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8월 2014-08-04   1622

[특집] 일중독자들의 사회

특집 일과 휴가

 

참여사회 2014년 8월호 (통권 213호)

 

일중독자들의 사회

 

 

이원석 문화연구자

 

도처에 사회‘론’이 난무하고 있다. 이는 사회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사회를 말하는 사회』, 북바이북). 마치 건강을 잃고 나서야 건강에 관심을 갖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 사회는 여러 층위에서 봐도 정상이 아니다.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피로 사회고, 취업의 관점에서 보면 잉여 사회다. 근로자의 최장 노동 시간을 자랑한다(OECD 가입국 기준). 이를 지탱하는 것은 취업의 어려움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 극악한 수준의 취업률을 과시하고 있다. 

 

피로 사회와 잉여 사회

 

최장 노동시간과 극도의 실업률은 쌍생아와 같다. 동시에 양쪽 모두 고난의 수렁 속을 헤매고 있다. 미취업자는 영혼이라도 팔아 취업하고 싶은 심정이다(강준만, 『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다』, 개마고원). 취업의 문은 영혼을 비워야만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협소하다(특히 취업 면접은 인격 모독의 경험으로 다가오기 일쑤다). 지금의 청년들은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자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잉여 노동력이 양산되고 있다.

 

소위 잉여들의 집단적 우울depression과 분노를 간과할 수가 없다. 우울과 분노의 누적이 자살의 증대로 이어진다. 한국은 OECD 가입국 자살률 부동의 1위국고, 유일하게 자살률이 상승하고 있다. 더욱이 정서적 우울은 경제적 불황depression과 연결되기 십상이다. 또한 분노를 쏟을 길이 없어 (일베와 같은) 넷 우익이 형성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분노는 국가와 기업을 향하기보다는 구조적 약자(여자, 호남, 외국인 등)를 향하고 있다.

 

반면 취업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마침내 불행 끝, 행복 시작이 아니다. 이제부터 한국 사회라는 이름의 메트릭스가 온전히 작동하도록 자신을 배터리로 제공해야 한다. 영혼까지 탈탈 털려가며 노동해야 한다는 뜻이다(프랑코 베라르디 비포, 『노동하는 영혼』, 갈무리). 현실은 말단 사원이라도 CEO의 마인드로 회사를 대해야 한다. 스스로의 경영자로 취임하고, 능동적으로 셀프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 요구된다(켄 블랜차드, 『1분 셀프 리더십』, 21세기북스).

 

이렇게 우리 시대의 노동자는 시시포스마냥 끝없이 무거운 노동의 짐을 굴려야 하며, 끝없이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피로와 우울은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만성 피로는 현대인의 천형天刑이다(한병철, 『피로 사회』, 문학과지성사). 휴식도 어디까지나 노동의 효율을 위한 것이다. 애초에 온전한 휴식은 무망한 바람이다. 요새 출판계가 휴식과 슬로우 라이프를 주목하는 이유는 이것이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참여사회 2014년 8월호 (통권 213호)

 

누구를 위해 매트릭스를 작동시키는 것인가

 

위에서 지적했듯이 양자는 상호 의존하는 쌍생아의 관계에 있다. 다시 말해서 피로 사회는 동시에 잉여 사회(최태섭, 『잉여 사회』, 웅진지식하우스)다. 물론 두 가지 양태는 모두 세계적인 추세에 따른 것이지만, 한국의 경우는 훨씬 더 극악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우리나라보다 일하는 시간은 훨씬 짧고, 그로 인해 일자리는 훨씬 많다. 우리는 선진국을 살아가지만, 체감하는 현실은 후진국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은 누구를 위해 작동하는 것일까? 일부에게만 취업이 허용되고, 이들에게 과도한 노동을 부과하는 왜곡된 현실은 명백히 누군가에게 유리한 구조이다. 점령하라Occupy 운동이 드러내고 있듯이 99%가 1%를 위해 갤리선을 모는 노예로 전락했다. 다시 말해서 20:80의 파레토 법칙을 넘어 1:99의 상황으로 급속하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마이크 데이비스, 『자본주의, 그들만의 파라다이스』, 아카이브).

 

이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불합리한 취업 구조와 부당한 노동 현실 앞에서 분연히 들고 일어나야 할 것이다. 물론 무력으로 시위하라는 말이 아니다. 공론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말고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정당이 아니라 정책을 따라 후보자(대통령, 국회의원 등)를 지지하고 투표해야 한다. 국가와 사회가 각자의 결핍을 채우고, 난국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자원을 분배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강제적 착취에서 자발적 착취로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러한 방향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분노의 대상이 잘못 설정되어 있다. 이른바 가진 자를 향해야 할 공격의 날이 상대적으로 더 약한 이들을 향하고 있다. 대신에 우리의 목줄을 쥐고 있는 이들 앞에서는 충실하게 복종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제 정신으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우리의 마음을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포맷해야 가능하다(혹자는 이를 프레임이라 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이데올로기라 부를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정체는 자기계발self-help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지 않던가. 무한경쟁으로 인해 아무도 남을 돌볼 수가 없게 되었다. 나를 돌봐줄 수 있는 이는 오직 나 하나뿐이다. 모든 구성원에게 자기계발이 강요된다(이원석, 『거대한 사기극』, 북바이북). 무엇보다 마음의 변혁을 요구한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가령 구조조정)를 묻지 말고 바로 새로운 치즈를 찾아 나서야 한다. 이미 말한 대로 몸은 말단사원이라도 마음은 CEO여야 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특히 자기 주도성)을 내 것으로 만들고,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끌어당김의 법칙)을 배워야 한다. 주어진 역경은 긍정과 열정의 힘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발생한 영혼의 스크래치는 멘토의 격려를 통해서 힐링 받으면 된다. 요새는 나를 업그레이드하고 승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라고 다그치고 있다. 특히 세상을 지배하는 0.1%가 되기 위해 인문 고전 독서를 통해 우리 뇌를 천재의 뇌로 바꾸란다.

 

우리는 부자 아빠가 되기 위해 이러한 자기계발의 복음들에 귀를 기울여 왔다. 우리를 옭아매는 이 시스템을 바꾸기보다는 나 하나 바꾸는 것이 쉬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살림살이가 얼마나 나아졌나 묻고 싶다. 공부가 가장 쉬웠다던 장승수 변호사가 마지막 개(천에서 나는)룡이라고들 하는 이유를 따져야 한다. 우리가 머리를 비우고 충직한 노예로 살아가더라도 골든 크로스에 들어갈 수는 없다. 지금의 현실에 직면해야 내일의 현실을 바꿀 수 있다.

 

이원석

한국의 미래가 교양사회 구축에 있다는 믿음으로 집필과 강의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거대한 사기극』, 『인문학으로 자기계발서 읽기』, 『공부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