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8월 2014-08-04   1907

[여는글] 리멤버 0416

리멤버 0416

참여사회 2014년 8월호 (통권 213호)

단원고 2학년 생존학생 73명은 6월 25일 ‘리멤버 0416’라고 적힌 팔찌를 끼고 71일 만에 다시 등교를 시작했다. 그 팔찌는 세상이, 하늘로 떠난 친구들, 아직 차가운 바다 속에 갇혀 있는 선생님과 친구들, 세월호를 잊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절절한 마음의 표지였다. 또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팔찌는 부끄럽게도 아이들이 어른들과, 어른이 만들어놓은 이 사회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벌써 100일이 지났다. 그 동안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무심한 일상만 강물처럼 흘러갔고 제대로 해 놓은 건 하나도 없다. 참사이후 지난 백일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골조는 엉망인 부실 건축물 같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치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굳이 장관들 낙마와 청문회, 유병언 수사 등등의 구체적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국가사회가 총체적으로 망가지고 부실덩어리가 되었을까 싶다. 아직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라 할 진상조사를 위한 세월호 특별법조차 제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아이들은 두려웠던 것이다. 아이들의 맑은 눈으로 볼 때,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이런 조악하고 허술한 국가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재앙 없는 안전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도저히 믿을 수 없었으리라.

이기적이고, 나약하고, 망각하는 인간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다. 다른 사람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기 마련이고,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한 공감과 동정심은 자신의 하찮은 불행보다 관심을 끌지 못한다. 먼 나라의 대재앙 소식에 잠시 불쌍한 마음이 들다가도, 지금 내 손톱에 박힌 가시가 주는 고통을 더 안타깝게 걱정하는 것이 인간의 치사한 본성이다. 타인의 불행에 가슴 아파 하다가도 눈앞의 일에 급급해서 남의 불행을 애써 잊는 게 나약한 인간이란 존재다.

그뿐이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다 기억하기에는 두뇌 용량의 물리적 한계가 있으니 특정 경험들만을 선별적으로 기억하고 나머지 부분은 버릴 수밖에 없다. 개인적 삶의 맥락에서 보더라도 인간에게 망각은 필요하다. 만약 개인사의 모든 불행과 아픔과 슬픔을 모두 가슴에 쓸어 담고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그 삶의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망각은 필요하기도 한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타인의 불행에 진심으로 함께 슬퍼하다가도 금방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자기의 일상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위선이라 비난할 수는 없다. 본래 인간은 이기적이고 나약하고 망각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이기심과 공감 간의 균형이 있고 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지 않는다. 이성적 인간, 문명화된 인간일수록 더 그러하다. 야만사회는 이기적이고 나약한 인간 본성의 일차원성을 뛰어넘지 못한다. 예컨대 전쟁의 비극을 겪으면, 이성적인 문명사회는 전쟁의 고통을 잊지 않는다. 그 비극을 생생히 기록하고 기억함으로써 평화의 소중한 가치를 환기하고 고양시킨다. 기억의 힘이 전쟁 재발을 막는 새로운 평화 의식과 질서를 키우는 비옥한 토양이 되는 것이다.

세월호를 기억해야 더 나은 미래도 가능하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가 지금껏 그래왔듯이 이 참사도 잊는다면 우리는 세월호 비극을 또 되풀이할 게 틀림없다. 세월호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집단기억 속에 세월호의 깊은 아픔을 명백히 각인시켜야 하고 또 이 어이없고 참담한 재앙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던가를 낱낱이 조사하고 적나라하게 기록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그 토대 위에서 ‘안전사회’라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구상과 기획도 가능해 질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세월호 비극의 근본 원인인 ‘사람보다 돈이 먼저인 사회’에서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사회’, 즉 세월호 이후 시대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을 디딜 수도 있을 것이다. 

‘리멤버 0416.’ 

김균

경제학자. 현재 고려대 교수이자 참여연대 공동대표. 노년이 지척인데 아직도, 고쳐야 할 것들이 수두룩한 미완의 삶에 끌려다니고 있음.  산을 좋아함.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