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0월 2002-10-24   858

노동권 침해하는 경제특구법 발표에 노동계 분개

재정경제부는 8월 20일 ‘경제특별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경제특구법)을 입법 예고했다. 입법 예고 기간을 거친 이 법안은 정부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계는 이 법이 입법 예고되자 즉시 반대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투자협정 WTO반대 국민행동,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공동대책위에서도 성명과 공식 의견서를 통해 경제특구법안의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성명서에서 현정부가 60∼70년대 박정희식 개발독재 방식의 외자유치론을 근거로 초헌법적 경제특구법을 입법 예고한 것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면서 만약 현정부가 이 법을 끝까지 고집할 경우 모든 역량을 동원해 저지에 나설 것을 밝혔다.

반면 전경련은 9월 4일 경제특구법에 대한 성명에서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을 이유로 경제특구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전경련은 경제특구가 자본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자본특구’이고, 노동3권이 전무한 ‘노예특구’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특구법, 노동자의 기본권 박탈

앞서 밝혔듯이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법에 대해 분명한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강력한 대응을 하고 있다. 이처럼 노동계가 이 법안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이 법안은 경제특구에 위치한 사업장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노동기본권을 박탈하고 있다. 경제특구법이 근로기준법 57조(월차휴가)와 71조(생리휴가), 파견근로자법 5조(파견대상)와 6조(파견기간)의 적용을 제외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급 월차휴가와 생리휴가가 폐지되면 임금저하와 노동강도 강화가 불을 보듯 뻔하다. 또한 파견대상 업무를 제한하는 파견법 5조와 그 기간을 최장 2년으로 규정한 6조를 무력화함에 따라 모든 직종에 비정규노동자를 무기한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월차·생리휴가 및 근로자 파견법상의 파견근로 기간제한, 파견근로 업종제한 폐지는 노동자의 격렬한 저항을 야기할 것이다.

우리나라 연차휴가는 국제기준으로 3주 이상에 훨씬 못 미치며 월차휴가까지 합쳐야 겨우 국제기준을 넘는 현실이다. 또 생리휴가는 턱없이 부족한 모성보호 조항을 그나마 채워주고 있다. 따라서 경제특구 외국기업에게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월차·생리휴가제도를 면제해 주겠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더구나 최근 주5일 근무제 도입 논의과정에서 재계가 월차, 생리휴가 제도를 국제기준 운운하며 없애려 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계를 대변하는 재경부의 이 같은 태도는 그 의도가 불순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현재 파견근로는 인신매매와 중간착취 위험성 때문에 제조업 생산공정 업무에는 엄격히 제한하고 있고 파견기간도 2년으로 못박고 있다. 이 조차도 잘 지켜지지 않아 근로자파견법 자체를 없애야 하는 현실에서 경제특구 외국기업에 대해서는 이 조항마저 휴지조각으로 만들겠다는 것은 외자유치를 위해 가장 밑바닥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를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것이며, 외국기업을 시작으로 국내 전 산업에 노동시장 유연화를 확대하려는 발상이다.

이 같은 재경부의 의도가 관철될 경우, 파견노동자의 특성상 노조설립 자체가 사실상 봉쇄되는 것은 물론, 노조가 설립되더라도 사용업주와 파견업주가 서로 교섭을 회피하는 등 정당한 노조활동이 제약될 것이다.

또 사용업주가 파견업체를 선정할 때에도 ‘노조설립 유무’를 따질 업체를 선정하는 등 노조활동이 무력화될 것이다. 그리고 노조 무력화에 따른 임금수준 저하와 노동조건 악화도 예상된다.

외국기업에 대한 무한특례 제공

또한 경제특구법은 외국기업에 대한 무한특례를 제공하고 있다. 우선 법안 각 항목 속의 특례 항목을 살펴보자.

①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하여 세제 또는 자금을 지원하거나 임대용지를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경제특별구역의 활성화를 위하여 도로, 용수 등 기반시설에 대하여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한다.(8조, 10조)

② 경제특별구역에 입주한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해서는 ‘공업배치및공장설립에관한법률’상의 기준공장면적률의 적용,’중소기업의사업영역보호및기업간협력증진에관한법률’ 상의 고유 업종분야에 대한 대기업자 등의 참여제한, 지정계열화 업종,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상의 출자총액의 제한 등을 적용하지 않는다.(9조)

③ 경제특별구역에서는 외국교육기관이나 내국인에 의한 외국 교육기관 분교·분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내국인이 경제 특별구역에 있는 외국 교육기관에 입학하고자 하는 경우 이를 제한할 수 없도록 한다.(13조)

④ 외국인은 경제특별구역위원회의 허가를 얻거나 등록하는 경우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이나 약국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하고, 외국 의사 또는 약사 면허자는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한 기준에 위배되지 않는 경우 경제특별구역에 개설된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 또는 약국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한다.(14조)

경제특별구역 개발사업 시행자는 실시계획을 수립해 경제특별구역위원회의 승인을 얻도록 하되, 동 승인을 얻은 경우에는 농지전용허가, 공장설립 승인 등의 인·허가를 얻은 것으로 의제한다.(17조)

이상에서 ①항과 ②항은 외국자본에 대한 조세권을 포기하는 것으로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 논란과 평등권을 반하는 위헌 요소로 지목되고 있다. ③항과 ④항은 현재 WTO협상인 도하개발 의제인 서비스 분야에서 교육분야, 의료·서비스분야에 대한 협상이 이뤄지기 전에 우선 개방하는 것이고 항은 토지의 난개발로 인한 환경파괴를 막아내면서 국토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더욱 강화돼야 할 법률을 더욱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경제특구법안은 노동계뿐 아니라 환경단체, 의료계, 교육계, 법조계 등으로부터 반대에 직면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의 일환, 입법 저지 총력

이 법안은 정부의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방안’에 대한 지원 법률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방안’내용을 검토해 보면 ‘물류 중심국가 실현’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을 추진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문건에는 “WTO협상과 도하개발 의제를 조속히 합의할 것, 노동시장을 유연화 할 것, 외환 거래를 자유화 할 것, 한·미,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체결과 한·일 투자협정의 조속한 비준”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이 법안은 재경부 간부의 법안설명 과정에서 ‘경제특구법을 징검다리로 우리나라 전역으로 확대한다’는 입장을 실토하고 있다. 결국 현정부는 경제특구법 제정으로 노동법을 개악할 조짐을 보인다고 예상할 수 있다.

민주노총은 경제특구법이 노동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뿐 아니라 교육, 환경, 법조계, 의료분야 등 반대의견이 있다는 점을 중시해 이들과 연대해 경제특구법안 저지투쟁에 집중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경제특구법안 저지를 민주노총 하반기 제도개선 투쟁의 일환으로 배치하고 주5일 근무제 법안과 함께 노동법 개악저지 투쟁을 전개해나갈 방침이다.

또한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투자협정 WTO반대 국민행동,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공동대책위 등 시민사회단체들 역시 경제특구법의 제정을 저지하기 위한 범국민적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박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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