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1월 2014-01-09   1059

[읽자] 여러분, 새해 목표는 역시 외국어 공부입니다

여러분, 새해 목표는 역시 외국어 공부입니다

 

박태근 알라딘 인문MD가 권하는 1월의 책

 

 

새해 계획, 아니 계획이라기보다 목표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 물론 실제로는 소원에 가깝겠지만. 어쨌든 새해 목표이자 계획이자 소원은 연말연시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이며 한 살 더 먹는 사람의 의무라 하겠다.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은 각양각색이지만 목표를 모아놓고 보면 의외로 비슷한데, 금연, 다이어트, 운동, 외국어 공부가 늘 상위권을 차지한다. 이 가운데 쉬운 일은 하나도 없지만 ‘영어 공화국’이라고까지 불리는 대한민국에서는 시장 규모로 보나 지원자의 좌절감으로 보나 외국어 공부가 단연 최대 장벽이라 하겠다. 덕분에 1월에는 각종 어학원에 빈자리가 없고, 서점에서는 토익, 토플 학습서가 날개 돋친 듯 팔리니, 장벽 틈새로 새해 목표를 실현하는 사람들도 없는 건 아니다. 어쨌거나, 혹시라도, 아직도 외국어 공부를 갑오년 새해 목표로 책상머리에 써 붙여둔 분이 계시다면, 이 글을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제1외국어도 어려운데, 제70외국어라고?

 

수강 신청도 안 했는데 기를 죽이려는 건 아니지만, 첫 책 제목은 『언어의 천재들』이다. 아직 문제집 배송도 안 됐을 텐데 초를 치려는 건 아니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초다언어 구사자’들은 적게는 여섯 가지, 많게는 일흔두 가지 언어를 습득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평생 영어만 쓰며 미국에서 편하게 살던 저자는 세계 각지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외국어 학습’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소문과 전설로만 떠도는 초다언어 구사자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실인지,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그런 무지막지한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 언어를 배우고, 기억하고, 말하는 인간 능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일흔두 가지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했다는 메조판티 추기경의 흔적을 찾아 헤매고, 언어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의 뇌를 살펴보고, 기네스북에 등재된 공식 언어 천재도 만났다. 과연 그는 언어 습득의 비밀을 찾아냈을까?

 

반가운 소식과 불편한 소식이 한 가지씩 있다. 우선 반가운 소식은, 여러 개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고 알려진 초다언어 구사자 역시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말을 바꾸거나, 자주 쓰는 몇몇 언어가 아닌 특수한 언어를 쓰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머리를 예열시키고 벼락치기 공부도 종종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물론 환경적으로 다언어 구사를 할 수밖에 없는 일부 지역의 초다언어 구사자 집단은 예외다.) 어쨌거나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놓인다. 불편한 소식 역시 같은 이야기인데, 언어 학습에 왕도는 없다는 말이다. 물론 초다언어 구사자의 언어 습득에서 알아낸 몇몇 지침은 새해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비법은 이 책 끄트머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력은 여기에서부터 필요하다.

 

참여사회 2014-01월호

1 언어의 천재들 – 세계에서 가장 비범한 언어 학습자들을 찾아서
마이클 에라드 지음, 박중서 옮김, 민음사

 

참여사회 2014-01월호

2 방언정담 – 사람이 담긴 말 세상이 담긴 말
한성우 지음, 어크로스

 

외국어 배우기도 바쁜데, 사투리까지??

 

앞선 책에서 넓은 세계를 바라봤다면, 이번에는 한반도로 시선을 좁혀보자.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성인에게 “당신, 사투리를 쓰는군요?”라고 한다면 아마도 상대는 손사래를 치거나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을 게 분명하다. 보통 사투리는 서울말을 뺀 나머지 방언의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표준말은 세련되고 사투리는 촌스럽다는, 다시 말해 표준말이 사투리보다 ‘위’라는 관념도 뿌리 깊다. 방언학자 한성우의 『방언정담方言情談』은 이런 말의 위계와 경계를 넘어 말과 말이 통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풍경을 단정하게 그려낸다. 

 

뜻이 아닌 소리로 먼저 말을 듣는 저자는 앞서 출연한 초다언어 구사자보다 더 놀라운 장면을 보여준다. “내래 좀 급애서 기래. 금요일이 디 않갓어?”를 듣고 평안북도가 고향이란 걸 알아내는 건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소래요? 새우젓 좋은 데 거기요? 회요? 그것은 좀 별로던데요”를 듣고, 말하는 이가 전라북도 북부 출신이라는 걸 알아내는 걸 보면 자연스레 셜록 홈즈가 떠오른다. 오랜 학습과 연구의 결과겠지만, 그가 살던 땅의 냄새를 알고 그가 풍기는 삶의 냄새를 함께 맡아야만 가능한 경지다. 이 책은 그 두 가지 냄새와 그 위에 더해진 말의 소리를 찾아 수십 년 동안 한반도 남녘과 중국의 두만강변, 압록강변을 오간 시간과 공간의 기록이다. 할머니의 쪼그라든 입술에서 특유의 발음을 읽어내고, 삶의 궤적을 미루어 짐작하고, 태도를 바로잡는 모습에서, 서로 다른 말이 통하고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는 새로운 소통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말이 사투리라는 방언학의 대전제는 이처럼 중심이 아닌 주변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작은 ‘같음’과 작은 ‘다름’을 모두 귀하게 여기게 한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배워야 할 말 못지않게 찾아내야 할 말이, 새롭게 익혀야 할 말 못지않게 잊지 말아야 할 말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새해 목표는 새로운 균형을 찾는다. 

 

박태근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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