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12월 2015-11-30   644

[역사] 역사와 살다

역사와 살다

 

글.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참여연대 창립 멤버, 현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궤적을 좇는 작업과 함께 동아시아사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돌아오지 못한 범부들을 만나다
<암살>이 1,000만 영화의 반열에 올랐다. 그 덕에 영화 끝자락에서 김구와 마주앉아 해방의 기쁨을 읊조리던 김원봉이 새삼 조명을 받았다.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활약을 보였지만, 남이 아닌 북을 선택했기에 지워지고 만, 독립 운동가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암살>에 등장하는 독립운동가들은 전사고 영웅이다. 세상이 영화 속 독립투사에 열광하고 있을 무렵, 나는 평온한 삶을 누리던 한 마을이 3.1운동에 참여하면서 풍비박산이 나고 만 기억을 좇고 있었다. 이웃끼리 사이좋게 준비한 만세 시위가 마지막 마을 축제가 되어버린 애달픈 기억을 복원하며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죽음을 마다않는 영웅의 이야기보다 죽을 줄 모르고 거리로 나섰다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범부들의 고난과 죽음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모락장 만세 시위의 비극
모락장은 평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강서군과 대동군의 경계에 자리한 마을로 5일마다 장이 열렸다. 모락장 근처에는 원장교회, 산수리교회, 반석교회, 사천교회가 이웃하고 있었다. 반석교회 장로인 조진탁은 1919년 2월 28일 평양에 들렀다가 다음날인 3월 1일 만세시위에 참가한 뒤 독립선언서를 얻어 돌아왔다. 곧바로 주변 교회 목사, 장로들과 의논하여 3월 4일에 만세시위를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사천교회에서 시위 준비를 하다가 헌병보조원에게 들키는 바람에 10여 명이 잡혀가고 말았다. 다행히 사건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아 밤을 새우며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그리는 일은 계속할 수 있었다.

마침내 3월 4일 오전 10시 합성학교에 천여 명이 모여 독립선포식을 거행했다. 이어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했다. 시위대는 유치장에 갇혀 있는 사천교회 동지들을 구한다며 모락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행진하던 사람들에게 헌병분견소장인 사토와 헌병보조원들이 총을 쏘았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쓰러졌으나 시위대는 흩어지지 않고 돌을 던지며 행진을 계속했다. 사토가 계속 총을 쏘자 시위대는 헌병분견소에 불을 지르고 그와 헌병보조원들을 때려 죽였다. 이 소식에 헌병대가 즉시 출동하여 4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잡아갔다. 이 날 시위하던 사람들 중에는 19명이 죽었고 40여 명이 다쳤다.

비폭력 평화시위를 하던 시위대에 헌병이 총을 쏘면서 빚어진 유혈사태는 시위대열에 참여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시위를 이끈 사람들은 헌병분견소에 불을 지르고 헌병을 죽였다는 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모두 49명이었다. 일본의 복수는 집요하고 혹독했다. 처음 시위를 제안한 조진탁은 용케 원산으로 피신했으나, 2년 뒤에 밀정에게 들켜 체포되었고 결국 사형을 당했다. 윤상열, 안상익 등의 20대 젊은이는 물론 노인인 주명우처럼 감옥살이를 하다 죽은 이들도 여럿 있었다. 최능찬은 감옥에서 반신불수가 되어 나와 결국 생을 마감했다.

1919년 3월 4일 모락장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던 사람들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비폭력 평화시위를 펼쳤다. 하지만 헌병 발포라는 공권력에 의한 폭력 행사는 평화시위는 물론 마을 공동체를 무참히 짓밟아 버리고 말았다. 시위에 나선 형제가 모두 총에 맞아 죽은 집도 있었고 급히 몸을 피하는 바람에 그날 이후 아버지, 아들, 형제의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된 가족들도 있었다. 단 하루 만에 세상이 달라진 것이다.

 

참여사회 2015년 12월호

2015년, 역사가로 산다는 것
역사가로 살아가면서 점점 위대한 사건이나 영웅보다는 평범한 사람의 삶이라는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게 된다. 예전이라면 모락장 시위를 그저 3.1운동을 대표하는 하나의 사건이라고 머리로만 이해했을 것이다. 이제는 단 하루의 만세시위로 어제의 일상이 산산조각 난 현실을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고심하게 된다. 그들의 고통과 마주하면서 그들이 주저함 없이 손 맞잡고 만세 시위에 나선 이유는 뭘까 곰곰이 곱씹게 된다. 평범한 삶을 희생한 대가로 그들이 얻으려 한 것은 뭘까 되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매일 과거 속 평범한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머리만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역사를 읽는 힘을 키우며 오늘을 살고 있다.

역사를 빚는 학자로서의 안목 변화는 언제든 역사를 보고 듣고 읽고 맛보고 만져보게 된 역사 대중화 시대, 개인이 역사를 선택하고 해석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갖는 역사 민주화 시대의 도래와 깊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한 권력은 위대한 영웅서사로서의 역사를 빚으려 한다. 역사가들은 늘 권력과 불화를 겪어왔다. 때론 목숨을 담보로 역사학을 지켜내기도 했다. 역사와 뒹굴고 씨름하며 오늘을 사는 역사가로서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며 험난했던 2015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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