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10월 2007-10-01   2238

한평생 ‘말과 삶은 하나’ 가르쳐온 토박이말 지킴이

우리말교육연구소 김수업 소장

‘산’, 우리말처럼 정겹다. 하지만 ‘뫼’는 어떤가? ‘재’와 ‘갓’은? 낯설기만 하지 않은가? 굴러 온 돌이 박힌 돌 뺀다는 식으로 한자말 하나가 토박이말 셋을 밀어냈다. 이것이 우리말의 현실이다. 말하고 쓰는 데 있어 낫고 못할 것 없이 서로 비슷한 데 ‘뫼’가 ‘산’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가람’이 ‘강’때문에 사라졌다. 이렇게 우리말이 사라지고 힘을 잃는 까닭이 무엇인지 김수업 우리말교육연구소장에게 들어보았다. 한글날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저 ‘젊은이들 뒤를 따라 다니면서 구경을 할 뿐’인데, 왜 인터뷰 대상자가 되었는지 의아해했다. 스스로 별 이야깃감이 없다고 생각해서인가. 나를 도와주려는 듯 먼저 말문을 연다.

“저는 올해 나이 일흔입니다. 진주가 제 고향입니다. 농사짓고 살았지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동생도 죽고 그래서 어머니가 절 혼자 키우셨죠. 중학교 때부터 진주 읍내로 나와서 농림학교 졸업하고 시골 가서 농사 1년 짓고 어머니가 농사짓지 말라고 해서 대학을 갔어요. 돈이 안 든다고 해서 사범대학으로 갔지요.”

자식 ‘손톱 밑에 흙 넣지 않고 살게 하고픈’ 어머니 뜻에 따라 수재들이 모인다는 이름난 사대에 진학하고 계속 학문의 길을 걷다가 2005년 대학총장을 마지막으로 대학에서의 시간을 마쳤다.

석사학위논문을 한글로만 써

그가 처음 우리말과 글, 얼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대학 2학년 때 국어국문학회를 참관하고 나서였다. 학회의 주제는 ‘한글전용’과 ‘(~)이다’의 품사분류에 대한 논쟁.

“큰 학회가 열린다고 해서 도서관에서 만난 친구들과 이틀 동안 지켜봤죠. 우리에겐 한글 전용문제가 매력적이었죠. 그 때 최현배 선생을 중심으로 하는 한글학회 사람들하고 이숭녕을 중심으로 하는 서울대학 사람들이 첨예하게 대립했어요. 서울대 쪽은 한글 전용 필요 없다, 또는 단계적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한글학회 쪽은 한글 전용을 주장했어요.”

한글 전용 논쟁의 관객이었던 그는 그날부터 한글 전용을 찬성하는 논객이 되었다. 갈수록 ‘한글 전용 생각에 골똘해진’ 그는 ‘한문을 공용어로 쓰는’ 현실, ‘겨레의 역사가 위축’되는 현실에 점점 눈을 돌리게 되고, 마침내 한자를 하나도 쓰지 않고 쓴 논문을 찾아볼 수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순 한글로만 석사 학위논문을 쓰는 등 파문을 일으키며 우리 말과 글을 살리려는 노력들을 하나씩 실천하였다. <배달말 학회>, <모국어 교육학회>, <전국국어교사모임>,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등이 그것들이다. 우리말을 가르치는 길잡이, 토박이말 지킴이가 된 것이다.

말은 의사소통 수단일 뿐이라고

그에게 말은 ‘삶에서 사람끼리 생각과 느낌과 경험을 서로 주고받아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연모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얼의 집’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는 말을 도구로만 여기는 태도가 영 마땅찮다.

“고바야시 히데오가 경성제국대학 조선어학과 선생으로 있으면서 이숭녕, 이희승한테 가르친 게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개론이었습니다. ‘말씀이 인간으로 태어난 게 예수다’라는 성서 말씀처럼 중세부터 서양 사람들은 말의 신비스런 힘을 강조했는데, 소쉬르에 와서 그게 비판받았습니다. 언어를 신비주의로 보지 말고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로 보자며 언어를 분석했어요. 서구의 언어학이 발전하는 과정에 그런 이론이 그때 쯤 필요했죠. 그런데 고바야시는 말은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이라고, 하나만 가르쳤어요. 그러니 결국 일본어나 조선어나 의사소통만 되면 되는 것이지요.”

이런 실용주의적인 접근은 결국 ‘말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눈 돌리는 것을 가로 막게 한다. 나아가 ‘사람이 무엇인가’, ‘삶이 무엇인가’에 눈 돌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 삶에서 나온 말이 진짜 우리말

그처럼 ‘말이란 주고받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마음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우리의 사람됨을 틀 지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학문하는 말과 농사짓는 말이 다르지 않게 된다. 주시경 선생이 평생 강조한 것처럼 우리 삶에서 나와 쓰는 말이 진짜 우리말이 되는 것이다. 재밌는 일화 하나.

“논문 쓸 때 서론, 결론이란 말이 쓰기 싫어서 머리말(이제 그는 머리말대신 들머리라고 쓴다), 마무리라고 써서 학회지에 냈더니 말이 많아요. 마무리는 본디 가마니 짤 때 쓰는 농사용어예요. 모두들 ‘도꼬마리(짚으로 만든 그릇)만드나? 마무리라 하게.’ 이랬어요. 전 도꼬마리 만드는 거랑 논문 쓰는 거랑 다르다고 생각 안했어요.”

그가 우리 토박이말을 고집할 때마다 도꼬마리 만드는 일은 우리말로 할 수 있어도 학문은 우리말로 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뒷말들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저는 이게 업보라고 생각해요. 기쁘고 즐거운 게 뭔지도 모르고, 다르다 틀리다도 모르고 막 쓰는데 그걸 안 가르쳤다고 후회하는 사람이 없어요. 누군가가 돌을 맞아도 계속 가지 않으면 길이 안 열리는 거죠.”

그는 하루하루 절망을 느끼면서도 ‘내가 숨을 쉬는 동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뚜벅뚜벅 그의 길을 가고 있다.

그래도 희망을 발견한 곳이 있다. 1988년부터 인연을 맺어 온 <전국국어교사모임>. 그는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만든 <우리말교육연구소>소장과 <우리말교육대학원>원장을 맡고 있다. 연구소는 2005년부터 대학원을 운영하기 시작하여 2006년에는 현장에서 우리말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우리말교육현장학회>를 구성하는 등 우리말 교육의 등불이 되고자 하는 바람을 차곡차곡 실현하고 있다. 대안교과서를 만드는 것도 큰 일중 하나. 7차 교육과정에서 「우리말 우리글」을 펴낸 데 이어 8차 교육과정에 맞춘 교과서를 준비하고 있다 한다. 아무리 뜻이 있어 자발적으로 팔을 걷어 붙였다고 해도 버거워 보인다.

토박이말의 보고 지역문화를 되살려야

그가 토박이말을 살려내기 위해 힘을 쏟고 있는 또 하나의 방향은 지역 문화를 살리는 것.

“국어학자들이 토박이말이 모자라서 못쓴다는 말도 하는데 연구를 안 해서 그렇지요. 지역의 문화를 살려내면 되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서당이나 학교에서 우리 동네 역사를 공부한 게 없어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을 문화로 여기지 않았잖아요. 전국이 다 그래요. 우리겨레의 삶 자체를 교과서로 삼게 하려면 지역의 문화를 찾아내고 밝히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런 생각 끝에 그는 <진주문화연구소>를 차렸다. 그는 진주 탈춤이 있는 줄도 몰랐던 당시, 진주 오광대탈춤을 소개하고 복원하는 일을 했다. ‘진주탈춤한마당’이란 큰 판도 만들어서 대학생탈춤경연대회를 열었단다. 얘기를 듣다보니 진주의 교방 예술 등 문화에 대해서도 소상하다. 우리말을 아끼고 지키노라면 우리 겨레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게 되는 모양이다. 말이 곧 사람이고, 삶인 그로서는 퍽이나 자연스럽다.

다양하고 풍부한 말글의 꽃밭을 가꾸자

이런 그가 국수주의자, 민족주의자로 오해받는 경우도 있나보다.

“제 입장은 인류가 모두 함께 잘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연을 보면 알아요. 잣나무 좋다고 다 잣나무만 심으면 다른 곤충이나 생물이 살아갈 수 있나? 벌레, 꽃, 나무, 가지 가지 있어야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사는 것이지요. 문명도 예외가 아니에요.”

그는 어떤 겨레도 토박이말만 쓸 수 없음을, 이웃 겨레의 말을 빌려 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문제는 ‘말과 글의 의미가 무엇인지’ 의식이 없다보니 생산력이 좋은 우리말이 오랫동안 짓밟히면서 모두 들온말에 잡아먹히고 만 것. ‘크기도 가지가지, 모습도 가지가지, 빛깔도 가지가지, 이런 갖가지 꽃들이 제 나름대로 남달리 지닌 빛깔을 온전하게 드러내는 꽃밭이라야 아름답고 넉넉한 꽃밭일 수 있다. 남이 저보다 크니까, 남이 저보다 고우니까, 남이 저보다 예쁘니까, 저를 버리고 남을 따라가면 머지않아 꽃밭은 답답하고 지겨운 온통으로 떨어져 마침내 끝장나고 만다.’는 그의 경고에 이제 우리는 늦었지만 귀 기울여야 한다.

‘토박이말을 쓰고 싶어도 못 쓴다. 모르기 때문이다.’정도로 요약되는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보았다. 막막한 심경인 듯 했다. ‘천오백 년 세월을 중국 글말로만 교육하고 학문해 온 역사가 우리에게 안겨 놓은 어쩔 수 없는 가시밭길’이다. 그 가시밭길을 갈아엎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국어교육의 순서를 바로잡는 길밖에 없다. 그의 말대로 “토박이말이 얼마나 값지고 아름답고 훌륭한가를 똑똑하게 가르치고 나서, 들온말이 어떻게 들어와서 우리말을 살찌우고 가멸게 했는지를 가르치고, 마지막으로 남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 우리말을 푸지게 하는 들온말로 만들어 쓸 수 있을지를 가르치는 차례”로 국어 교육을 베푸는 길, 그 길 뿐이다.

후 기

종종 토박이말을 고집하는 이들을 접하게 되면 불편함을 느낀다. 영어로 표현해야만 전해지는 독특한(?) 어감의 세계, 중화문명의 세례를 듬뿍 받은 한자로만 통용되는 특별한(?) 소통의 범위가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믿음이 그를 만나고 나서 허물어지고 있다. 아마도 그가 우리 토박이말이 세계 최고니까 무조건 써야 한다고 강변했다면 나의 각성 효과는 그리 높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무슨 도움이 될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그저 우리말의 아픈 역사와 입말과 글말, 그리고 말과 삶이 하나여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혹시 나와 같은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있다면, 직접 그의 말과 글을 만나기를 권한다. 곧 뿌리가 흔들릴 것이다.

우리말 관련 사이트

전국국어교사모임 www.naramal.or.kr

국립국어원 www.korean.go.kr

한글학회 www.hangeul.or.kr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www.kulssugi.or.kr

박영선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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