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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04월
  • 202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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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 2020년 4월호 (통권274호)

 

오늘날 재난은 전에 없던 형태로 출현하여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하며, 국경을 초월하여 발생하고, 국가와 사회 시스템을 뒤흔드는 동시에 한 사회의 약한 고리를 드러낸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 인류는, 국가는, 개인과 공동체는 무엇을 해야 하고 또 무엇을 할 것인가. 이번 코로나19 국면에서 두드러진 인종차별과 혐오 문제, 확진자별 동선공개와 개인정보 문제, 재난회복과 사회공공서비스 등 ‘재난이 머무른 자리’를 사유해본다.  

 

 

 

특집_재난이 머무른 자리에서 

국경이 재난을 
막을 수 있을까?

글. 최종렬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바이러스보다 먼저 퍼진 인종차별과 혐오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빠른 속도로 번져가고 있다. 발발 초기만 하더라도 대부분 중국 우한에서 국지적으로 유행하는 역병 정도로 취급했다. 박쥐마저 잡아먹는 야만적이고 비위생적인 식습관을 지닌 중국 우한 지역민의 낙후성과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중국 정부의 관료제적 무기력과 무능력을 조롱하고 질타했다. ‘낙후된 야만적인’ 중국으로부터 ‘선진 문명화된’ 자국을 상징적으로 분리하는 데 급급했다. 

 

우한 폐렴으로 지역화된 코로나19가 한국과 일본으로 번져가자 졸지에 두 나라는 물론 아시아 전체가 우한과 같이 낙후되고 야만적인 지역으로 오염되었다.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 차별과 혐오 언어가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유럽과 미국으로 입국하는 아시아인에 대한 입국 검사가 강화되었다. 국경을 잘 관리해서 아시아인만 격리하면 코로나19는 선진 문명화된 서구 사회로 침투하지 못할 것 같았다.

 

코로나19가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프랑스와 독일을 넘어 유럽 전체로 확산되자 아시아 지역으로 고착시키려던 시도가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급기야 코로나19가 미국으로까지 확산되고 사망자가 속출하자 지역화 전략이 별 쓸모없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아시아인만 콕 집어 출입국을 막던 국경 통제가 국적 불문 모든 사람을 막는 국경 봉쇄로 이어졌다. 이에 맞서 아시아 각국도 유럽이나 미국에서 자국으로 들어오는 서구인에 대한 입국 검사를 강화하거나 아예 입국을 가로막았다. 각국 정부는 국경을 봉쇄하여 월경을 통제했을 뿐만 아니라 자국 영토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의 이동도 제한하고 자가 격리를 강제했다. 이제 모든 관심은 각국 정부가 자신의 영토 안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행정력을 총동원해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고 종식시킬 것인가로 모아지고 있다. 국가의 행정 역량에 따라 코로나19의 종식 양상이 다르게 나타날 것이라며 자국 정부에 전권을 부여하는 형세다.

 

참여사회 2020년 4월호 (통권274호)

탈영토화 시대에는 사람, 상품, 자본, 노동, 지식, 이미지, 범죄, 공해, 문화, 신념, 섹슈얼리티, 재난 등이 특정 국민국가의 영토 안에 한정되지 않은 다차원적 네트워크 안에서 활발하게 오고간다

 

세계는 지금 ‘탈영토화’ 시대 

그렇다면 코로나19를 각국 정부의 개별적 행정 역량에 맡겨놓으면 해결될 수 있을까? 다시 이전처럼 국경을 넘나들며 글로벌하게 살아가는 일상의 삶이 회복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 전에 우리는 왜 이렇게 국가가 그 영토 안에서 절대적인 힘을 휘둘러도 된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 것인가 성찰할 필요가 있다. 

 

현재 세계는 200개 이상의 국민국가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가 있지만 코로나19와 같은 지구적 재앙을 진단, 예방, 처방, 치유하는 데에는 역부족이다. 대신 개별국가가 자국의 영토 안에서 일어나는 코로나19를 개별적으로 대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정 영토에서는 한 국가가 절대주권을 휘두른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이러한 생각은 유럽에서 30년 전쟁을 끝낸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면서 시작되었다. 19세기에 들어 온갖 민족이 국민국가를 구성하려고 노력하면서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이는 국가가 자신의 절대주권을 휘두를 수 있는 영토를 확보하는 ‘영토화 과정’인 바, 핵심은 영토와 국가와 국민을 일대일로 상응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세차게 몰아친 세계화 바람은 이러한 흐름에 반격을 가하는 ‘탈영토화 과정’을 전면화했다. 탈영토화란 상호연계와 상호의존의 네트워크가 급속히 발전하고 그 네트워크 안에서 개인적 차원, 지역적 차원, 일국적 차원, 국제적 차원, 역내적 차원, 지구적 차원 사이에 상호작용이 높은 밀도로 일어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사람, 상품, 자본, 노동, 지식, 이미지, 범죄, 공해, 문화, 신념, 섹슈얼리티, 재난 등이 특정 국민국가의 영토 안에 한정되지 않은 다차원적 네트워크 안에서 활발하게 오고간다. 이러한 다차원적 이동이 강도 높은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이동이 어떤 효과를 낳을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원인과 결과라는 기존의 선형적 모델로는 예측, 설명, 통제하기 어려운 이유다. 

 

더 나아가 어떤 한 사건이 특정 국민국가 안에만 한정되어 체험되지 않는다. 가까움과 멂, 친숙함과 낯섦, 지역적인 것과 지구적인 것,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안과 밖의 굳건한 이분법이 내파된다. 가까운데 낯설고, 멀리 있는데 친숙하고, 지역적인 문제인데 공적 이슈가 되고, 사적인 것인데 집 밖에서 체험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낯선 사건에 의해 누구나 영향 받을 수 있다. 때문에 물리적으로는 동일한 공간에 있을지라도 체험 양식은 그 공간에서 분리된다.

 

이전에는 한 사건의 당사자는 그것이 발생한 나라의 국민이었다. 코로나19가 보여주듯 이제는 누가 당사자인지 정하기 어렵다. 개인적 차원, 지역적 차원, 일국적 차원, 국제적 차원, 역내적 차원, 지구적 차원에서 협치 체제를 만들어내야 할 이유다. 

 

국민국가 프레임 벗어나 지구적 차원 협치가 필요한 이유

한동안 유럽이 통합되는 과정을 보면서 이러한 협치 체제가 잘 만들어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미국이 세계적 리더십을 버리고 아메리카 우선주의로 돌아서고, 유럽에서도 영국이 유럽에서 빠져나가면서 유럽연합의 내부 결속이 약해지고, 아시아에서는 역내 협력체계를 만드는 대신 민족주의를 강화하면서 탈영토화의 부정적 효과에 대처할 수 있는 길에서 갈수록 멀어져 갔다. 오히려 이를 일국적 차원에서 해결하도록 하는 재영토화 과정으로 후퇴했다. 각국이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면서 국가가 자국의 영토 안에서 절대주권을 휘두르는 상황이 더욱 강화되었다. 당사자가 누구인지 가늠할 수 없는 탈영토화 체험이 국경을 넘나들며 발생하고 있는데도 이를 일국적 차원으로 축소했다.  

 

코로나19는 이렇듯 다차원적 협치 체제가 부재한 상황에서 발생한 탈영토화 과정이 어떤 파국을 낳는지 잘 보여주는 최근의 한 예시다. 탈영토화 과정이 일상이 된 삶에서 코로나19 같은 신종 바이러스의 발원지를 한 곳으로 특정하고 이 지역을 완전 봉쇄해서 지구적 확산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일국적 차원에서 국경을 봉쇄하고 자국 영토 내에서 이동을 통제하게 되면 감염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복합적으로 연계된 네트워크 안에서 다차원적인 상호작용이 멈추면 코로나19 사태가 보여주듯 당장 일상의 사회적 삶 자체가 위기에 처한다.

 

코로나19의 확산은 언젠가는 멈추게 될 것이다. 바이러스도 활동주기가 있으니 가라앉을 때가 올 것이며, 그러는 사이 의료계의 대응이 결실을 맺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코로나19 이후의 사회적 삶이 전과 똑같을 수는 없다. 탈영토화 과정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구라는 혹성에서는 언제든지 다시 새로운 재난이 몰아닥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특정 지역과 주민을 상징적으로 오염시키고 혐오와 배제의 언어를 쏟아낼 수는 없다. 사망자가 속출하는데도 개별 국가의 절대주권에만 떠넘기고 나 몰라라 딴청을 피울 수는 없다. 

 

무엇보다 국민국가 프레임에 갇혀있는 상상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탈영토화 과정에 처해 있는 우리 모두 지구인이자 특정 국가의 국민이며 특정 지역 주민이자 특정한 개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 당사자다. 함께 연대해서 다차원적 협치의 길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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