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11월 2014-11-03   760

[읽자] 철학한다면 이들처럼

철학한다면 이들처럼

박태근 알라딘 인문MD가 권하는 11월의 책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 고전에 대한 유용한(?) 정의다. 따분하고 골치 아픈 고전을 읽지 않아도 창피함과 죄책감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철학은 어떨까?‘누구나 하면서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믿는 일’아닐까? 소크라테스, 데카르트, 칸트, 니체 같은 철학자의 이름까지는 참아줄 수 있으나 진리, 존재, 이성, 신이 등장하면 슬슬 따분해지기 시작하고 철학의 제1원리, 도덕 형이상학, 니힐리즘이 나오는 순간 우리와 철학은 이승과 저승처럼 멀어지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왜 수많은 사람이 철학에 도전하고, 철학을 권하고, 철학을 말하는 걸까?

참여사회 2014년 11월호 (통권 216호)

철학 한 입 더 / 데이비드 에드먼즈, 나이절 워버턴 지음 / 열린책들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를 만나다

영국에서 시작한 철학 팟캐스트 ‘철학 한 입philosophybites’은 매회 철학적 주제를 정하고 이에 맞는 철학자를 초대해 15분 남짓한 짧은 대화를 나누며 생생한 철학 대화를 대중에게 전한다. 그간 250여 편이 방송되었고 누적 다운로드가 1,500만 회를 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이 내용은 여러 권의 책으로 묶였는데 한국에서도 윤리, 정치, 미학 등 철학의 여러 주제를 담은 『철학 한 입』, 서양 철학사를 수놓은 27명의 사상가를 시대 순으로 다룬 『철학 한 입 더』이 차례로 나왔다.

이번에 소개하는 책은 『철학 한 입 더』다. 대화는 오늘의 철학자가 어제의 철학자를 소개하고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짧은 분량에도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주장의 핵심은 무엇인지부터 철학사의 흐름 속에서 가지는 의미평가까지, 핵심과 맥락을 요령 있게 설명한다. 완성된 작품은 아니지만 밑그림이 제법 선명하여 각자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골라 색칠에 들어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처음부터 너무 크고 자세한 밑그림에 도전하다 금세 지쳐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목처럼 가볍게 한 입 베어 물기에 맞춤한 책이다. 당신에게 어울릴 법한 철학자가 누구인지 발견한다면 충분할 테고, 어떤 철학자를 좋아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참여사회 2014년 11월호 (통권 216호)

생각하는 사회 / 장의관 지음 / 미지북스

현실에서 만나는 철학은 힘이 세다

철학에 들어서는 이에게 주어지는 공부법은 보통 두 가지다. 앞서 소개한 책처럼 철학의 역사, 철학자의 사유를 되짚어 철학의 내용을 배우는 방식, 그리고 오늘 우리가 마주한 문제를 불러내 철학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여 해결책을 찾는지 살피며 철학의 쓸모를 체감하는 방식이다. 사회를 만나는 철학 강의 『생각하는 사회』는 두 번째 방식의 교과서 같은 책이다. 안락사, 낙태, 사형 제도에 대한 논의는 논술 시험의 단골손님으로 꽤나 익숙하다. “이 주제들이 워낙 친숙해서 나름 정리된 해답을 우리 사회가 이미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이 주제들에 대한 해답은 차치하고, 깊이 있는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제목에서 ‘사회’를 강조했듯, 이 책은 정치라는 구조와 행위 속에서 앞선 문제를 다룬다. 정치는 가치를 분배하는 일인데, 여기에는 경제적인 영역뿐 아니라 문화, 도덕까지 깊숙이 개입한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도덕적 가치가 적절하게 수용되고 배분되는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하는 일, 어렵게 말하면 정치철학이라 하겠지만, 쉽게 말하면 앞서 예로 든 주제에 대해 시민 각각이 나름의 논리와 감각으로 판단을 내리고 그 생각들이 경쟁하고 타협하여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는 일이라 하겠다. 나와는 상관없는 먼 일이라고 느껴진다면, 부유세가 정당한 것인지를 다룬 장부터 읽으면 되겠다. 세금이 내 지갑사정만 위협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를 통해 소유권, 분배, 자유주의, 개인주의, 사회계약, 정의까지 한데 묶어 철학할 수 있다는 걸, 이렇듯 현실과 철학이 만나면 힘이 세다는 걸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참여사회 2014년 11월호 (통권 216호)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 / 마크 롤랜즈 지음 / 책세상

끝이 없는 철학의 오지랖

철학이 만학의 왕이라 불리던 시절은 오래 전에 지났다. 여러 현상과 상황을 철학으로 읽어내는 시도 역시 지나친‘소재주의’라 비판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철학은 미술, 영화, 여행, 기술, 심리 등 인간이 맞닿는 거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여 각각의 요소와 영역을 철학으로 읽어내려 한다. 인기가 시들한 철학을 쉽게 풀어 많이 팔기 위한 목적은 아니다. 그게 목적이라면 이미 실패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만물, 만사에 관심을 갖는 철학의 오지랖이라 보는 게 맞겠다.

많고 많은 철학의 오지랖 가운데 SFscience-fiction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로 보는 철학의 거의 모든 것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를 고른 까닭은 이렇다. “대부분의 훌륭한 SF소설은 외계인, 로봇, 사이보그, 괴물 등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낯설거나 타자인 어떤 대상과의 우연한 만남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타자성을 대면하는 것은 마치 우리 얼굴 바로 앞에 거울을 들이대는 것과 비슷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더욱 분명히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런 효용도 더할 수 있다. “철학은 추상적이고, 추상적인 것은 난해하다. 영화가 제공하는 시청각 영상들 속에서 구체화된 추상적인 문젯거리들과 거기서 벌어지는 토론, 논쟁 등에 초첨을 맞추는 것이야말로 철학을 배우는 정말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있었던 것과 있는 것뿐 아니라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를 것까지 관심을 갖는 철학의 오지랖에 SF만큼 어울리는 짝꿍이 있을까.  <터미네이터>, <스타워즈>, <매트릭스>와 함께 펼쳐지는 친절하고 수다스러운 철학을 만난다면, 당신의 오지랖도 조금은 넓어질 게 분명하다.>

박태근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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