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04월 2020-04-02   1051

[여는글] 혼자서 행복하다면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여는글

혼자서 행복하다면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생로병사는 인간이 겪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 고통이라고 했던가요? 실감하고 절감합니다. 생과 사는 인간 내면의 철학적인 문제이지만, 늙음과 질병은 현실의 당면 과제입니다. 

 

코로나19로 모든 모임이 끊기면서 시간이 넘치니 책을 읽고 틈틈이 농사일을 돕고, 지리산 둘레길을 걷습니다. 둘레길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전염병의 재난은 국경과 지역의 경계도 없음을 알겠습니다. 피해갈 수 없는 재난, 혼자만의 일이 아닌 재난, 함께 극복해야 하는 재난, 이렇듯 우리의 삶은 그물코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소설책을 꺼내 읽습니다. 십 대 시절에 읽었던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읽었습니다. 의도하고 읽은 바는 아닌데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19 상황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물론 카뮈의 『페스트』는 질병만 말하지 않고 늘 우리 사회에 잠복해 있는 ‘부조리’를 말하지만, 그 시사점은 다르지 않습니다.

 

소설은 1940년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지역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쥐가 의사 리유에 의해 발견되면서 시작합니다. 페스트Pest❶가 발병한 것입니다. 리유는 즉시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이를 퇴치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없다고 당국에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합니다. 즉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처음에 반대하던 공무원들은 페스트가 만연하자 그제야 허둥지둥하며 봉쇄 조치를 단행합니다. 오늘날 중국이나 미국을 보면서 기시감이 드는 대목입니다. 

 

페스트가 창궐한 오랑은 이내 혼란에 빠집니다. 그런 혼란 속에서 리유와 함께 활동하는 다른 인물은 파늘루 신부입니다. 그는 페스트 창궐 초기에 이렇게 말합니다. “페스트는 신의 재앙이지만, 신이 원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악과 타협하였기 때문에 회개를 촉구하기 위함이다.” 그러자 의사 리유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페스트가 신이 원하지 않는 불행이었다면, 이 어린아이는 무슨 죄가 있어서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이후 신부는 생각을 바꾸고 전염병 치유에 헌신합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랑베르가 있습니다. 그는 오랑과 관계없는 이방인입니다. 프랑스에 연인을 두고 오랑으로 취재 온 그는 페스트가 퍼지자 온갖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합니다. 그런 그를 주변 사람들은 원망하지 않고 존중합니다. 하지만 의사 리유의 헌신적인 모습에 감동한 랑베르는 오랑을 떠나지 않고 전염병 치유와 확산 방지에 전념하게 됩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 민주적이고 헌신적으로 코로나19에 맞서는 관료와 시민들을 보는 듯합니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앞에서 우리는 새삼 ‘민주’와 ‘시민’이라는 의미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읽고 이런 생각에 머무릅니다. 

 

모든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 

혼자만 살고자 하면 혼자도 살 수 없다,

재난은 우리 곁에 늘 숨어 있다,

인간이 마음을 모으면 희망의 빛을 부를 수 있다.

 

“의사 선생님.” 

랑베르가 말을 꺼냈다. 

“저는 떠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남아있고 싶어요.”

타루는 잠자코 운전을 하고 있었다. 

리유는 피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녀는요?” 

리유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랑베르는 곰곰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는데,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옳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만일 이곳을 떠난다면 부끄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떠난다면 자신이 남겨두고 온 그 여자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마음이 편치 않으리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리유는 

몸을 바로 세우면서 단호한 어조로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며 행복을 택하는 것에 부끄러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랑베르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혼자서 행복하다면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 알베르 카뮈 『페스트』 가운데 발췌 

 

❶  페스트 균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열성 전염병. ‘흑사병’이라고도 부른다


글. 법인 스님 월간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전 참여연대 공동대표 

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을 지냈으며,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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