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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04월
  • 202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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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_재난이 머무른 자리에서

재난 자본주의와
재난 유토피아

글.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4.16연대 사무처장직무대행

 

 

‘안산 참사’, ‘대구 폐렴’, ‘중국 코로나’의 공통점 

2월 이후 대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이 크게 확산되는 와중에서 보수정당 출신인 권영진 대구시장은 “우한 폐렴이 없듯 대구 폐렴도 없다. 코로나 폐렴만 있을 뿐”이라며 “대구를 조롱하는 일을 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이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 폐렴’이란 말을 쓰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의 호소 이후 ‘대구 폐렴’이라는 표현이나 대구를 다녀온 사람에 대한 무신경한 발언들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 호소에 대구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미래통합당, 자유공화당 측 정치인들이 크게 호응한 것은 당연한 이치라 하겠는데, 황교안 대표를 포함한 일부 의원들은 굳이 ‘대구 폐렴’이 아니고 ‘우한 폐렴’, ‘중국 코로나’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중 일부는 아예 ‘문재인 폐렴’이라고 부르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코로나19에 대한 피해지역 명칭을 붙이듯이 세월호 참사를 ‘안산 참사’라고 부른다고 하면 그 부당함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피해당사자가 되어보지 않고는 그 문제를 쉽게 알기 어렵다. 그래서 정치인이나 언론이 이름을 어떻게 붙이냐에 따라 무신경하게 유포되기 십상이다. ‘태안기름유출사고’로 명명되고 불리었던 참사는 기실 ‘삼성기름유출사고’라고 명명되거나 불려야 마땅한 참사였다. 그래서 누가 어떻게 그 이름을 불렀느냐 거기에 누가 관여했느냐 혹은 관여할 수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참사나 재난을 다룰 때 피해자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피해자를 참여시키는 것이 강조되는 이유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명칭을 가지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Corona Virus Desease 19에 관해 고집스럽게 우한 또는 중국이라는 지명을 연결시키는 부류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황교안 대표, 조선일보, 미국 트럼프 대통령 같은 이들이다. 우파 정치인 혹은 정파적인 극우파 언론들이다. 그들은 예외 없이 외부로부터의 위협, 혹은 미덥지 않은 내부의 적으로부터의 위협을 강조하곤 한다.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은 공권력은 공동체 구성원의 권리나 안전을 지키는 능력보다 그들을 공격하고 통제하는 능력이 훨씬 출중하고, 그런 일에 큰 관심을 보인다는 거다. 침몰하는 세월호로부터 국민들을 구하는 것보다는 피해자 가족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나아가 불순분자로 몰아 고립시키는 일에 더 유능했던 공안검사 출신의 황교안 대표가 ‘우한 폐렴’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려면 중국으로부터의 방문객을 모두 차단해야 한다고 목청을 돋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외부로부터의 방문을 차단하는 것 외에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미국 내에서 대유행이 일어나자 중국발 바이러스라고 목청을 돋운다. 

 

중국 정부가 리 웬리앙의 경고를 묵살한 이유 

이런 접근법이나 시각을 잘 보여주는 것이 소위 ‘테러와의 전쟁’이다. 테러와의 전쟁은 전염병에 대한 ‘전쟁’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적인 예외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자 누구도 언제쯤 끝날 것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없고 승리의 기준도 불분명한 전쟁이다. 이 전쟁은 공포의 이데올로기에 기반하고 있다. 대테러법을 포함한 ‘대테러조치’는 대외적으로는 특정국가를 불량국가로 구분하여 적대와 전쟁을 정당화하고 국내적으로는 불량한 반대파들을 지목하여 처벌함으로써 전쟁을 내부화, 즉 내전화한다. 게다가 전쟁의 대상, 즉 적이 되는 측에게는 잔혹한 폭력도 용인된다. 적으로 간주되는 측을 이 예외상태 속에서 근절시키고 절멸시켜야 할 ‘벌거벗은 생명’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조장되고 선동된다.

 

세월호 가족들도 권력과 극우집단으로부터 ‘테러리스트’ 취급을 당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정작 세월호 참사 당시 자신은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역할을 부인했다. 국가안보는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일과는 다르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언론 통제를 위한 컨트롤타워는 촘촘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정부는 피해자 가족들을 사찰했고, 극우보수언론은 세월호 피해자들의 진상규명 운동을 마치 더 많은 특혜적 보상을 받기 위한 집단행동인 것처럼 묘사했고, 당국의 사주 혹은 비호 아래 조직적으로 동원된 극우보수단체들은 ‘빨갱이’의 사주를 받은 ‘시체장사’로 둔갑시켰다. 남의 나라 일도, 먼 옛일도 아니다. 극우세력들이 광화문 세월호 기억관에 들이닥쳐 ‘시체팔이 중단하라’고 폭언하면서 자원봉사자들을 폭행하고 기성정당이 이 일을 두둔하는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우한에서도 같은 일이 발생했다. 우한 중앙병원에서 근무하던 의사 리 웬리앙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보이는 증상을 발견하고 동료 의사들이 있는 그룹 채팅창에 감염을 막기 위해 보호복을 입으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지난해 12월 30일의 일이었다. 그러나 나흘 후 리는 공안에 소환돼 “거짓 정보”를 확산시켜 “사회 질서를 심각하게 교란한 것”을 인정한다는 진술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당했다. 그의 제보는 묻혔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퍼져나갔다. 리 웬리앙은 환자치료 중 2월 7일,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재난 자본주의와 엘리트 패닉 

권력자들의 이런 대응 패턴은 엘리트 특유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폭로할 뿐 아니라 그들의 문제해결 능력의 부재, 그로 인한 엘리트 자신의 패닉을 드러낸다. 문제는, ‘엘리트 패닉’이 참사의 구조 구난이나 전염병 확산 방지 같은 대응에 실패하고 해당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에 머물지 않고 세상에 더 나쁜 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권력을 비롯한 사회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조장함으로써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상황을 만성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회적 자연적 대재난 이후에 도리어 지배체제가 재생산되는 현상을 ‘재난자본주의Shock Doctrine’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개념은 캐나다 저널리스트인 나오미 클라인이 동명의 저서 『쇼크독트린(The Shock Doctrine: The Rise of Disaster Capitalism)』에서 사용한 개념이다. 나오미 클라인에 따르면, 쇼크독트린은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시민들의 공포를 이용해 지배세력을 위한 체제를 강화시키는 ‘재난자본주의’의 수법이다. 엘리트 패닉은 이 저주받은 사회를 지탱해왔고 지탱하는 시스템의 일부란 얘기다. 엘리트 패닉이 결국 사회 전체의 패닉을 부추기고 그 결과는 위기를 심화시켰던 지배권력 혹은 지배메커니즘의 재공고화로 귀결되는데, 그 중심요소가 절망 혹은 ‘신뢰적자’라고도 부르는 연대효과에 대한 불신이라는 탁월한 분석이다. 

 

재난 유토피아와 성숙한 시민의식 

한편 리베카 솔닛은 그의 저서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이렇게 분석한다. “재난을 연구하다 보면 인간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는 여러 가지 본성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해지는데, 특히 두드러지는 본성은 회복력과 임기응변 능력, 관대함, 동정심, 용기 같은 것들”이라는 것이다. 

 

80년 광주 같은 상황에서 무정부 상태로 인한 혼란이 아니라 서로 돌보는 이상적인 민중공동체가 생겨났던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자연재해, 인재 할 것 없이 비상한 상황에 처해서 기존 질서나 권력에 공백이 발생했을 때 일어나는 전형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재난으로 무너진 질서를 그 공동체의 본래 주인공들이 바로잡는 작은 혁명, ‘재난유토피아’의 경험을 모든 참사나 재난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광주의 시민단체와 자치정부가 앞장서서 대구 시민들과 의료진을 위해 구호물품을 보내고 광주의 병원을 대구 확진자 치료를 위해 제공하겠다고 나선 것은 단순한 ‘정치쇼’가 아니라 그 바닥에 80년 광주의 기억, 그 기억을 정체성으로 하는 광주의 시민 의식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광주시민들뿐 아니라 세월호 피해자들과 이들과 연대해온 4.16연대 회원들 역시 긴급모금을 통해 대구의 시민들, 특히 장애인과 이주노동자 등 취약계층과 의료봉사자들을 지원했다. 이 역시 ‘기억하고 행동하겠다’고 다짐했던 연대의 기억이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가 범유행 수준에 이르고 각국 정부가 허둥대는 가운데, 한국 정부의 사례가 성공한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고 한다. 국경이나 도시를 봉쇄하지 않고도 방역에 비교적 효과를 보고 있는 사례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이런 방식을 취한 것은 수출의존 경제라는 경제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방법이 옳았는지는 더 두고 봐야 할 일이긴 하다. ‘신천지’와 ‘확진자’들에게 온당한 조치가 취해졌는지는 논란의 여지도 적지 않다. 정치인들의 호들갑은 여전했고 많은 문제를 낳았다. 

 

하지만, 시민들의 대응은 전반적으로 성숙했다. 메르스를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나라도 사스나 메르스를 겪었으므로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세월호의 기억, 그 연대의 기억,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만들기라는 피해자의 요구를 앞에 두고 6년간 싸워온 결과가 다름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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