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9월 2007-09-01   1023

테마 기획 – 고향: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고향을 그리는 마음

아침 안개 낀 유달산 산길을 달려올라 중턱에 이르면 잠시 멈춰 서서 샘물을 마신다. 그 시원한 맛에 기운을 얻어 꼭대기까지 단숨에 오르니, 어느덧 하늘은 맑게 개었다. 바다를 바라보면 항구에는 오늘도 쪽배가 뜨고, 햇살 받은 수면이 반짝인다. 정다운 고향 목포의 아침.

나 김난월(48세)은 한 번도 고향을 찾아가보지 못한 재일교포 2세이다. 그런데 이토록 선명하게 고향풍경을 묘사하는 것이 남들에게 신기하게 보일까, 웃음이 날까.

해방 전, 열여덟 살에 고향땅을 떠나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오신 우리 아버지(74세). 내가 아주 어릴 때, 제삿날 밤이면 “종이와 연필을 가져 오너라” 하시며 우리 형제들을 상 앞으로 부르시곤 하셨다. 그리고는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고향 목포는 유명한 항구다. 뒤쪽에는 유달산이 있고, 소나무가 우거져 무더운 여름날에도 그늘져서 서늘하지. 또 산 위에 달이 비치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버지의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그대로 우리 마음에 이어져 나는 늘 ‘고향에 가보고 싶다’ 는 생각을 하면서 자랐다.

반면, 나서 자란 이 곳은 나에게 있어서 그저 ‘출신지’일 뿐이지, 특별한 애착을 가지지 못했다. 어떤 때는 자기가 바라지도 않은 땅에서 나서 자랐다는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 나라에도, 일본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은 ‘이방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서러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렇게, 고향은 정답고 그리운 곳이면서 나의 ‘소외감’의 근원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제3국에 나가게 되면서, 특히 몇 년 동안 외국에서 지내게 되면서 그 부정적인 ‘소외감’이 풀려갔다. 자기가 살아온 배경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 속에서 인종도, 문화도, 출신도, 경력도 다른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귀중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 속에 뚜렷한 ‘고향’이 있고, 내 생의 뿌리에 대한 사랑과 긍지가 있어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고, 내 나라 아닌 땅에서 나서 자란 체험이 그들과 마음의 교류를 이룰 수 있는 밑천을 마련해주었다고 실감하는 경우가 참 많았다. 강요된 조건이 아니라 자유로이 택한 ‘이국’에서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 ‘고향’과 ‘출신지’를 바라볼 때, 내 처지가 불행이 아니라 축복이라고 처음으로 확인하게 된 것이다.

‘꿈에서라도 가고 싶다’는 고향에 아직 가보지 않은 것은 부끄러운 일인지도 모르나, 이런 심경에 도달할 때까지 그 귀중한 순간을 기다려온 것은 오히려 잘한 일 같은 생각이 든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갈수록 더해가지만, 발걸음을 붙잡는 내 마음속 ‘그것’도 여전하다.

언제쯤이면 고향에 갈 수 있을까…….

김난월 재일교포 2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