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8월 2004-08-01   831

[칼럼] 여름은 어지럽게 흐른다

어지럽기가 현기증이 날 정도다. 물론 여름의 더위 때문이 아니다. 지칠 줄 모르고 소용돌이치기만 거듭하는 정치를 보고 있자니 그렇다. 가만히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고 시민운동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다. 그 사이 정권도 바귀고 사회도 꽤 변했다. 세상이 완전히 뒤집혔다고 경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 제대로 바뀌려면 한참 멀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변하기는 변했다. 그 방향도 대체로 우리가 바랐던 대로다. 정계의 구조도 개편됐고, 정치인의 신진대사도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분은 좋지 않다. 흔히 하는 말로 행복하지 않다. 정치를 행하는 모습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의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정치하는 행태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실망스럽다. 그래서 배멀미에 시달리듯, 일사광선에 고통받듯, 어지러운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 논쟁의 결말은 어떻게 될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젠 논쟁이라기보다 싸움이요 전쟁에 가깝다. 밀어붙이는 쪽이나 결사항전의 태세로 반대하는 쪽이나 대책이 없어 보인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건 또 어떤가. 대통령 탄핵소추에 관한 태풍이 지난 뒤, 방송위원회 의뢰로 언론학회에서 언론의 탄핵 보도를 분석했다. 그리고 내놓은 평가는 편파적이었다는 결론이었다. 당시 탄핵에 대한 여론이나 언론사의 독자적 판단 능력 등을 감안하면 언론학회의 감정 결과는 이해할 수 없다. 기계적 중립을 기준으로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분석 결과다. 그렇다면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몇몇 언론의 보도 태도는 어떤가. 탄핵 보도가 편파적이었다면 행정수도 이전 반대 보도는 완전히 일방적이다.

이라크 파병은 여전히 뜨거운 문제다. 이 정도까지 질질 끌어오고 있는 것만도 성과라고 자위할 수 있을까. 대통령으로서도 눈 딱 감고 철회해버릴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안타깝다. 겨우 파병을 고집할 수 있는 명분이란 국익뿐이다. 미국만 다녀오면 또 국익을 내세운다. 도대체 국익은 무엇인가. 그리고 국익은 반드시 최우선인가. 이런 국익론을 앞세우는 주장과 태도는 국가주의인가 민주주의인가. 국익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국익은 보편적 인권에 우선하는가. 또는 국익은 세계의 평화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인가. 파병론자건 파병반대론자건 이 물음에 어떤 대답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하급 법원 판결 때문에 떠들썩했고, 대법원 판결로 일단락됐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단순한 병역거부가 아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 이유는 마치 양심적 병역거부란 것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어 실망스럽다. 국가안보가 개인 양심의 자유에 앞선다고 했다. 과연 그렇게 말해버려도 괜찮은 것인가. 이 대법원의 판결로 우리나라가 국가주의 입장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것처럼 비쳐져도 괜찮을까. 파병에 대한 국익우선론과 상통하는 점은 그럴듯하다. 그나마 유일한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은 임명 당시 시민단체에서 부정적 평가를 내렸던 사람이다. 대법관 구성을 바꿔보자는 사법개혁론이 머쓱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폐지안은 또 제출됐다. 국가보안법도 이제 회갑의 나이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 괴물을 이쯤에서 안락사시키자는 게 우리 목표의 하나이긴 한데 환경은 만만치 않다. 송두율 사건을 보는 일부의 시선은 여전히 변함없다. 다행히 집행유예라는 타협적 결론으로 석방은 했지만, 그의 행적을 왜곡해 보는 습관은 여간해서 고쳐질 것 같지 않다. 국가보안법이 선언하고 있는 이적성을 우리 사회 안에서 왜 허용할 수 없는 것일까.

여당은 야당을 누르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고 야당은 여당을 방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같다. 지금 그런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계속 그렇다. 한나라당 대표를 패러디한 사진을 사용한 청와대 홈페이지 관리자의 인식 수준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다른 사람이 올린 사진을 청와대 직원이 편집하여 사용했으면 당연히 청와대 책임이다. 하지만 그 실수 행위를 물고 늘어지는 한나라당도 꼴불견이긴 마찬가지다. 남녀차별개선위원회에 직권조사를 요구하기 전에 자신들의 홈페이지와 당대변인의 발언부터 반성하면 좀 보기 좋을까.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과 관련한 군의 보고가 문제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여당이 보고를 누락한 군 관계자를 질타하자, 야당은 즉시 그런 여당을 힐난하고 나섰다. 북한 경비정의 북방한계선 침입 사실은 묵과하고 보고 누락만 문책하여 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주장이었다. 그런 여야의 공방전을 보면서, 정치인들이 항상 주장하던 국익은 또 어디로 사라져버렸나 의아스러웠다.

한나라당은 나름대로 심기일전의 다짐으로 다시 전당대회를 열었다. 국회의원 자체 축하공연과 함께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했다. 그러나 재신임된 제1야당 대표의 일성이 무엇이었던가. 대통령과 정부가 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개탄했다. 대통령이 축하 화분까지 보냈는데, 덕담과 진지한 제안은 커녕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 극단의 두 사람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지난 한 달 사이에 벌어진 이런저런 일들을 나열해 보니 이렇다. 그래서 머리가 어지러운 것이다. 그런 가운데 느낌을 정리하면 이렇다. 우리 정치인들은 모두 개인적 가치에 앞서 국익을 우선으로 친다. 그리고 국익보다는 당리당략을 더 앞세운다. 그래서 여당과 야당은 여전히 대치 상태로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이다. 그들은 협력을 잘 알지 못한다. 한쪽은 정권을 빼앗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다른쪽은 정권을 탈취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권의 유지냐 재탈환이냐만 최고 관심사인 것이다.

이런 마당에 온갖 소리를 떠들어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군다나 펜으로 갈기는 칼럼이란 도대체 어떤 도움이 될까. 정말 무망한 노릇이다. 떠도는 말과 글은, 현대판 중우정치의 조짐을 보이는 지금 우리 사회에 해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두렵다. 그래서 조용히 지켜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가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을 궁리해내자고 권유하고 싶다.

차병직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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