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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10월
  • 2007.10.01
  • 1204
학력위조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를 개탄하는 소리가 그야말로 요란하다. 그 속에서 잠시 ‘우리’가 아닌 학자로서의 나의 삶을 돌아본다. 소위 남부럽지 않은 학벌을 갖고 세상을 살며 가진 자로서 내뱉었던 오만한 말과 거침없는 행동을 떠올려본다.

몇 년 전 친구로부터 타인에 대해 말할 때 늘 출신과 나이는 물론 연줄 망을 거론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일단 충격이었다. 각성과 관찰이 이어졌다. 학연의 덫에 갇혀 학자로서의 안온한 삶을 살아온 나와 동학(同學)에게는 익숙하던 대화법이 갑자기 낯설어 보였다. 출신과 나이를 묻고 인맥을 캐물으면, 당사자로서 유쾌하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인 세상에서 거침없이 지껄이고 다녔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주변인들도 마찬가지였으니, 학벌주의는 이런 일상세계에서 배양되고 있었던 것이다.

‘동족촌’에서 안분지족하다가 지방대학에 교편을 잡아 홀로 떨어져 나오면서 고향을 성찰할 기회를 얻었다. 그 때 다시 바라본 학연의 덫은 끔찍하고 부끄러웠다. 물론 학연 그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학자들이 높은 장벽을 쌓고 그들만의 리그를 즐기며 학연을 권력화 하는 것은 분명 심각한 문제다. 실력만으로 대학에 자리를 잡고, 이름난 학자가 되는 경우를 주변에서 본 적이 거의 없다. 대개는 선배가 이끌어주고, 동료가 서평하고 인용하면서 명성을 쌓기 마련이다. 학연에 따라 그들만의 리그에서 서로 박수쳐주며 도장 찍는다. 참, 잘했어요! 이런 학연의 폐쇄성은 학회와 학회지의 양산을 불러오기도 했다. 나도 이런 학연의 덫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고향에선 문제없던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한발만 내딛어 보면 소통불가한 일방통행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더욱 안타깝고 민망한 경우는 출중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권력화 된 학연에 의해 상처받아 좌절하며 학문마저 포기하는 지식인을 만났을 때였다. 지적 사냥을 즐기다가 문득 깊이 있는 사색과 창조적 안목으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숨겨진 옥고를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젊은 날의 번뜩이는 재기가 뿜어져 나오는 몇 편의 글을 쓰고 사라진 그들의 소재가 궁금하다. 아마도 그들은 소위 내세울 학벌은 없으나, 실력 있고 내공 높은 이들이 주류에 진입하는 것이 쉽지 않은 골품제 사회에 좌절했으리라. 그리고 ‘헛된 꿈은 독’이라며 거위의 꿈을 포기했을 것이다.

너무 불공정한 학문세계다. 꿈이 없어도 꿈을 이룰 수 있는 주류와 꿈이 있어도 꿈을 이룰 수 없는 비주류. 양자 간의 경계를 허무는 데 칼자루를 쥔 쪽은 가진 자들이다. 그들만의 리그를 해체하고 학연의 덫을 거두어 내는 일은 분명 위로부터의 혁명을 통해 가능하다. 허나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현실이 슬프고 절망스러운 나날들만이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김정인 참여연대 인사위원장,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사회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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