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8년 11월 2018-11-01   1168

[경제]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일까?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일까?

 

영화 <부당거래>에서 나오는 명대사가 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고 말하던 극 중 류승범의 연기는 잊히지 않는 명장면이다. 맞는 말이다. 처음엔 호의로 시작됐던 일이 어느덧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권리로 착각하는 때가 있다.

 

얼마 전 기획재정부는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 면세점 도입계획을 발표했다. 지금은 출국장에만 면세점이 있다. 그래서 출국장에서 면세품을 구입하면 여행 내내 짊어지고 다녀야 한다. 하지만 입국장에 면세점이 있으면 여행에서 돌아와 면세품을 구입한 후 집에서 바로 쓸 수 있다. 면세품을 구입하기 편해진다. 그래서 기재부는 여론조사 결과 80% 이상의 국민이 입국장 면세점 도입을 찬성한다고 홍보한다. 물론 여론조사 의뢰기관은 기재부였다.

 

80% 찬성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나 같아도 집에 돌아와서 쓸 면세품이라면 출국장에서 사느니 입국장에서 사는 게 편하다. 그런데 영화 <올드보이>에서 또 다른 명대사가 떠오른다. “(감옥에) 가둔 이유를 묻지 말고 풀어준 이유”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거다. 마찬가지로 “출국장은 되고 왜 입국장은 안 되나?”라고 질문하기보다는 “그동안 왜 출국장에서는 세금을 면제해줬을까?”를 먼저 물어봐야 한다. 

 

해외 여행객을 위한 세금 혜택이 아닌 수출품에 적용되는 비과세

출국장에 면세점을 둔 이유는 해외 여행객에게 세금 혜택을 주고 싶어서가 아니다. 즉, 해외 여행객이 집에 돌아와서 쓸 물건에 세금을 깎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는 수출품에 면세되는 부가가치세(=소비세)의 원리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부가가치세는 최종소비자에게만 세금을 부과한다. 중간거래 단계에서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만약 중간단계에도 세금을 부과하면 세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생산자가 도매상에 넘길 때 10%를 부과하고 도매상이 중간 도매상, 그리고 소매상에 넘길 때 각각 10%를 추가로 부과하면 세금은 100%가 넘을 수도 있다. 그 복잡하다는 유통단계마다 각각 세금이 부과되면 그렇게 된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 부가가치세 체계는 최종 소비자만 소비세를 내게 되어 있다. 최종소비자가 그 많은 유통단계에서 발생한 부가가치의 10%를 부담하는 구조다. 

 

그런데 최종소비자가 국내에 있지 않고 해외에 있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해외에 있는 소비자에게 물건을 파는 행위를 수출이라고 부른다. 해외에 있는 최종소비자에게도 10%의 세율을 받고 싶지만 우리나라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한다. 해외에 있는 소비자는 각자의 나라에서 정한 소비세율을 내게 된다. 참고로 말하면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같은 북유럽 국가의 부가가치세율은 20%가 넘고 이태리, 프랑스, 독일 같은 서유럽국가는 15%가 넘는다. 그래서 해외 수출품엔 우리나라 부가가치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수출품에 부가가치세가 부과되지 않는 이유 또한 수출업자에 혜택을 주기 위한 게 아니다. 해당 나라의 부가가치세율을 적용받은 해외소비자에게 이중과세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입국장 면세점 설치는 아무런 이론적, 논리적 근거 없어

우리나라에서 출국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사는 물건은 ‘수출’이다. 수출품처럼 동일하게 면세해야 한다. 내국인이 해외여행 갈 때 출국장 면세점에서 구입해서 외국에서 쓰는 물건도 수출품이다. 그러나 다시 우리나라에 가지고 들어오는 물건은 수출품이 아니다. 그래서 국내 재반입 물품은 과세해야 한다. 그런데 외국에서 먹으려고 산 면세품을 절반만 먹고 가지고 오면 절반만 과세해야 할까? 그러기 위해 모든 해외여행객의 짐을 행정력을 낭비하며 전수조사해야 할까? 국내 재반입 면세품에 과세하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지만 600달러(약 68만 원) 이하의 물건은 봐주기로 정하고 있다. ‘호의’를 베푼 것이다. 그래서 출국장 면세점에서 구입할 때는 면세 제한이 없다. 해외에 있는 친척들에게 전부 나눠주고 오면 된다. 다만 재입국 시 600달러를 초과하는 물건을 소지하면 세금을 내야 한다. 

 

특히, 부가가치세는 모든 물건에 10%가 부과되는 세금이다. 일반적으로 10%를 부과한다는 의미에서 ‘일반소비세’라고 한다. 그런데 일부 사치품 등에는 일반소비세율이 아니라 개별적 세율인 ‘개별소비세’를 적용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이를 특별소비세(특소세)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지금은 개별소비세(개소세)가 되었다. 이러한 높은 세율이 부과되는 사치품은 면세 효과가 더욱 커진다. 결국 해외 여행객에게 면세 혜택을 주는 것은 ‘호의’다. 수출품에는 부가세가 부과가 안 되는 대신, 수입품에는 부가세가 부과된다. 

 

요즘엔 직구(해외 직접 구매)가 인기다. 직구 수입 면세 한도는 150달러(약 17만 원)다. 반면, 해외여행객 면세 한도가 600달러인 것은 ‘호의’가 아니고는 해석하기 어렵다. 해외에서 쓰라고 면세한 물품을 해외에서 쓰지 않고 들고 다니기 힘들다고 한다. 원칙적으로는 들고 다니면 안 되는데도 말이다. 들고 다니다 가져온 물건엔 과세해야 한다. 그런데 들고 다니기 힘드니 입국장 면세점을 설치해 달라? 입국하는 해외 여행객에 면세품 혜택을 주는 거나 남대문 시장을 이용하는 관광객에게 면세품 혜택을 주는 거나 이론적으론 차이가 없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호의를 권리로 알고 더 큰 호의를 주는 사람은 무엇이 될까? ‘호구’가 되는 것 아닐까? 

 

월간참여사회 2018년 11월호

 


글.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원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활동가 출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회의원 정책보좌관 활동. 현재는 나라살림연구소에 기거 중. 조세제도, 예산체계, 그리고 재벌 기업지배구조에 관심이 많음.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 『최순실과 예산 도둑들』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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