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09월 2020-08-28   469

[환경] 세탁기를 바꾸며

세탁기를
바꾸며

 

16년 동안 사용하던 세탁기가 어느 날 작동을 멈췄습니다. 고쳐 쓸 요량이었는데 부품을 구할 길이 없어서 더 이상 작동이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았어요. 겉보기엔 아직도 멀쩡한데 작은 부품 하나가 없어 세탁기를 폐기해야 한다니 아깝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군요. 때는 여름인지라 날마다 빨랫감이 쌓여 한시바삐 세탁기가 필요했습니다. 

 

가전제품 매장을 방문했습니다. 쓰던 세탁기의 용량이 10kg였는데 매장에 들어서자 22kg 세탁기를 보여줍니다. 10kg짜리 세탁기는 매장에 전시도 돼 있지도 않아 카탈로그를 들여다보며 골라야 했습니다. 10kg이 가장 작았지만 가격은 가장 싸질 않았어요. 찾는 이가 많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했고요. 판매 사원은 이왕이면 용량이 큰 것을 사라고 ‘계속’ 권하더군요. 할인도 많이 해주고 큰 걸 사야 이불 빨래도 하고 또 오래 쓰려면 큰 게 좋다고 했어요. 지금껏 이불 빨래도 잘 해왔고 만약 부품을 구할 수 있었다면 20년 넘게 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미치자 결정을 해버렸어요. 

 

제가 도무지 호응을 하지 않자 판매사원은 이번엔 건조기를 권했습니다. 가뜩이나 비도 많이 내리는 여름철에 뽀송하게 말려주는 건조기에 아주 잠깐 유혹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건조시키려 들어가는 열에너지를 감당해야 할 전력소비를 생각하자 유혹은 찰나에 비껴갔습니다.

 

가전제품 바꿀 때마다 커지는 용량과 욕망

세탁기를 고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매장을 들어서던 순간부터 나올 때까지 제가 봤던 물건, 구매를 권유하던 사원의 말들을 기억나는 한껏 복기해보았어요. 정말 많은 물건들,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를 수많은 가전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더군요. 그 많은 물건들은 콘센트에 연결해서 전기가 들어와야 비로소 작동을 하겠지요. 

 

그 전기가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그리고 그 전기 생산으로 우리의 지구는 얼마나 뜨거워지고 있는지 알기란 쉽지 않아요. 전기가 탄소를 배출할 거라는 생각조차 못 하는 이들도 꽤 있을 거예요. 전기 생산하느라 배출되는 탄소가 지구 전체 배출되는 탄소의 4분의 1이나 되는데도 말입니다.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부품 하나하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광물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제품을 보며 광물을 채굴하느라 화학약품으로 환경이 오염되고 망가졌을 어느 지역을 떠올리기도 역시나 쉽지 않습니다. 

 

소비자의 생활패턴과 무관하게 굳이 큰 사이즈로 바꾸라는 게 그들의 영업 전략이겠지요. 그건 지구를 생각하는 것도 소비자인 저를 생각해주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이윤 추구인 거지요. 냉장고든 세탁기든 가전제품을 새로 바꿀 때마다 용량이 커지는 걸 주변에서 더러 봅니다. 냉장고는 크기가 커지니 한껏 사다 쟁여놓고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눈에 띄질 않아 버려지는 식품이 생기지 않던가요? 가전제품 크기는 사용하는 이가 자기 생활 습관에 맞추어 결정해야 하는데도 판매사원의 권유나 광고를 통해 욕망을 부채질하면서 자꾸 커져갑니다. 

 

대부분 가정집에는 이미 냉장고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기업은 냉장고 생산 속도를 줄이거나 고장 난 제품을 수리해서 계속 쓰도록 도울 생각은 없어 보여요. 이게 자본주의인거지요. 그렇게 과잉 생산된 제품을 팔기 위해 기업은 상징적 진부화를 만듭니다. 기능을 추가하고 용량도 키우고 디자인도 더 멋지게 만들면서 말이지요. 용량이 커져서 깊어진 냉장고 안쪽에 뭐가 들어있는지 보기가 쉽지 않아 불편해지니 이 점을 보완한 냉장고를 또 만듭니다. 밤낮으로 TV 속에서 광고가 속삭입니다. 남편들이 시청할 걸 상정하고는 여자의 마음을 그렇게 모르냐고 합니다. 이 냉장고로 바꾸면 상해서 버리는 식품이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거라고도 합니다.

 

월간참여사회 2020년 9월호 (통권 278호)

버려진 가전제품으로 만든 예술 작품. 인간의 모습을 해골로 형상화 했다 ⓒunsplash

 

욕망의 크기가 삶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

세탁기가 집으로 배달되던 날, 어쩐지 전보다 세탁기가 작게만 느껴지는 거예요. 큰 용량을 권하던 판매사원의 말이 생각나고 이미 내 눈은 커다란 세탁기에 눈높이가 맞춰진 것도 같고 말이지요. 문득 이불 빨래를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들더군요. 조금 더 큰 용량으로 살 걸 그랬나 하는 후회의 마음도 아주 잠깐이지만 들었어요. 

 

그러다 ‘행여 이불 빨래가 어렵다면 세탁소에 맡기든 빨래방에 가서 하면 되지!’ 이런 배짱이 내 안에서 슬그머니 고갤 들어요. 우려와 달리 이불 빨래하기에 세탁기 용량은 충분히 넉넉했고요. 설령 어렵대도 일 년에 이불 빨래를 몇 번이나 한다고 그 큰 용량의 세탁기가 필요한가 말이지요. 장마 때 빨래가 마르지 않아 곤혹스럽다면 한두 번 빨래방을 이용해도 좋겠다 싶으니 안심이 되더군요. 강요된 욕망에 휘둘리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요.

 

용량이 큰 가전제품이 늘어날수록 집이 좁게 느껴집니다. 더 큰 집으로 옮겨가는 욕망이 꿈틀댑니다. 우리의 욕망은 무한대로 커갑니다. 그런데 이 욕망을 계속 부풀리는 게 정말 우리가 원하는 걸까요? 혹시 누군가가 설정해 놓은 욕망은 아닐까요? 내가 정말 원하는 삶과 세뇌당한 삶 또는 남에게 비치는 삶 사이에서 우리는 진정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요? 

 


글. 최원형 환경생태작가  

우연히 자작나무 한 그루에 반해 따라 들어간 여름 숲에서 아름답게 노래하는 큰유리새를 만났습니다. 큰유리새의 아름다운 새소리를 다음 세대도 들을 수 있는 온전한 생태 환경을 바랍니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환경과 생태 쫌 아는 10대』 외 다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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