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10월 2007-10-01   909

높은 학교참여 문턱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학교 운영위원회는 교원 3명, 학부모 4명, 지역인사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부모 및 지역위원은 모두 여성이고, 교원위원은 모두 남성이다. 회의가 한 달에 한 번 열리는데 회의시간을 잡는 것부터가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교장 교감 선생님은 강력하게 평일 오후를 원한다. 그렇지만 학부모들은 하는 일이 있고, 일터가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평일 오후 회의에 참석하기 힘들다. 1학기 초에 운영위원회가 구성되고 회의시간을 잡아보니 적당한 시간이 없어서 토요일 수업이 끝난 뒤 첫 회의를 갖게 되었다.

회의를 끝내자마자 교장 선생님과 운영위원장인 군의원은 “주말에 결혼식이 두세 건 있었는데 못 갔다”며 시간을 옮기자고 했다. 그래서 겨우 다시 잡은 시간이 평일 오후 7시 반이라는 시간이었다.

회의가 있는 날은 일터에서 곧바로 학교로 달려와 저녁식사도 거른 채 회의에 참석한다. 회의는 밤 10시를 넘기기 일쑤여서 아이들은 “언제 돌아오느냐”고 전화로 성화를 대고 전화를 안 받으면 문자메시지를 연달아 날린다. 퇴근 시간을 넘겨 회의를 기다린 사람들로서는 밤늦도록 끝나지 않는 회의가 또 얼마나 마뜩찮으랴. 운영위원장은 “선생님들께 죄송하고 염치없는 일”이라며 회의시간을 앞당기자고 회의 때마다 학부모들을 종용한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 좀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점잖게 타이른다. 갑자기 염치도 모르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학부모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뿐이다. ‘교장선생님, 군의원이라면 시간 조정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어요. 그러나 아직 젊은 우리는 마음대로 하기가 힘들어요. 대체 누가 이기적인 겁니까?’하는 항변이 입 안에서만 맴돈다.

회의시간 때문에 끝내 날카로운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교감선생님이 관내 다른 학교들의 회의시간을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운영위원회 간사에게 지시했다. 나는 운영위원회 회의시간 규정을 질의했다. 일과시간 후 학부모들이 최대한 참여할 수 있는 시간에 열라는 게 교육청의 권고사항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밤에 회의하는 학교가 드문 것은, 적어도 우리 지역에서는 사실인가보다. 작년에 전임 운영위원장이 지역교육청에서 열린 운영위원장 간담회에 갔더니 다른 학교 위원장들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만난 듯이 “그 학교는 교장선생님이 너그러워서 밤에 회의를 다 한다?”며 하고 묻더라 했다.

맞벌이를 하는 엄마들도, 직장에 다니는 아빠들도 폭넓게 받아들여 그들의 다양한 경험과 지식과 관심을 학교에 쏟도록 하려면 지금으로선 주말이나 밤 회의를 피할 수 없다. 희생까지 안 하고 배려만으로도 회의시간을 둘러싼 소모적인 실랑이가 그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이기적인 것일까. 늦은 시간에 회의 하는 학교에는 가산점을 주든지 장려책을 내놓으라고 당국에 요구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고진하 (참여사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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