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12월 2014-12-01   754

[정치]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여할 때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여할 때!

이용마 MBC 해직기자

 

 

참여사회 2014년 12월호(통권 217호)

 

무력한 공기업 이사회
석유공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 해외자원 개발이란 명목으로 캐나다 에너지업체 하베스트의 자회사인 노스애틀랜틱리파이닝NARL을 무려 2조 원을 들여 매입했다. 이 투자를 결정할 당시 강영원 사장은 이사회에서 정부 계획에 따라 추진하고 있으며, 자신은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결국 석유공사는 엄청난 손해를 보고 이 회사를 매입금액의 100분의 1인 200억 원에 미국계 은행에 팔았다.

가스공사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 우즈베기스탄 수르길 가스전 사업에 투자를 결정했다. 주강수 당시 사장은 사업성은 잘 모르겠지만 감은 좋다고 이사회에서 밝혔다. 주 사장의 감에 의존해 가스공사는 이듬해 무려 4조 4천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공기업이 단행한 수조 원대의 ‘묻지마’ 투자는 대부분 이렇게 이루어졌다고 이사회 회의록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공기업 이사들은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일부 공기업에서는 투자에 우려를 표명한 이사도 있었지만, 투자를 결정하는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거수기 역할만 하는 사외이사
공기업 이사회만 이럴까? 일반 기업의 이사회는 다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사기업 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이 공기업을 마음대로 주무른 정황을 살펴보면, 사기업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실제 1백 명이 넘는 서울대 교수들이 사기업의 사외이사로 겸직을 하면서 해 온 행태는 이를 잘 보여준다. 서울대 교수들은 5년 동안 연봉 수천만 원을 받으면서 이사회 안건에 대해 거의 100% 찬성하는 ‘거수기’ 역할만 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외이사는 기업의 투명한 경영을 확보하고, 기업이 CEO 개인의 전횡에 의해 운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외환위기 이후 도입한 개혁의 성과물이다. 위기를 경험한 뒤 위기의 재발을 막으려고 구성한 제도다. 그런데 명색이 서울대 교수라는 사람들조차 이 정도라면, 다른 사외이사들은 물론이고 CEO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는 사내 이사들은 어떠할지 너무도 명약관화하다.

 

이명박 정부가 지불한 비싼 수업료
공기업이든 사기업이든 현재의 이사회는 그야말로 고액 연봉만 챙기는 이사들로 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고 섣부르게 기업 이사회의 무용론을 펼 수는 없다. CEO의 독단적 경영을 막을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감시와 견제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이사회를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누가 있을까?

일단 해당 기업의 존속과 발전에 소유주만큼이나 애정이 있어야 한다. 또 해당 기업의 현황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해당 기업의 사회적 공헌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적임자는 다름 아닌 해당 기업의 노동자들이다. 노동자들이야말로 소유주나 CEO 이상으로 회사와 운명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 소유주나 CEO는 회사가 망해도 제 살길을 찾지만, 노동자들은 그럴 수 없는 존재다.

따라서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노동자들의 이사회 참여가 대단히 보편적인 현상이다. 독일은 감독이사회와 집행이사회를 나누어서 감독이사회의 절반을 노동자 대표로 구성한다. 또 감독이사회는 실질적인 경영을 하는 집행이사회의 이사 선출과 감독권을 가짐으로써 막강한 견제기능을 행사한다. 노르웨이의 경우 일반 이사회의 3분의 1을 노동자 대표가 차지하고, 스웨덴이나 프랑스, 스페인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이사회에 노동자들이 참여한다.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참여함으로써 얻는 이득은 적지 않다. 단적인 예로 공기업 사장이 대통령 지시에 따라 수조 원대의 묻지마 투자를 하기 어렵고, 소유주나 CEO들이 수천억 원을 횡령하거나 배임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비정규직만 늘려 오로지 이윤만 좇는 것이 아니라 보다 인간적인 노동환경을 만들 수 있다. 위기대처 능력도 높아진다. 노사가 일방적으로 책임이나 부담을 떠넘기며 갈등하기보다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그야말로 공생의 원리를 터득하고 기업의 사회적 공헌을 높일 수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도 노동자들의 경영참여라는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면, 이명박 정부가 날린 천문학적인 규모의 돈은 비싼 수업료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용마
정치학 박사.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관악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부지런함의 공존 불가를 절실히 깨닫고 있는 게으름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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