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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간호 05월
  • 1995.05.01
  • 743
매일경제신문사/다케무라 겐이치 지음/정경애 옮김
아마도 이제 멀티미디어란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분히 텔레비전을 요란하게 장식하는 멀티미디어형 컴퓨터 CF때문이기는 하지만 멀티미디어 시대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멀티미디어는 최첨단 PC나 뉴 미디어, 하이퍼 미디어 등을 총괄하는 첨단정보산업분야의 테크놀로지로 이해되고 있을 뿐이고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

하지만 멀티미디어 시대란 단지 새로운 테크놀로지 시대라는 의미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이미 토플러는 미래는 지식과 정보로 이루어진 사이버 스페이스가 지배하는 세계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고 빌 게이츠 역시 이에 기초한 새로운 우주구상을 발표한 바 있다. 가상체험과 사이버 섹스, 멀티족이나 채팅족, 위성방송과 인터네트 등 우리 사회에서 관찰되고 있는 새로운 현상들도 멀티미디어가 인간 고유의 정서와 감정, 더 나아가 인식론과 가치관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멀티미디어 시대란 멀티미디어가 우리의 삶의 양식과 문화, 인식방법,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구조 및 사회관계, 나아가서는 경제질서와 세계경제의 구조를 결정지을 수 있는 시대를 지칭하는 것이다.

최근 멀티미디어에 대해 출간되는 책들은 컴퓨터 관련 서적이거나 멀티미디어 산업에 국한되어 있어 일반인들의 이해가 어렵고 멀티미디어 시대의 전반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이런 점에서 다케무라 겐이치의 『멀티미디어를 모르면 내일은 없다』는 주목할만한 책이다.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저자는 멀티미디어 기술에 관한 전문가는 아니다. 그는 기술분야를 자세히 다루기보다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멀티미디어 혁명의 내용과 이것이 가져오고 있는 사회구조와 삶의 양식, 경제구조 및 기업의 변화를 그리고 있다.

그는 멀티미디어 사회의 삶의 양식과 관련하여 현실적으로 양극화되는 두 유형의 매니아가 급증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 한 유형은 관계 차단형이다. 음악, 미술, 영화, 게임등 문화생활의 대부분을 집안의 컴퓨터로, 쇼핑도 PC통신의 홈뱅킹으로, 업무도 컴퓨터를 이용한 재택근무로 일관하여 이들은 한없이 혼자만의 세계로 돌진해 간다. 이런 면에서 멀티미디어는 개인적인 공간을 한층 심화시키는 면을 갖고 있다. 다른 한편,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 광범위한 네트워크로 연결해가는 참여형이 있다. 가상 현실의 대리체험은 그것이 실물과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실물과 접촉하고 싶다는 기분을 고조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바닷속의 세계, 우주공간, 경주용 자동차 등은 모두 제각기 실제의 세계를 체험해 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 것들이다. 또한 다양한 네트워크와 접근하여 관계를 맺어가는 사이에 세계관이 확대되어 오히려 남과의 접촉을 자기 쪽에서 먼저 바라게 될 것이다.

이러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앞으로 우리의 새로운 세대가 과연 어떻게 나아갈 지는 미지수이다. 그 결과는 멀티미디어 환경을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우리 조건에 맞게 건설하는가에 달려 있으며, 시민운동의 차원에서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구조 창출에 주의를 기울이며 다양한 설득과 참여구조를 만들어 내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저자는 또한 창조적 인재양성의 중요성과 더불어 일반적인 교육제도와 기업체제의 근본적인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멀티미디어 시대는 각개인이 창조적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수많은 채널을 통한 개인과 집단의 정보공유가 요구된다. 이는 멀티미디어라는 정보매체의 존재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일이며, 일본의 경우 기업, 학교, 연구기관, 관공서 등의 정보의 폐쇄성, 권위주의적 체제가 이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우리의 상황은 더욱 복잡하고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현재 우리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마저 제대로 진행시키지 못한 채 정부의 일방적 독주 속에 멀티미디어 시대를 맞고 있다. 지난 94년에는 멀티미디어 원년이라는 미국의 선언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각 일간지들이 경쟁적으로 멀티미디어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이것은 멀티미디어에 대한 현실인식의 제고라는 측면에서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2000년의 정보 생활혁명」, 「멀티미디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등의 구호만 요란한 기사였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실제로 멀티미디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개인의 창조적인 능력이나 기업의 조직 혁명, 정보를 민주화할 수 있는 주체에 대한 논의, 여러 정보매체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 등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된 바가 없다. 결국 국가경쟁력이라는 현실적 당위론을 바탕으로 위로부터의 재편, 대기업에 대한 지원, 다양한 개인과 집단의 소외가 우리나라 멀티미디어 정책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에게는 세계수준의 정보망 발전과 이에 따른 경제적 종속의 문제, 문화산업의 상품화 및 종속성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1993년 미국의 고어 부통령이 멀티미디어 시대 발전 모델로 하고 있는 ‘정보 슈퍼하이웨이(information superhighway)’나 국가정보기반(National Information Infrastructrue : NII) 이 기술적 지반과 사회구조를 달리하는 우리나라 실정에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 지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멀티미디어 시대의 주인은 창조적인 개인과 이들의 집단이다. 이들이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멀티미디어 시대의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내고 유통시키면서 적극적으로 연대해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할 때에만 사회를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무한한 잠재력을 멀티미디어가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종주(도서출판『새로운 사람들』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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