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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10월
  • 2007.10.01
  •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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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단이 총체적인 난국에 봉착했다고들 한다. 최대 불교종단의 난국은 결국 전체 한국불교도 치명상을 입고 있다. 최근 매일같이 신문 머리기사를 장식하고 있는 동국대 ‘신정아씨 교수임용 비리사건’을 비롯하여 관음사 충돌사건, 마곡사 주지의 법정구속, 총무원장 학력 시비 등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2007년 벽두부터 문화재관람료 시비로 전국의 국립공원 앞에서는 입산하려는 시민들과 실랑이를 벌여 9개월이 넘도록 시민 대 사찰의 갈등이 계속 되고 있다. 무엇이 조계종과 불교계를 이 지경까지 이르도록 하였는가?

3% 권승이 종단 좌지우지

가장 큰 원인은 누가 무어라 해도 종단의 돈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소수 승려들의 부정과 권력다툼이 원인이다. 2006년 현재 조계종의 정식 승려 수는 1만1백53명이다. 전체사찰의 수는 2천3백93개이고, 이들 중 공찰의 수는 894개(전통사찰625개, 관람료사찰72개)에 불과하며, 사설사암의 수는 1천4백99개이다. 80명 남짓의 중앙종회의원, 40명 정도의 중앙종무기관 교역직종무원, 24개 교구본사 등 종단운영의 한가운데 있는 승려의 수는 많아야 300명 안팎에 불과하다.

이 3% 남짓 소수의 권승들이 종단의 권력과 재정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며, 공적 자산을 사적으로 전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94년 조계종 개혁의 한계와 제도, 보수화

이러한 권력의 소수집중은 조계종의 운영주체의 변화상을 간략히 살펴보면 더 극명히 드러난다.

소위 ‘조계종 사태’라고 불리는 조계종 종단개혁은 94년 서의현 총무원장의 3선연임 움직임을 저지하면서 이뤄진 조계종의 종단개혁이었다.

종교계 내부의 제도적 민주화 이후 아래로부터의 민주화와 주체적인 자기혁신의 전범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조계종은 종단개혁을 통해 교단의 민주적 공의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3권(입법-중앙종회, 사법-호계원, 행정-총무원)의 분립, 총무원장과 교구본사 주지, 중앙종회의원의 선거제도 도입, 종무행정시스템의 정비 등 일거에 압축적인 제도개혁 조치를 시행하였다.

당시 ‘제도개혁’의 핵심은 참종권의 확대, 삼권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 확보, 중앙종단의 재정확보 등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참종권(선거권)은 총무원장 선거를 간선제 형태로 최종 개정되었고, 종앙종회(사회의 국회에 해당) 선거법 개정을 통해 참종권이 확대되었다.

총무원 중심의 권력이 일부 이양되어 중앙종회가 독립적인 입법기관으로써 위상을 강화해서 총무원에 대한 견제를 제도화하게 되었다.

또한 교육원과 포교원을 독립적인 별원으로 신설하여 본래의 기능을 강화하였고, 직영사찰과 특별분담금 사찰을 지정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함으로써 재정의 중앙 집중화를 강화시켰다. 이밖에도 사설사암 종단 등록 의무화 및 삼보정재 유실 방지 법안을 마련하게 되었다.

94년 조계종 개혁조치의 핵심은 구성원들에게 부분적이나마 참종권을 부여한 선거제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선거제도가 시행되면서 교단운영에서 일부 권승에 의한 권력독점현상이 완화되었고, 대의입법기관인 중앙종회를 정점으로 계파별 종책모임이 생겨났다. 이는 선거에서 이해관계에 따른 계파별 이합집산이라는 부작용도 낳았지만, 계파유지의 명분확보를 위한 형식적 수준에서나마 교단운영의 정책생산 기능을 촉진한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고 할 것이다. 더불어 교구본사로 말사(사찰)주지 인사권이 이양되면서 교구본사주지의 전횡이 제재되었고, 선거를 통해 책임을 평가하는 단초를 열었다.

94년 조계종 종단개혁은 여타의 종단에도 자극제가 되었고, 불교계의 변화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개혁이후 첫 총무원장인 송월주 총무원장 체제하에서 불교계는 종단적인 사회참여활동을 왕성히 전개하여 이 영역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확장시켰다. 그러나 송월주 총무원장이 총무원장에 재출마를 선언함으로써 이른바 ‘3선시비’에 휘말리고 전형적인 종권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 ‘98년 종단사태’가 터지게 된다.

원로회의의 양분, 교구본사주지 연합회의 중재안 제시 및 결렬 등을 거쳐 마침내 승려대회가 개최되고, 법원의 결정 등의 과정을 거쳐 사법부의 판결과 공권력에 의지하여 분규가 수습되었다.

1998년의 종단분규는 말 그대로 분규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이는 94년 종단개혁에서 설계한 새로운 제도가 어떤 원인과 과정을 통해 파괴될 수 있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종단개혁 10년, 과두체제로 전환

98년 종단사태 이후 조계종은 세 번의 총무원장 선거를 거치면서도 종단은 물리적인 분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출가비구 중심의 과거 사회참여운동세력, 개혁주도세력은 대부분 기득권화되거나 제도교단의 정치적 관계 속으로 흡입되고 더 이상 역량을 갖춘 건강한 외부 비판세력은 적어도 조직체로서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94년 종단개혁의 중요한 기치 중 하나였던 ‘불교자주화’는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을 치르면서 ‘정치권력과의 파트너관계’로 변형되었고, ‘종권의 분산’은 계파정치를 통한 ‘과두체제’로 변질되었다.

서너 번에 걸쳐 총무원장 선거와 교구본사주지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금권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았고, 주요 사찰 주지직을 담보로 한 매표행위가 지적되어 왔었다. 그러나 이를 엄정한 선거관리를 전제로 한 제도의 보완이라는 길로 가지 않고 선거 자체를 폐기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은 결국 현재의 안정된 과두 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에서 제도를 변경하겠다는 것이다.


자원조달의 한계와 정치권력에의 의존 강화

조계종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계는 현재 자원조달의 한계에 봉착해 있다. 사찰운영의 투명성과 재가불자의 적극적인 역할을 전제로 하여 재가불자들의 시주를 통해 교단운영의 자원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기본전제가 충족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로써 문화재보수 국고보조금, 문화재관람료에 대한 의존성은 부단히 커져왔다. 최근 문화재보수비 편취나 횡령 등으로 사법적 판결을 받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이제 이에 의존한 사찰운영의 자원 창출 방식이 시민사회의 투명화 요구에 따라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금년부터 국립공원입장료가 폐지되면서 합동 징수하던 문화재관람료를 단독징수 하게 되었는데, 이는 시민들의 비난과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런 시민사회의 비판에 대해 조계종은 국립공원 내의 사찰토지의 기여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단순화 문화재관람료가 아닌 자연환경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이용료로 대체하고자 하나 이는 단편적인 처방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조계종 등은 국회나 정부 등 정치권력의 상층교섭을 통해 관련 법과 제도를 손질하려고는 하나 시민사회의 참여 하에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려는 노력은 진지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시민사회에서 조계종 등의 입장을 이해하고 합리적이고 근본적인 대안을 논의 할 파트너가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교단은 더욱 더 정치권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며, 정치권력이 시민사회의 공론을 살피지 않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의존의 정도는 더욱 깊어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찰의 사유화와 개인주의의 만연

한 가지 심각함을 더해가고 있는 것은 사찰의 사유화 경향이 급속히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2005년 현재 조계종에 등록된 사찰의 수는 2,368개이고 이중 본사 및 총무원에서 주지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공찰이 883개이고 사설사암이 1,485개이다(사설사암이란 사찰을 창건한 주지가 자신이 후임주지를 임명할 수 있는 사찰로 사찰의 동산 부동산은 조계종에 소유권이 이전되지만 3대에 걸쳐 소유권과 점유권을 인정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제도이다).

이와 같이 사설사암이 증대한 것은 종단개혁이후 사설사암의 등록을 유도하기 위해 3대에 걸쳐 창건주가 주지를 지정하여 대물림할 수 있게 한 것이 자극제가 되었고, 공동체적인 노후보장을 기대할 수 없는 조건이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출가자들은 노후보장을 위해 사설사암을 만들고, 이를 물려주는 조건으로 상좌(법제자)에게 주지직을 보장하는 방식을 택하자는 일종의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이 또한 여의치 않다는 불안한 소리가 자주 들린다. 급기야 상좌세대에까지 개인주택 수준의 사설사암 소유가 바람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경향을 추스르지 못하고 지속된다면 출가집단의 공동체성은 공찰의 주지, 종단의 공직을 수행하고 있는 출가자를 제외하고는 심각히 붕괴할 개연성이 없지 않다고 할 것이다.


사회적 지도력의 급속한 퇴락과 내부 통제 실패

투명성, 공익성을 추구하는 시민사회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내부 부패통제도 되지 않고, 조세 혹은 준조세에 의존하는 자원동원의 구조를 가진 종교단체에 대한 시민사회의 신뢰를 상실시킨다. 이로써 94년 종단개혁이후 상승하던 사회적 신뢰와 지도력은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사회적 신뢰를 잃고 사회적 우호세력을 잃고서 스스로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길은 비사회적인 것에서 찾게 되어있다. 결국은 불교교단은 사회적 공론장에서의 지탄이 증가하면 할수록 자기방어적인 체제로 대응 할 것이고, 이는 사회적인 고립을 자초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국고보조비 집행의 투명성이 제고되고 문화재 관람료에 대한 시민의 저항이 증대되어 이를 통한 자원동원이 불가능하게 되면 남는 것은 교단이 소유하고 있는 광범위한 토지자원 외에 이렇다하게 눈 돌릴 곳이 없게 될 것이다.

사법개혁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94년 종단개혁 이후 매년 사회적 범죄 행위가 종단 내 만연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굵직굵직한 사건들만 모아 봐도 알 수 있다.

▲소쩍새 마을 후원금 횡령(1995년) ▲불교방송 공금횡령 사건(1997년) ▲불국사 재무국장 횡령사건(1997년) ▲여의도불교문화원 공금 횡령 사건(1999년) ▲조계사 공금횡령 사건(1999년) ▲조계사 신협 공금횡령 사건(2000년) ▲승가원 공금 유용 사건(2000년) ▲총무원 공금 유용사건(2000년) ▲범어사 국고보조금 횡령사건(2001년) ▲화엄사 국고보조금 횡령사건(2005년) ▲신촌 봉원사 토지 불법 매매 사건(2005년) ▲은해사 불사 관련 사기사건(2006년) ▲마곡사 횡령 및 배임수증 사건(2006년) ▲흥천사 토지 불법 거래 사건(2006년) 등 주요 언론을 장식할 만한 대형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범죄 형태 역시 국고보조금 횡령과 같은 반사회적 행위로 치닫고 있다.

종단의 개혁과제는 운영의 민주성, 재정의 투명성, 대사회 기여등 산적해 있지만 본 센터에서 가장 시급하고, 당장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과제는 조계종 기강을 바로잡을 사법기능의 정상화이다.

이러한 종단 내 비리불감증을 더욱 증폭시키는 것은 사법기능을 하는 호법부(사회의 검찰기능)와 호계원(사회의 법원기능)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고,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중립적 종권’의 위상을 지켜내지 못한 지금까지의 전례를 반성하고 종단의 사법기능 강화를 통해 종단의 공동체성과 무소유정신을 지켜낼 마지막 보루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손옥균 교단자정센터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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