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8년 10월 2018-10-02   726

[특집] 대체복무제에 대한 고찰

특집2_군대 없는 나라, 군기 없는 사회

대체복무제에 대한
고찰

 

글. 여옥 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활동가

 

지난 6월 헌법재판소가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가 없는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19년 말까지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동안 다양한 양심과 평화적 신념을 인정하지 않고 처벌로 일관해왔던 한국 사회는 이제야 병역거부에 대한 찬반논의를 넘어 구체적인 대체복무 방안에 대한 입법 논의가 한창이다. 얼마 전 열렸던 제18회 아시안게임에서 메달과 순위보다 더 화제가 된 것은 몇몇 선수들의 병역혜택 여부였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와 같은 국제대회가 있을 때마다 늘 주목받는 주제이기도 하니 익숙한 풍경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금메달만큼 ‘국위선양’을 한 K-pop스타에게도 병역혜택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병역특례 대상이 되는 기준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 이슈로 떠올랐다. 여론을 의식했는지 정부에서는 예술·체육인에 대한 병역특례제도 개선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알렸다. 

 

월간 참여사회 2018년 10월호 (통권 259호)

지난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헌법상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의 실현으로서 인정하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형사처벌이 아닌 대체복무제가 주어져야 함에도 이를 보장하지 않은 「병역법」 제5조 제1항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대체복무제

현재 시점에서 논의되는 ‘대체복무제’의 대부분은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도를 의미하지만, 말 그대로 대체복무제는 군 복무 외에 다른 형태로 병역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전체를 말한다. 징병제 국가에서는 징병대상 숫자와 군대 규모 간의 차이로 인해 병역자원의 수급불균형이 발생하는 것은 일반적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에서는 주로 복무 기간 조정, 병역면제 등의 정책 대안을 광범위하게 활용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동안 특수한 안보상황을 이유로 이런 방안이 제한되어 대체복무제도를 주로 활용해왔다. 한국에는 예전부터 다양한 대체복무제도가 존재해왔다. 전투경찰, 의무경찰, 의무소방, 공익근무, 사회복무, 전문연구요원, 산업기능요원, 공중보건의사, 공익법무관 등 어떤 일관된 기준이 있다기보다는 당시의 정부정책이나 사회경제적 분위기 등에 따라 다양한 제도가 신설되거나 통합·폐지되어왔다. 다만 다양한 양심이나 평화적 신념이 사유로 인정되지 않았을 뿐이다. 

 

아무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군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은 병역이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체육요원으로 대체복무를 하는 것이고, 34개월 복무기간 중 사회적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544시간 동안 해당분야 특기를 활용한 봉사활동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와 격리되지 않고 본인의 특기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군대에 가지 않는’ 면제라고 여겨진다. 현재 논의 중인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는 신청과 심사를 거쳐 군 복무 기간보다 더 긴 1.5~2배의 기간 동안 합숙복무하며 비군사적 영역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높은 난도의 업무를 실시하도록 설계되고 있다. 그럼에도 제도를 악용하는 병역기피자가 늘어날 것을 염려한다. 대체복무가 특혜라는 생각의 바탕에는 사회로부터의 격리와 경력의 단절, 열악한 생활환경 등으로 인한 군복무자들의 억울함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병역비리를 통해 군 면제나 특혜를 받아온 이들과 다르게 어쩔 수 없이 군 복무를 해야 한다는 상대적 박탈감도 작용한다. 국방의 의무가 신성하다는 것은 사실상 군 입대를 유도하려는 포장에 가깝다. 

 

이러한 이유로 대체복무제가 면제나 특혜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군 복무와의 형평성을 중심으로 논의가 되지만, 그 형평성은 군대 내에서도 차이가 크다. 전방에서 근무하는 병사와 카투사를 두고 형평성을 논하지 않고, 현역복무를 하는 사람이 사회복무요원이나 공중보건의사와 형평성을 따지지 않는다. 

 

유독 대체복무가 군 복무만큼 힘들어야 하는 이유는 아무도 군대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대가 변화하지 않으면 대체복무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군대는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일방적인 지시와 복종을 익히고 똑같은 훈련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군대를 통해 교육되고 사회화되는 위계적이고 획일적이며 폭력적인 군사 문화를 바꾸어 나가려는 시도나, 군대 내 열악한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근무 외 자유 시간 허용이나 휴대폰 사용 가능 등 군대문화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모두가 군대에 가야한다는 생각의 전환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는 아무리 늦어도 2020년부터 시행될 것이다. 기존 대체복무제와는 다르게 기초군사훈련 없이 완전히 비군사적 영역에서 시행되는 대체복무제는 ‘예외 없는 병역이행’이라는 군대의 기치에 공식적인 ‘예외’를 만들어내면서, 군대에 대한 경직된 사고에 물꼬릍 터줄 것이라 기대한다. 대체복무제가 시행되면 수많은 해외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악용가능성에 대한 지금의 우려는 검증될 것이고, 여러 변형된 대체복무제가 존재해왔던 경험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대체복무제가 정착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제도 초기의 징벌적 논의에서 벗어나 사회적 필요도에 따라 다양한 영역의 대체복무도 고려해볼 수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영역인 치매노인이나 장애인을 수발하는 사회복지 업무나 환자를 돌보는 의료 업무 외에도 복무형태와 기간을 달리하여 환경·교육·문화영역에서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사회적 필요도가 군 복무와의 형평성을 맞추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예술·체육요원의 기준을 확대하고 이들을 교육 분야에 대체복무 하도록 함으로써 그 혜택을 더 많은 국민들이 누리게 되고 삶의 질이 향상된다면 여기에 반대할 이유가 있을까. 

 

지난 판문점선언과 이번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우리는 ‘전쟁 없는 한반도’를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주적’이었던 북한이 평화의 시대를 함께 만들어나갈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불과 일 년 전만해도 생각하기 어려웠다. 모두가 평화를 원하는 지금, 평화를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나가기 위해 무엇이 우리 삶을 불안하게 하는지, 어떤 일이 공동체를 지속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지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남북분단과 대치라는 상황을 핑계로 미뤄왔던 과제인 군대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최적의 시기다. 

 

외부의 적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여러 요인들로부터 삶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방식과 형태들을 인정하고, 사회에 필요한 공적인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대체복무의 다양한 길을 열어주는 것을 적극 검토할 때이다. 군 복무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병역의 의무만 유독 신성할 이유는 없다.  

 

월간 참여사회 2018년 10월호 (통권 259호)

 

 

 

특집. 군대 없는 나라, 군기 없는 사회 2018년 10월호 월간참여사회 

1. 군대 없는 안보를 상상한다 

2. 대체복무제에 대한 고찰 

3. 눈물겨운 ‘진짜 사나이’의 재림 

4. 새로운 전쟁 앞에 시민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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