입했으나 권세를 누린 집안은 오직 박정희 집안뿐”이라는 냉소가 가장 좋은 대답일 수도 있다.

독립적 국가기구가 정답

과거청산을 위한 기구를 국회에 두느냐, 독립적 국가기구로 갈 것이냐를 둘러싼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대립은 열린우리당이 국가기구화로 방침을 정하면서 정리가 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과거청산을 독립된 민간연구소가 주도하도록 하자는 입장이다. 이런 주장은 ‘일제시대의 친일 문제는 학계의 전문적 연구에 의해 규명될 성질(이영훈 서울대 교수)’이라는 주장과 상통한다.

그러나 김동춘 교수는 “이런 주장은 과거청산에 정치적 이해의 개입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과거청산을 역사해석 작업으로 왜소화시키겠다는 의도”라고 단호히 반대한다. 과거청산, 특히 진상규명은 “공동체의 집단적 기억을 조직하는 정치적, 윤리적 과제(진중권 시사평론가)”다. 그리고 그 기억이 국가에 의한 ‘공적’ 기록으로 조직되어야 할 필요성은 전범 처벌을 포함해 과거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단죄와 사죄를 분명히 했던 독일과 그렇지 않았던 일본이 오늘날 평화주의와 군국주의라는 전혀 상반될 길을 걷는 모습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과거청산 기구의 권한 문제도 앞으로 쟁점이 될 사안이다. 여당의 기본법에 담긴 과거청산 기구의 권한은 기존에 비해서는 대폭 강화됐다는 평이다.

그러나 지난 경험에 비춰 이런 권한이 조사에 저항하거나 비협조로 일관하는 국가기구를 강제할 정도인지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조사기구의 권한 강화에 대한 예상 가능한 반대 목소리 속에서 열린우리당이 일관성을 유지할 지도 문제다. 예를 들어 여당은 동행명령권 거부시 제재조치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려 했으나, 너무 가혹하다는 여론을 의식해 행정벌로 대체했다. 이런 식의 후퇴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기 때문에 감시가 필요하다.

이 밖에도 과거청산기구에 시민단체의 참여 문제도 아직 명쾌하게 정리되지는 않은 상태다. 또 의문사진상규명위, 민주화보상심의위 활동을 경험한 인사들은 과거청산기구에 참여하는 시민사회 인사들의 주도권 다툼과 같은 주체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과거청산의 주체로서 시민사회 내부의 성찰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장흥배(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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